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이디어와 제품을 갖고도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스타트업이 많다. 박승표 스케일업스쿼드 대표는 그 원인을 자금이나 인력 부족만으로 보지 않는다. 한정된 자원으로 수많은 일을 동시에 처리하면서 정작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해 시간과 비용, 사람을 엉뚱한 곳에 투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성장의 속도를 좌우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보다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판단에 가깝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박 대표가 스타트업의 안과 밖을 모두 경험하면서 구체화됐다. 빅데이터 분석과 전략기획, 프로젝트 매니저를 거쳐 한 스타트업의 전략책임자(CSO)를 맡아 제품 개발부터 투자 유치, 고객 확보, 매출, 조직문화까지 두루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좋은 멘토와 컨설턴트의 조언을 받더라도 현실의 문제를 풀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기업 내부의 몫이라는 사실을 체감했다.
이후에는 스타트업 컨설팅 회사로 자리를 옮겨 기업을 지원하는 입장에서 같은 문제를 바라봤다. 비즈니스 모델과 시장성 검증을 아무리 정교하게 해도 기업이 이를 빠르게 실행하지 못하면 실제 성과로 연결되기 어려웠다. 박 대표가 찾은 해법은 전략을 제시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목표를 정한 뒤 필요한 지표를 실제로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현재 함께 일하는 이훈 CMO와 이를 사이드 프로젝트로 실험했고, 첫 달부터 초기 기업 대표들이 고객으로 참여하면서 2023년 4월 스케일업스쿼드를 창업했다.
스타트업의 성장 병목과 리소스 낭비를 해결하는 ‘그로스팀 구독 서비스’의 비전을 설명 중인 박승표 스케일업스쿼드 대표. “AI 시대일수록 도구보다 올바른 ‘우선순위 판단력’이 경쟁력이 된다”고 강조하며, 스타트업의 성공 패턴을 데이터로 구축하고 있다.
200개 기업을 만나고 달라진 진단…성장을 막는 ‘리소스 낭비’
창업 초기에는 문제를 ‘전략과 실행의 단절’로 정의했지만 200개가 넘는 기업을 만나면서 진단은 보다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전략이 없어서라기보다 한정된 마케팅 리소스를 어디에 먼저 투입해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하면서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는 경우가 반복됐다.
여기서 말하는 리소스는 광고비에 국한되지 않는다. 데이터를 모으고 관리하는 시간부터 채용과 외주 인력 운영, 대행사와 프리랜서 활용, 성과 측정에 투입되는 자원까지 모두 포함한다. 우선순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업무를 동시에 벌이면 좋은 전략을 갖고도 실행력이 떨어지고 회사가 가진 실탄 역시 빠르게 소진된다.
실제 스케일업스쿼드의 프로젝트 데이터 238건에서도 같은 문제가 나타났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른다’는 응답이 82%(중복응답)로 가장 많았고, ‘광고·CRM 툴이 흩어져 있어 통합 운영이 안 된다’는 응답이 71%, ‘우리 지표가 업계 평균과 비교해 어느 수준인지 모른다’는 응답이 68%로 뒤를 이었다.
외부 조사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CB인사이츠는 스타트업 실패 원인 1위로 시장 수요 부재(42%)를 꼽았고, 스타트업 지놈은 고성장 스타트업의 74%가 ‘너무 이른 확장’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분석했다. 스타트업이 가진 자원의 규모만큼이나 그 자원을 어디에, 언제 투입할 것인지 판단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스타트업 실패의 본질인 ‘우선순위 판단 부재’와 리소스 낭비 문제를 짚어내고 있는 박승표 대표. 단순한 광고 대행을 넘어, 병원처럼 정밀 진단하고 실행하는 ‘그로스메이커’ 시스템으로 스타트업의 성공 방정식을 만들고 있다.
채용과 대행 사이…’그로스팀 구독’으로 성장 기능을 채우다
스타트업이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역량을 모두 내부에 갖추려면 사람을 채용해야 하지만, 초기 기업일수록 채용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외주나 프리랜서, 마케팅 대행사에 맡기면 당장의 업무는 해결할 수 있어도 기업 전체의 상황을 살피며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우선순위를 정하기는 어렵다. 특정 채널의 성과를 높이는 것과 고객 유입부터 전환, 매출까지 전체 흐름을 관리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게 박 대표가 여러 기업을 만나며 확인한 지점이었다.
스케일업스쿼드는 이 간극을 채우기 위해 ‘그로스팀 구독’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필요한 업무를 건별로 대신 수행하기보다 기업의 현재 상태를 먼저 진단해 가장 시급한 목표를 정하고, 실행과 성과 측정까지 하나의 팀이 함께 맡는 구조다. 이를 서비스로 구현한 ‘그로스메이커’에서는 시니어 PM이 전체 전략과 우선순위를 총괄하고 그로스 PM이 실행을 담당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와 리포트는 성장 운영 시스템(GOS)에 축적해 다음 의사결정에 활용한다.
