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것과 친환경으로 돈을 버는 것은 다른 문제다. 소재 가격은 높고 수급은 불안정한 데다 기존 제조 공정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환경적 가치에 공감해 한 번 제품을 선택하더라도 가격과 품질, 생산성이 따라주지 않으면 지속적인 구매로 이어지기 어렵다.
이민성 리베이션 대표가 친환경 사업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도 이 지점이다. 친환경이라는 당위성만 앞세우기보다 고객사가 다시 선택할 만큼 제품 개발 과정의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디자인과 양산 품질까지 확보해야 사업으로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 리베이션의 고객 재구매율은 77%에 달한다. 이 대표는 디지털 전환(DX) 플랫폼 ‘리스튜디오(RESTUDIO)’를 통해 제품 개발의 편의성을 높이고, 친환경 소재의 한계를 디자인과 제조 기술로 보완한 결과가 반복 구매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친환경의 가치를 실제 구매와 재구매로 연결하는 것이 리베이션이 만들어온 사업의 핵심이다.
이민성 리베이션 대표
기획부터 양산까지 통합…친환경의 당위성을 재구매로 바꾼 제조 DX
리베이션이 고객사에 제시하는 첫 번째 가치는 친환경 자체보다 제품 개발 과정의 효율에 있다. 기획부터 양산까지 흩어져 있던 제조 공정을 하나로 연결하면서 기존 6개월가량 걸리던 개발 리드타임을 3개월로 줄였고, 개발 비용 역시 30% 이상 절감했다. 여기에 높은 심미성과 정밀한 마감 품질을 더해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브랜드가 원하는 제품 수준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환경 데이터도 함께 다룬다. 친환경 소재를 공급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제품 기획과 디자인, 양산에 이어 글로벌 수출 규제 대응에 필요한 데이터까지 하나의 개발 과정으로 묶었다.
이 구조를 뒷받침하는 것이 DX 플랫폼 ‘리스튜디오’다. 현재까지 축적된 249건의 레시피를 기반으로 제품별 양산 데이터를 도출하고 있으며, 대기업 고객사를 중심으로 가장 높은 매출을 만드는 품목은 ‘페이퍼몰드’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다음 제품의 개발과 양산에 다시 활용하는 방식이다.
리베이션은 현재 손익분기점(BEP)을 달성하고 유닛 이코노믹스(Unit Economics)도 안정화된 단계로 평가한다. 이 대표는 재구매율 77% 역시 친환경이라는 가치뿐 아니라 제품 개발 과정의 경제성과 효율을 고객이 다시 선택한 결과로 본다.
리베이션 제품인 페이퍼몰드의 공정 (출처: 리베이션 홈페이지)
친환경 소재에서 양산·데이터까지…‘제품 개발 시스템’으로
리베이션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사업 구조를 택한 것은 아니었다. 창업 초기에는 디자인 전문 기업이나 친환경 패키지 생산 기업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지만, 이 대표가 시장에서 마주한 문제는 디자인과 소재를 갖추는 것만으로 실제 생산과 양산까지 연결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려면 소재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제조 기술과 양산 검증까지 함께 갖춰야 했고, 리베이션은 초기부터 자체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해 소재 기술과 시스템 R&D에 투자했다.
“창업 초기에는 디자인 전문 기업이나 단순 친환경 패키지 생산자 역할에 머무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과 소재는 있지만 생산과 양산 검증이 안 된다’는 시장의 핵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초기부터 자체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하고 소재 기술과 시스템 R&D에 투자했습니다. 이를 통해 엔드투엔드(End-to-End) 솔루션 기업으로 방향을 전환했으며, 선제적 기술 개발 덕분에 대규모 매출과 강력한 락인(Lock-in) 효과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같은 투자를 거치며 리베이션의 사업 범위도 디자인과 친환경 소재를 제안하는 단계에서 실제 생산과 양산까지 책임지는 형태로 달라졌다. 최근 ESG 관련 규제의 유예 기조로 친환경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고 시장의 성장세도 둔화되자 회사의 정체성은 더욱 분명해졌다. 막연한 친환경 이미지를 앞세우기보다 고객사가 제품을 개발하면서 겪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 개발 시스템 회사’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대기업과 글로벌 브랜드사와의 거래가 늘면서 새로운 과제도 생겼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제품의 환경적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워졌고,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에 대한 검증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실제 환경적 효과를 데이터로 증명하는 과정까지 요구받게 됐다.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에서 친환경 주장은 더 이상 선언만으로 통하지 않습니다. 리베이션은 디지털 솔루션을 통해 제품의 전 생애주기 평가(LCA)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탄소 리포트 증빙 패키지’를 자동 생성해 제공합니다.”
