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가 빠른 배송과 편리한 구매 경험을 경쟁적으로 발전시키는 동안 반품은 상대적으로 뒤편에 놓여 있었다. 판매가 늘수록 반품도 함께 증가하지만 검품과 환불, 재판매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은 여전히 사람의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상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어도 검사가 늦어지거나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면 환불된 제품이 창고에 쌓이고 결국 폐기로 이어진다.
윤대건 리터놀 대표는 이커머스 회사에서 커머스 총괄로 일하며 이 과정을 가까이서 경험했다. 제품관리자(PM)로 일할 때는 상품의 가치와 고객 경험을 중심으로 봤지만 운영을 맡은 뒤에는 판매 이후 발생하는 비용까지 함께 보게 됐다. 상품의 가치는 그대로인데 이를 검사하고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 다시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이 비용으로 바뀌는 구조에 주목했다.
반품을 대신 처리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보다 상품이 가진 가치를 최대한 회수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이유다. 리터놀이라는 이름과 회사의 미션인 ‘모든 것을 제자리로(Return All to Their Own Purpose)’에도 같은 문제의식을 담았다.
“창업하게 된 이유는 ‘왜 반품을 모두 비용이라고 생각할까’라는 단순한 질문이었죠.”
반도체 제조 현장의 머신비전 기술을 이커머스에 접목해 반품 검품 과정을 표준화·자동화한 윤대건 리터놀 대표. 경험에만 의존하던 기존 방식을 AI 기반 공정으로 전환하여 반품 상품 폐기율을 25%에서 6.4%로 낮추는 압도적인 성과를 증명했다.
사람마다 달랐던 반품 검사를 하나의 데이터로
창업 초기만 해도 반품을 별도의 시장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고객사에서는 ‘반품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 ‘AI로 다양한 상품을 실제 검품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반품은 이커머스의 후방 업무로 취급됐고, 상품 종류가 워낙 많아 검품 기준을 표준화하기 어렵다는 인식도 강했다.
윤 대표는 작은 규모의 PoC를 반복하며 기술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AI가 사람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는지를 앞세우기보다 검품 결과가 얼마나 일정해지는지, 처리 시간과 폐기율을 실제로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데이터로 비교했다. 기술 검증으로 시작한 고객사들이 실제 운영 적용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리터놀 역시 반품 대행보다 검품 데이터를 축적하는 기술 기업으로 사업의 방향을 구체화했다. 이 과정에서 팁스(TIPS) 선정과 투자 유치도 뒤따랐다.
리터놀은 이를 반품 전문 서비스 ‘리터니즈(Returneeds)’로 구현했다. 리터니즈는 반품 상품의 수거부터 검품과 양품화, 이후 처리까지 판매자가 개별적으로 관리하던 업무를 하나의 과정으로 묶고, 상품의 상태와 처리 결과를 데이터로 남긴다.
리터놀이 운영하는 반품 전문 서비스 ‘리터니즈(Returneeds)’. 반품 상품의 수거부터 비전 AI 기반 검품, 양품화와 이후 처리까지 반품 전 과정을 지원한다. (출처: 리터니즈 홈페이지)
리터니즈의 검품 방식에는 윤 대표가 창업 전 6년 반 동안 경험한 머신비전 분야의 경험이 반영됐다. 그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 현장에서 카메라와 센서를 활용해 불량을 찾아내는 광학 검사 시스템의 시장 개발을 담당했다. 제조업에서는 사람이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결함까지 일정한 기준으로 판별하고 그 결과를 데이터로 남기는 검사 체계가 일찍부터 활용돼왔다.
반면 이커머스 반품 검사는 작업자의 경험에 따라 판정이 달라지고 결과도 체계적인 데이터로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리터놀은 제조 현장의 검사 방식을 가져와 이 과정을 하나의 공정으로 표준화했다. 반품 상품이 입고되면 이미지를 촬영하고 검사 결과와 불량 위치, 유형을 정해진 형식으로 기록한다. 이렇게 축적한 데이터로 AI를 학습시키고, AI가 상품 상태를 먼저 판정해 제안하면 작업자가 결과를 확인한다.
검품 기준을 데이터로 표준화하면서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른 판정 편차도 줄었다. 상품별 불량 위치와 유형, 판정 결과가 누적되면서 이후 검품과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가장 중요한 핀 하나를 정확히 넘어뜨려 주변의 모든 문제를 함께 풀어내는 ‘볼링앨리 전략’을 제시하는 윤대건 리터놀 대표. 모두가 당연하게 여겨 방치했던 이커머스 반품 문제를 핵심 타깃으로 삼아, AI 기술을 통해 반품 상품 폐기율을 6.4%까지 떨어뜨리는 혁신을 이뤄냈다.
폐기율 25%에서 6.4%로…반품 데이터를 상품의 다음 경로까지
리터놀은 검품 자동화를 상품 상태를 확인하는 데만 활용하지 않고, 검사 결과를 토대로 환불이나 교환 가능 여부부터 재판매, 기부, 재활용 등 상품의 다음 처리 경로를 결정하는 데까지 데이터를 활용한다. 반복적인 검품은 AI와 자동화 설비가 맡고 작업자는 예외적인 사례를 살피거나 판단 기준을 보완하면서 전체 검품의 정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눈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폐기율 감소로도 이어졌다. 윤 대표에 따르면 기존 약 25%였던 반품 상품의 폐기율은 리터놀 도입 이후 6.4%까지 낮아졌으며, 2024년 한 해 동안 의류 폐기물 약 20톤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약 34톤을 줄였다. 별도의 친환경 캠페인을 더한 것이 아니라 다시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을 정확하게 가려내고 적절한 처리 경로를 찾으면서 불필요하게 폐기되는 제품을 줄인 결과다.