운영 구조를 병원에 빗대면 좀 더 이해하기 쉽다. 시니어 PM이 원장처럼 전체 상태를 진단하고 그로스 PM이 주치의처럼 실행을 맡는 동안 GOS는 전자의무기록처럼 기업의 변화와 성과를 기록한다. 무료 진단을 통해 먼저 성장의 병목을 찾은 뒤 목표·측정·퍼널·실행·단위경제 등 다섯 가지 기준으로 상태를 구체화하고,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건드리기보다 90일 동안 가장 중요한 지표 하나에 집중한다. 그 결과를 다시 진단에 반영해 다음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식으로, 앞서 박 대표가 지적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는 문제’를 실제 실행 체계 안에서 풀어낸다.
성과 역시 단순히 광고 지표가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결혼정보 스타트업의 경우 웹사이트와 CRM을 함께 개선하면서 회원 정보 제출 비율이 8%에서 40%로 높아졌고, 광고비를 추가하지 않고도 회원 수가 5배 이상 증가했다. 이후에는 늘어난 회원이 실제 계약으로 얼마나 전환되는지와 계약까지 걸리는 기간을 추적해 목표 매출을 달성하려면 언제까지 몇 명의 회원을 확보해야 하는지까지 역산했다. HR 테크 SaaS에서는 월 반복 매출이 2.1배로 증가하면서 이탈률이 28% 감소했고, 식품 커머스 프로젝트에서는 재구매율이 138% 늘어나는 결과로 연결됐다.
AI가 실행을 빨리할수록 ‘판단의 기준’이 중요해진다
AI 시대에도 박 대표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결국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생성형 AI 덕분에 콘텐츠 제작과 데이터 분석, 반복 업무의 속도는 크게 빨라졌지만, 기업이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디에 자원을 투입할지는 여전히 사람의 판단에 달렸다. 일하는 방식과 목표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채 AI부터 도입하면 잘못된 업무까지 더 빠른 속도로 반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스케일업스쿼드가 새로운 AI 도구의 활용 자체보다 판단력과 표준화된 실행 체계, 업종과 성장 단계별로 축적한 맥락 데이터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개발 중인 AI 그로스 에이전트에는 이미 정해진 업무를 빠르게 수행하는 기능과 함께 시장 수요를 살펴 애초에 만들 필요가 없는 제품이나 잘못 설정된 방향을 사전에 걸러내는 기능을 담는다. 실행의 속도는 AI로 높이되, 무엇을 먼저 해야 하고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 판단하는 데 지난 프로젝트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기준을 활용한다.
지난 3년간 수행한 300건 이상의 프로젝트는 스케일업스쿼드가 기업의 문제를 진단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을 만드는 기반이 됐다. 업종과 성장 단계가 다른 기업을 만나며 어떤 지점에서 성장이 막히고, 어떤 선택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지를 데이터와 운영 경험으로 쌓아왔다. 외부 투자 없이 성장한 회사는 2025년 매출 5억 원을 기록했고, 현재 9명의 팀으로 올해 매출 15억 원에 도전한다.
박 대표는 앞으로 스타트업이 성장에 필요한 역량을 확보하는 방식도 사람 한 명을 채용하는 형태에서 필요한 기능을 갖춘 ‘시스템과 팀’을 활용하는 형태로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AI가 보편화되면서 답을 얻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은 줄어들지만, 수많은 답 가운데 ‘우리 업종과 성장 단계에 맞는 답’을 골라내는 기준은 오히려 중요해진다. 자체적으로 전문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운 연매출 50억 원 이하 중소기업과 시리즈A 이전 스타트업에서 이런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고 판단해, 스케일업스쿼드는 이들을 ‘AI 전환 사각지대’로 보고 지난 3년간 데이터와 운영 체계를 준비해왔다.
스케일업스쿼드가 내건 미션인 ‘스타트업의 성공 방식을 만든다’도 이 지점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기업마다 제품과 시장, 성장 단계는 달라도 여러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반복되는 문제와 성과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데이터로 축적하면 한 기업에서 얻은 경험을 다음 기업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300건이 넘는 프로젝트를 거치며 스케일업스쿼드가 확인한 것은 무엇을 더 많이 하느냐보다 무엇을 먼저 하고, 불필요한 자원 투입을 어디에서 줄이느냐가 성장에 더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성장을 논하기 전에 낭비를 줄여야 합니다. 진짜 성장은 거기서 시작되죠.”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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