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센트나 멀티탭에서 발생하는 전기화재는 사람이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곳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내부 접촉부의 불량이나 노후 배선의 손상, 쌓인 먼지 등으로 열이 발생해도 외부에서는 이상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특히 벽면에 설치된 콘센트나 문을 닫아 두는 배전반은 발화 직후의 상황을 확인하기 어려워 초기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
화재에 대비해 소화기와 스프링클러 등을 설치하지만 모든 전기설비 내부에 별도의 소화장치를 갖추기는 어렵다. 사람이 불을 발견한 뒤 진압하는 방식만으로는 협소한 공간에서 발생한 화재에 즉각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발화 가능성이 있는 곳에 소화약제를 미리 배치하고, 일정 온도에 도달했을 때 스스로 방출되도록 하는 기술이 개발된 배경이다.
부산의 화재 안전 소재 기업 가온테크놀러지는 이 원리를 마이크로캡슐에 적용했다. 액체 소화약제를 얇은 고분자 막으로 감싸 평소에는 보관하다가 높은 열을 받으면 캡슐이 터지면서 내부 물질이 방출되는 방식이다. 콘센트에 부착하는 작은 스티커 한 장에는 약 2만 개의 캡슐이 들어가며, 별도의 전원이나 전자식 센서 없이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2021년 6월 부산 녹산산업단지에 설립된 가온테크놀러지는 문승호 대표가 기술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고분자와 정밀화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 온 문 대표는 소화소재의 특성을 조절하는 연구를 제품 제조와 사업화에 연결하고 있다. 회사는 콘센트용 소화스티커를 공공기관에 공급한 데 이어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선박 등 산업설비에 적용할 수 있는 제품 개발을 추진 중이다.
소화약제의 방출 온도를 설계하는 고분자 기술
문승호 대표는 코오롱과 삼성코닝, Cytec Korea 등에서 고분자·정밀화학 분야의 연구개발 경험을 쌓았다. 소재의 조성과 구조에 따라 물성이 달라지는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산업용 제품에 적용하는 전문성은 현재 가온테크놀러지가 개발하는 소화캡슐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액체 소화약제를 작은 캡슐에 담으려면 서로 다른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평상시에는 내용물이 증발하거나 외부로 새어 나오지 않아야 하지만,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필요한 온도에서 신속하게 방출돼야 한다. 보관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열에 반응하는 특성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가온테크놀러지는 액체 방울의 표면에 고분자 막을 형성하는 계면중합 방식 등을 활용해 이 문제에 접근했다. 내부에 담기는 약제의 종류와 배합비, 외부 막의 구조를 조절하면 방출 온도와 보관 특성을 달리할 수 있다. 2021년 7월 출원해 2023년 3월 등록한 ‘자기 소화 마이크로캡슐 조성물’ 특허에는 끓는점이 서로 다른 소화약제를 조합해 작동 조건을 제어하는 방법이 담겨 있다.
방출 온도는 제품의 사용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일반 콘센트와 배전반, 배터리 설비는 평상시 발생하는 열과 화재 위험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운전 환경에서는 안정성을 유지하고 위험 온도에 도달했을 때 반응하도록 설계해야 다양한 산업에 적용할 수 있다.
문 대표가 총괄하는 연구개발도 설치 환경에 따라 소재의 조성과 크기, 작동 조건을 조절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회사는 캡슐 합성부터 성능 분석, 소화 시험까지 주요 공정을 자체적으로 수행하며 제품별 특성을 관리하는 생산체계를 갖췄다.
<가온테크놀로지 화재예방 소화스티커>
미세한 캡슐을 소화스티커로 구현한 복합시트 기술
소화캡슐을 실제 전기설비에 사용하려면 소재 자체의 성능뿐 아니라 제품 형태와 제조 품질도 확보해야 한다. 지름 100~300마이크로미터 수준의 미세한 입자를 콘센트에 직접 부착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고분자 수지에 혼합한 뒤 얇은 시트로 가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수지 내부에 캡슐을 고르게 분산시키는 일이었다. 작은 입자들이 뭉치거나 아래로 가라앉으면 시트의 위치에 따라 함량이 달라져 균일한 품질을 확보하기 어렵다. 캡슐의 비율을 높이면서도 형태를 유지하고 반복 생산이 가능한 제조공정을 마련해야 했다.
