AI가 사이버 공격의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기업의 보안 대응은 여전히 사람의 승인과 부서 간 협업에 발목이 잡혀 있다. 공격자는 AI를 활용해 취약점을 빠르게 찾아내고 공격을 자동화하는 반면, 보안 담당자는 여러 시스템에 흩어진 데이터를 모으고 대응 권한을 확인하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 국내 기업의 사이버 방어 역량은 글로벌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시스코가 13일 시스코코리아 오피스에서 개최한 ‘AI 시대의 사이버보안 미디어 라운드테이블’에서 공개한 조사 결과다.
이날 행사에서는 글로벌 사이버 보안 현황을 분석한 ‘릴렌트리스 디펜스 보고서(Relentless Defense Report)’와 함께 AI 시대의 네트워크 보안 전략이 소개했다. 발표의 핵심은 공격을 탐지하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만큼 조직이 얼마나 신속하게 판단하고 대응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시스코코리아 최지희 대표가 시스코 ‘AI 시대의 사이버보안’ 미디어 라운드 테이블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시스코코리아)
시스코는 2026년 4~5월 전 세계 30개 시장의 보안 전문가 8,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보안 범위(Coverage), 대응 속도(Speed), 조직 내 마찰(Friction)을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 글로벌 평균은 100점 만점에 64점, 한국은 58점이었다. 최근 1년간 비즈니스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 사이버 보안 사고를 경험한 조직은 전 세계 91%, 국내 80%에 달했다. 글로벌 조사에서는 이러한 사고의 35%가 AI 관련 공격을 포함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안 기술보다 느린 의사결정…한국 기업의 조직 간 협업 24%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보안 대응을 방해하는 원인이다. 보안 실무자 10명 중 6명은 최근 사고 대응 과정에서 개선이 필요했던 부분으로 기술적 한계보다 조직 내부의 문제를 꼽았다. 담당자의 권한이 명확하지 않거나 승인 절차가 복잡하고, 부서마다 관리하는 데이터가 달라 필요한 정보를 제때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안팀과 네트워크팀, IT팀이 정보와 도구를 공유하며 하나의 조직처럼 협업한다고 답한 비율은 전 세계 41%였다. 한국은 24%에 그쳤다. 국내 응답자의 44%는 실제 위협을 추적하는 것보다 여러 시스템에 분산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연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보안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느 부서가 시스템 차단을 결정하고, 누가 경영진에게 상황을 보고하며, 어떤 기준으로 대응 우선순위를 정할 것인지 사전에 합의돼 있지 않다면 탐지 기술이 아무리 빨라도 실제 조치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경영진과 보안 조직 사이의 소통도 과제로 확인됐다. 글로벌 응답자의 43%는 보안 지표가 지나치게 기술적이어서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이끌어내기 어렵고, 한국에서도 40%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다. 또한 조직의 방어 역량을 평가하면서 보안 범위와 대응 속도에 각각 25%, 조직 내 마찰에 50%의 가중치를 부여했다. 실제 보안 사고에서 기술을 갖추고도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를 조직 운영에서 찾은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상위 그룹의 성과에서도 확인됐다. 시스코가 높은 수준의 보안 역량을 갖춘 조직으로 분류한 ‘릴렌트리스 디펜더(Relentless Defenders)’는 글로벌 전체의 8%, 국내에서는 1%에 불과했다.
최상위 그룹의 83%는 보안·네트워크·IT 조직이 정보와 도구를 공유하며 통합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나머지 그룹은 37%였다. 보안 투자를 늘린 뒤 실제 사이버 사고가 감소했다고 응답한 비율도 최상위 그룹은 71%로, 나머지 그룹의 39%보다 높았다.
AI가 공격하는 시대, AI 에이전트의 권한까지 관리해야
AI는 보안 담당자의 업무 속도를 높이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글로벌 응답자의 87%는 AI 도입 이후 위협 탐지 속도가 최소 25% 향상됐다고 답했고, 85%는 대응 및 복구 속도가 같은 수준 이상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실제 보안 운영에 AI 에이전트를 광범위하게 적용한 조직은 글로벌 기준 약 3분의 1, 한국에서는 5분의 1 수준이었다. 민감한 데이터 노출, AI 시스템 침해, 외부 사업자의 데이터 처리 방식에 대한 우려가 도입을 늦추는 요인으로 조사됐다.
