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정책과 선한 의도만으로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예산은 배정됐고 아이들을 돕겠다는 가게도 있었지만, 정작 급식카드를 든 아이는 사용할 수 있는 가게를 찾아야 했고 결제할 때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다. 김하연 나눔비타민 대표가 발견한 문제는 지원의 부족보다 지원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과정에 있었다.
모바일 급식카드 플랫폼 ‘나비얌’을 만든 출발점도 여기다. 결식우려 아동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것만큼 이미 마련된 공공 지원과 민간의 자원이 실제 한 끼로 연결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봤다. 아이에게는 선택권을 주고, 가맹점에는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경제적 구조를 만들며, 기업과 지자체에는 지원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복지의 전달 과정을 다시 설계했다.
나비얌은 현재 급식카드와 지역 가맹점, 개인 후원, 기업의 사회공헌 재원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연결한다. 급식카드에 기업 CSR 쿠폰이나 개인 후원 쿠폰, 가게 할인 등을 더해 아이가 사용할 수 있는 금액과 메뉴 선택의 폭을 넓히고, 기업과 공공기관에는 지원금이 실제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한다. 급식카드에서 시작한 서비스가 기업과 공공의 복지 자원을 연결하는 디지털 인프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김하연 나눔비타민 대표는 결식우려 아동이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겪는 불편과 낙인을 줄이기 위한 복지 전달체계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아이에게 닿는 방식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착한 가게를 늘리는 것보다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다
김 대표가 처음 문제를 마주한 곳은 교육봉사 현장이었다. 아이들이 급식카드를 사용할 가게를 찾지 못해 헤매거나 결제 과정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접했다. 처음에는 급식카드를 받아주는 ‘착한 가게’를 많이 확보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직접 가게를 찾아다녔다.
현실은 달랐다. 하루 50~100곳을 방문해도 실제 참여로 이어지는 비율은 30% 안팎이었다. 가게 사장들의 의지가 부족해서라기보다 POS 연동과 정산, 직원 교육 등 참여 이후 감당해야 할 운영 부담이 컸다. 선의를 가진 가게를 더 많이 설득하는 방식만으로 서비스를 확장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김 대표는 가맹점을 계속 설득하기보다 가게가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쪽으로 문제를 풀었다. 쿠폰이 사용되면 가게에는 실제 매출이 발생하고, 가게가 제공한 할인은 나눔 실적과 세제 혜택으로 정리되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 본도시락·한솥도시락처럼 본사의 사회공헌 재원이 가맹점 매출로 돌아가는 방식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착한 가게를 찾는 게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좋은 일을 해도 가게가 손해 보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가게의 참여가 일회성 선의에 그치지 않으려면 사회공헌과 매출이 서로 충돌하지 않아야 했다. 아이가 지역 가게에서 식사하면 지원금이 실제 지역 매출로 이어지고, 가게는 기존 영업 과정 안에서 나눔에 참여한다. 나눔비타민이 현재 지역 가맹점과 기업, 공공기관을 하나의 복지 구조 안에 묶는 이유도 이 같은 경험에서 출발했다. 회사 공식 자료에 따르면 나비얌은 현재 전국 6만 곳 이상의 가맹점과 3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모바일 급식카드 플랫폼 ‘나비얌’은 맞춤 혜택과 기업 캠페인, 지역 제휴 가게 이용부터 배송·상품까지 하나의 앱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출처: 나눔비타민)
지원받는 아이에게도 ‘고르는 경험’을
나비얌이 서비스 설계에서 중요하게 본 또 하나의 기준은 지원 내용을 누가 결정하느냐였다. 기존 급식 지원에서는 정해진 가게나 메뉴 안에서 아이가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비얌은 아이가 앱에서 급식카드를 인증하면 주변에서 이용할 수 있는 가게와 쿠폰을 확인하고 원하는 메뉴를 직접 고르도록 했다.
급식카드 지원금에 민간 후원을 결합한 ‘보태쓰기’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급식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 9,000원이라면 기업 CSR 쿠폰과 개인 후원, 가게 할인 등을 더해 더 높은 가격대의 메뉴도 선택할 수 있다. 실제 나비얌은 공공 바우처와 기업·개인·가맹점의 재원을 하나의 결제에 결합하는 방식을 운영한다.
“아이를 어리게 대하지 말자는 게 원칙이었어요. 지원받는다는 부담보다, 오늘 먹고 싶은 걸 눈치 안 보고 골라 먹었다는 기분이 먼저였으면 했죠.”
결제 방식도 이런 사용자 경험에 맞췄다. 급식카드를 온라인으로 인증하고 모바일에서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도록 해 대면 결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인 부담을 줄였다. 현재 급식카드 모바일 결제는 원주와 인천에서 제공되며, 쿠폰과 급식카드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나눔비타민은 결제 편의성을 높이는 데서 나아가 복지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과 낙인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지원받는 사람이 자신의 혜택을 이해하고 필요한 것을 직접 선택하도록 설계한 것도 같은 이유다. 급식 지원에서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만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본다.