윤 대표가 반품 데이터를 자산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이 과정에서 설명된다. 상품이 왜 반품됐고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데이터로 축적하면 검품과 처리뿐 아니라 상품 품질이나 고객 불만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판매 이후 발생한 정보를 다시 제품과 운영 개선에 반영하면서 반품을 비용이 발생하는 마지막 과정에서 다음 상품과 판매를 위한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바꾸는 셈이다.
이렇게 바라보면 반품 시장의 범위도 달라진다. 윤 대표가 추산하는 전 세계 반품 관련 시장 규모는 약 211조 원으로, 온라인 거래가 지속되는 한 국가나 특정 상품군에 관계없이 발생하는 이커머스의 공통 과제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내부적으로 ‘인류를 반품에서 구원하자’는 표현을 써요. 반품은 일부 사업자의 부수적인 업무가 아니라 글로벌 이커머스가 반드시 풀어야 할 핵심 인프라라고 생각하죠.”
한국에서 쌓은 검품 데이터로 해외 반품 시장까지
리터놀은 해외 진출을 서두르기보다 국내에서 다양한 상품의 검품 데이터와 운영 경험을 충분히 확보하는 쪽을 택했다. 이커머스 거래가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에 밀집해 있고 물류 인프라와 검사 인력의 수준도 높은 한국 시장에서 먼저 검사 기준을 정교하게 만들고 데이터를 쌓은 뒤 이를 해외에서도 적용하겠다는 판단에서다.
해외 진출의 기회는 국내 브랜드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겼다. 윤 대표에 따르면 미국 등에 진출한 국내 브랜드 가운데 현지에서 국내보다 2~4배 높은 반품률을 경험하는 곳이 나오면서 리터놀에 해외에서도 같은 서비스를 운영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리터놀은 이들 브랜드를 따라 해외 시장에 진입하면서 국내에서 검증한 검사 기준과 운영 방식을 현지 물류 환경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현지에서 검품 인력을 늘리는 것보다 국가와 물류센터가 달라져도 같은 기준으로 상품 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국내에서 축적한 상품별 검사 데이터와 AI 모델을 토대로 현지에서도 동일한 기준으로 검품 결과를 기록하고 다시 학습 데이터로 축적하면서, 국가와 물류센터가 달라져도 일관된 운영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해외 확장의 핵심이다.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보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겨 더 이상 묻지 않는 문제부터 발굴하라고 조언하는 윤대건 리터놀 대표. 그는 가장 중요한 핀 하나를 정확히 넘어뜨리면 주변의 다른 문제들도 함께 풀린다는 ‘볼링앨리 전략’을 강조하며 이커머스 반품 시장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반품을 줄이는 기술에서 이커머스 경험을 바꾸는 인프라로
리터놀이 장기적으로 바라보는 시장은 반품 처리를 넘어 이커머스 고객 경험 전반으로 향한다. 반품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충분히 낮추면 소비자는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입어보고 사용해보듯 구매 부담을 덜 수 있고, 판매자 역시 반품 비용을 우려해 고객 경험을 제한할 필요가 줄어든다. 반품 처리의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구매와 반품을 포함한 이커머스 경험 전체를 함께 보는 배경이다.
검품 과정에서 쌓이는 데이터는 이러한 변화를 만드는 또 다른 자원이 된다. 특정 상품에서 같은 불량이나 반품 사유가 반복되면 제조사나 브랜드가 이를 제품 개선에 반영하고, 고객 문의와 반품이 집중되는 지점을 분석해 CS나 상세페이지를 보완할 수 있다. 판매 이후 처리 비용으로만 여겼던 반품에서 상품과 고객에 대한 정보를 확보해 다시 제품과 판매 과정에 활용하면서 데이터의 가치도 커진다.
새로운 시장을 찾는 방식 역시 리터놀의 창업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시장에 오래 존재해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 문제를 살펴보고, 그중 가장 중요한 하나부터 해결하는 방식이다. 윤 대표는 이를 핵심 핀 하나를 넘어뜨리면 주변의 다른 핀도 함께 쓰러지는 ‘볼링앨리 전략’으로 설명한다. 리터놀 역시 반품을 첫 번째 핀으로 삼아 검품과 재판매, 상품 품질, 고객 경험으로 문제의 범위를 넓혀왔다.
이커머스에서 오랫동안 비용으로 분류됐던 반품은 리터놀에게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됐다. 머신비전과 AI로 다시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을 가려내고, 검품 과정에서 확보한 데이터는 제품과 운영 개선에 다시 활용한다. 버려질 상품의 가치를 되살리는 동시에 판매 이후의 정보까지 자산으로 전환하면서 반품의 역할도 달라졌다. 반품을 얼마나 빠르게 처리할 것인가보다 반품에서 되찾은 상품과 데이터를 어디에 다시 활용할 것인가, 리터놀이 풀어가는 다음 질문이다.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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