AI 에이전트 자체가 새로운 공격 경로가 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에이전트가 침해됐을 때 이를 탐지하고 대응할 수 있다고 강하게 확신한 조직은 전 세계 54%, 국내 37%였다. 기업 내부 시스템에 접근해 업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가 늘어날수록 어떤 권한을 갖고 무엇을 실행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해진다.
무케시 찬드 탭리얄 시스코 APJC 지역 SASE 비즈니스 리더가 시스코 ‘AI 시대의 사이버보안’ 미디어 라운드테이블에서 시스코의 SASE 전략과 국내 시장 관련 주요 업데이트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시스코코리아)
이날 발표에 나선 무케시 찬드 타피알 시스코 아시아태평양·일본·중국(APJC) 지역 SASE 비즈니스 리더는 기업 네트워크의 변화와 AI 에이전트에 대한 접근 통제 문제를 소개했다.
과거 기업 네트워크가 사무실과 데이터센터를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면, 현재는 재택·원격근무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퍼블릭 클라우드, 다양한 AI 애플리케이션을 함께 지원해야 한다. 여기에 사람을 대신해 여러 시스템에 접근하는 AI 에이전트까지 추가되면서 관리 대상과 트래픽이 더욱 복잡해졌다.
그는 AI 에이전트가 사람의 폭넓은 접근 권한과 기계의 처리 속도 및 규모를 함께 갖는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기업이 모든 에이전트의 신원을 파악하고 행동별 권한을 검증하며 위험이 발생하면 실시간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스코가 제시한 대응 방식은 AI 에이전트에도 제로 트러스트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사용자와 기기의 접속 여부만 확인하는 데서 나아가 에이전트가 어떤 데이터에 접근하고 어떤 작업을 수행하는지까지 관리하며, 과도한 권한이 부여된 에이전트를 식별하고, 신원과 접근 정보를 토대로 위험한 행동을 차단하는 기능도 포함돼 있다.
시큐어 액세스 서울 리전 가동…국내 데이터센터 기반 보안 서비스 제공
국내 기업을 위한 서비스 인프라 확대도 이날 발표의 주요 내용이었다. 시스코는 ‘시큐어 액세스(Cisco Secure Access)’ 서울 리전을 정식 서비스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해당 리전은 지난 7월 29일부터 국내 트래픽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시큐어 액세스는 보안 서비스 엣지(SSE) 기반 서비스로, 사용자가 사무실이나 외부에서 클라우드와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할 때 보안 정책을 적용한다. 서울 리전 운영으로 국내 기업은 국내 데이터센터 기반의 서비스 접점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발표에서는 3,800개 이상의 AI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가시성과 제어 기능도 소개됐다. 기업 내부에서 어떤 AI 서비스를 사용하는지 파악하고, 위험도가 높은 애플리케이션이나 모델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악성 코드와 데이터 유출 위험, 규제 준수 여부를 확인해 사용 전 단계부터 통제하는 기능도 설명했다.
타피알 리더는 네트워크 연결성과 보안을 별개의 영역으로 운영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을 언급했다. 지점 네트워크, 원격 접속,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면서 성능과 복원력, 보안 가시성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다.
시스코코리아 황성규 보안 사업 총괄 상무가 시스코 ‘AI 시대의 사이버보안’ 미디어 라운드테이블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시스코코리아)
황성규 시스코 상무는 AI 보안 기술과 관련한 회사의 대응 현황을 소개하면서 관련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유해 왔다는 점을 언급했다. 현장에서는 AI 모델의 보안 취약성과 이를 둘러싼 업계의 대응 필요성도 거론됐다.
질의응답에서는 최근 국내 금융권의 보안 사고와 관련한 질문이 나왔다. 참석자들의 관심은 새로운 공격 기술뿐 아니라 기업이 실제 사고를 얼마나 빨리 인지하고, 필요한 정보를 확보해 대응할 수 있는지에도 모였다.
시스코는 이러한 보안 대응의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사고 발생 이전에 의사결정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여러 시스템에 흩어진 보안 데이터를 통합해 위협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문서로 마련한 대응 절차 역시 실제 훈련을 통해 검증하고, AI를 활용해 사고 초기의 반복적인 대응 업무를 자동화함으로써 보안 담당자가 중요한 판단과 조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AI가 사이버 공격의 속도와 규모를 바꾸고 있는 만큼 기업의 보안 경쟁력도 솔루션의 성능뿐 아니라 조직 간 협업, 데이터 접근성, 의사결정 체계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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