회사는 2023년 10월 ‘소화용 마이크로캡슐을 포함하는 자기소화 복합시트 및 이의 제조방법’ 특허를 등록하며 이 문제에 대응했다. 캡슐 표면을 처리해 수지와의 결합성을 높이고, 빛과 열을 이용한 경화 공정으로 복합시트를 제조하는 방식이다. 회사가 제시한 기술자료에 따르면 캡슐 함량을 최대 80%까지 높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렇게 개발한 시트를 콘센트 크기에 맞춰 가공한 제품이 ‘콘센트용 화재예방 소화스티커’다. 전기 접속부 주변에 부착해 초기 화재에 대응하도록 만들었으며, 배전반과 분전반처럼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에는 크기를 키운 소화패치를 적용한다. 설치 대상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되 소화약제를 필요한 지점에 배치한다는 원리는 동일하다.
제품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도 진행했다. 회사가 공개한 한국화재보험협회 부설 방재시험연구원의 시험 결과에 따르면 소화스티커를 부착한 콘센트 시료는 착화 후 약 8초 만에 불이 꺼졌으며, 해당 시험에서 재발화가 관찰되지 않았다. 반면 스티커를 부착하지 않은 비교 시료는 자체적으로 소화되지 않아 외부에서 진화했다. 다만 시험 결과는 정해진 조건에서 확인된 성능으로, 실제 설치 환경과 화재 유형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소재 합성부터 시트 성형, 시험평가까지 이어지는 자체 생산체계는 제품화 과정에서 확보한 또 하나의 성과다. 가온테크놀러지는 이를 통해 소화스티커와 패치 등 용도별 제품을 제조하고 있으며, 생산과 품질관리를 함께 수행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공공조달 성과를 발판으로 산업설비용 소재 개발까지
콘센트용 소화스티커는 2024년 4월 조달청 혁신제품으로 지정되면서 공공조달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기술 개발과 시험을 거친 제품을 공공기관에 공급할 수 있는 경로가 확보되면서 연구성과가 실제 판매로 이어졌다.
회사가 집계한 2025년 공공기관 구매 실적은 109곳, 판매액은 약 8억 7,300만 원이다. 구매기관의 절반가량이 부산과 경남에 위치해 지역 공공시장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가온테크놀러지는 이러한 공급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별 유통망을 정비하고 민간기업과 산업시설로 판매처를 넓힐 계획이다.
다음 개발 과제는 더 높은 온도와 복잡한 설치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소화소재다. 배터리와 ESS, 선박 및 풍력 설비는 일반 콘센트와 달리 장비의 구조와 운전 조건이 다양하다. 따라서 기존 제품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사용 환경에 맞춰 내열성과 방출 온도를 조절하고, 별도의 안전성 검증을 거쳐야 한다.
회사는 이를 위해 150~200℃ 범위에서 반응하도록 설계하는 고내열 마이크로캡슐을 개발하고 있다. 외부 고분자 막을 이중 구조로 만들거나 입자 크기를 10~50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줄이는 기술, 제올라이트와 같은 다공성 물질을 활용한 복합 소화소재도 연구 중이다.
제품 형태 역시 스티커와 패치에서 자동소화장치로 넓어지고 있다. 열을 감지하면 소화캡슐을 분사하는 장치의 특허 출원을 진행했으며, 회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의 형식승인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제품과는 별도의 인증 절차를 거쳐 상용화할 계획이다.
생산시설과 연구개발 역량 확보도 병행하고 있다. 부산 녹산산업단지의 공장을 인수했으며 선박과 배터리, 풍력 설비 분야 기업과 연계한 정부 연구개발 과제도 제안했다. 2030년 매출 목표는 150억 원으로, 공공조달 시장에서 확보한 판매 기반을 유지하면서 산업별 맞춤형 소재와 장치 개발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콘센트용 소화스티커에서 산업설비용 고내열 캡슐로 이어지는 개발 방향에는 공통된 과제가 있다. 소화약제를 평상시에는 안정적으로 보관하고, 화재가 발생했을 때 필요한 조건에서 방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문승호 대표가 쌓아 온 고분자 연구 경험을 활용해 다양한 산업현장의 온도와 설치 조건에 맞는 제품을 구현하는 일이 가온테크놀러지가 추진하는 다음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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