김하연 나눔비타민 대표는 급식 지원을 넘어 기업과 공공, 지역사회의 자원을 연결하는 사회적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기술로 복지의 전달 방식을 바꾸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기부금이 실제 한 끼가 되는 과정까지 연결하다
아이의 선택권을 넓히는 것과 함께 기부자와 기업이 자신이 제공한 자원의 쓰임을 확인하는 과정도 중요했다. 나눔비타민의 ‘기브매칭’은 기부금을 식사 쿠폰으로 전달하고, 수혜자가 식사를 마치면 기부자에게 감사 메시지와 알림을 보낸다. 기부 이후 사후 보고서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보탠 자원이 실제 한 끼로 이어지는 과정까지 확인할 수 있다.
기업과 기관의 사회공헌·복지 예산도 디지털 식사 쿠폰으로 발행해 가맹점의 사용 데이터와 연결한다. 언제, 어디에서 얼마가 사용됐는지 기록하고 예산 집행 내역과 ESG 성과를 리포트로 제공해 사회공헌 사업의 운영부터 결과 측정까지 한 번에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진짜 투명성은 아이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게 아니라, 존엄을 지키면서도 도움이 제대로 갔는지 검증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이름이나 생활 형편과 같은 개인정보는 공개하지 않는다. 수혜자의 개인적인 사정을 드러내는 대신 캠페인별 재원 집행과 쿠폰 사용 데이터를 통해 지원금이 몇 번의 식사로 이어졌고 지역에서 얼마나 사용됐는지를 확인한다.
나눔비타민이 가입자 수보다 첫 결제 전환율과 재결제율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도 실제 이용에 있다. 쿠폰 발급이나 앱 가입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식사로 이어져야 서비스가 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어서다. 사업 규모가 커질수록 운영 방식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규모가 열 배로 커져도 작동하는지, 특정인의 희생이나 수작업에 의존하지 않는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과 복구 절차가 명확한지를 살핀다. 개인의 선의에 기대던 복지를 반복해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급식카드에서 기업·공공의 복지 운영 인프라로
김 대표가 나비얌을 통해 바라보는 시장은 급식카드 서비스보다 넓다. 아이들이 급식카드를 편하게 사용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이제 기업과 지자체, NGO·복지기관, 지역 가맹점이 가진 자원을 연결하고 집행 결과를 데이터로 관리하는 영역까지 사업 범위를 넓혔다.
기업의 CSR·ESG 예산은 수혜자에게 전달된 이후의 결과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복지사업은 예산 집행과 이용 데이터를 디지털로 관리한다. NGO와 복지기관의 후원금 운영과 성과 관리도 같은 시스템 안에 담았다. 정부·지자체와 기업, 비영리기관마다 필요한 기능을 구분하되 기업 고객에게는 CSR 캠페인 운영부터 임팩트 측정, ESG 보고까지 연결해 사회공헌 사업 전반을 지원한다.
사업의 변화는 최근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2026년 1분기 기업·기관 캠페인과 개인 후원, 가맹점 쿠폰 등을 포함한 민간 연계 규모는 약 1억5200만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86% 증가했다. 기업 CSR 재원을 활용한 식사지원 캠페인은 지난해 1분기 2개에서 올해 같은 기간 10개로 늘었고 참여 인원도 약 2700명으로 증가했다. 급식카드 결제에서 시작한 서비스에 공공 바우처와 기업·개인의 민간 재원이 더해지면서 나비얌을 통해 움직이는 복지 자원의 종류와 규모도 함께 커졌다.
기업 고객을 겨냥한 B2B SaaS도 이러한 사업 확장의 한 축을 맡는다. 기업의 사회공헌 예산을 디지털 식권으로 발행한 뒤 사용과 정산, 결과 보고까지 데이터로 관리하고 ESG 성과 리포트로 연결한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복지사업을 디지털화하는 B2G와 기업의 CSR·ESG 운영을 지원하는 B2B를 나비얌이라는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아우르는 방식이다.
김 대표가 궁극적으로 그리고 있는 모습은 사회 곳곳에 흩어진 자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흘러가는 인프라에 가깝다. 가게의 할인 여력과 기업의 사회공헌 재원, 개인의 기부금, 지자체의 복지예산을 모아 수혜자가 필요한 지원을 직접 선택하고, 기업과 공공기관은 그 결과를 데이터로 확인하는 선순환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복지 정책을 바라보는 기준도 자연스럽게 집행률에서 실제 전달 결과로 옮겨간다. 얼마의 예산을 확보하고 사용했는지에 더해 그 자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됐는지, 실제 식사와 지역 매출 등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까지 살펴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나눔비타민이 급식카드에서 시작해 풀어온 문제도 결국 ‘지원이 어떻게 전달되는가’로 모인다. 아이가 눈치를 보지 않고 한 끼를 고르고, 가게는 손해 없이 사회공헌에 참여하며, 기업과 공공기관은 지원의 결과를 데이터로 확인한다.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는 것만큼 이미 마련된 자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도록 만드는 것, 김하연 대표가 나비얌을 통해 다시 설계하는 복지의 방식이다.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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