리스튜디오의 역할도 이에 맞춰 달라졌다. 제품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데 활용했던 DX에 소재와 양산 데이터, 탄소 증빙을 더하면서 글로벌 브랜드와 수출 시장의 규제 대응까지 제품 개발 과정 안에서 다룬다.
리베이션의 포트폴리오인 뮤어 하이크 재사용 가능 카고 박스 (출처: 리베이션 홈페이지)
기술과 사람으로 만드는 리베이션의 다음 성장
리베이션은 리스튜디오의 기능을 친환경 소재 추천과 저탄소 제품 개발까지 확장하려 한다. 고객사가 개발하려는 제품에 적합한 친환경 소재를 추천받고, 저탄소 제품 개발에 필요한 큐레이션까지 한 번에 제공받는 방식이다. 디자인과 소재 개발, 양산 과정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제품 개발 전반에 활용해 환경 규제 대응까지 지원하는 통합 솔루션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방향이다.
특히 미국과 프랑스, 캐나다처럼 환경 규제가 까다로운 시장을 주요 진출 대상으로 보고 있다. 제품 개발 단계부터 소재 선택과 탄소 데이터를 함께 관리해 수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규제 문제에 대응하고, 기업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다. 이 대표는 3년 후 리베이션의 모습을 ‘환경 규제 문제를 해결해주는 통합 솔루션 기업’으로 그리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2030년까지 기업들의 포장재에서 플라스틱을 완전히 제거하고 탄소 배출을 100% 감축한다는 목표와 함께 코스닥(KOSDAQ) 상장도 제시했다. 친환경 제품에서 출발한 사업을 소재와 양산, 데이터, 글로벌 규제 대응까지 연결해 환경적 성과와 기업의 성장을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방향이다.
이 같은 성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 대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는 “스타트업일수록 사업을 성공시키는 열쇠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며, 연초마다 구성원들과 직접 각자의 KPI와 비전보드를 설계한다. 대표가 일방적으로 목표를 정하기보다 구성원이 자신의 목표를 세우도록 하고, 이를 달성하면 명확하고 투명한 보상으로 연결한다.
사람과 투자에 대한 이 대표의 기준에는 창업 초기의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떠나 인프라가 부족했던 친환경 제조 시장에 뛰어든 뒤 초기 투자를 유치했지만, 확보한 자금을 어디에 집중할지를 두고 고민이 컸다. 그때 선택한 것은 제품과 소재의 본질에 투자하는 일이었고, 그 결정은 이후 리베이션이 양산 역량을 확보하는 토대가 됐다.
우베 크레머링(Uwe Cremering) 독일 iF 디자인 회장이 리베이션 본사를 방문해 에코디자인의 방향성과 향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출처: 리베이션 제공)
친환경 시장을 키우려면 ‘재활용’보다 앞단을 봐야
이 대표는 친환경·소재·제조 분야의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정책 역시 제품이 만들어진 이후의 재활용뿐 아니라, 처음부터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거나 바이오 기반 소재로 전환하는 기술까지 폭넓게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재와 제조 분야는 R&D부터 설비 구축과 양산 검증까지 상당한 시간과 자본이 필요한 만큼, 원천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의 특성을 고려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재활용이나 재생 플라스틱(PCR)에 국한된 정책은 결국 플라스틱의 지속적인 사용을 전제로 하는 선형적 접근입니다. 유럽처럼 애초에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원천적 감량’ 기술이나 ‘100% 바이오 기반 자원’으로의 전환을 이끄는 딥테크 기업들에게 R&D 등 제도적 혜택이 대폭 강화되어야 혁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환경 규제 역시 기업의 부담이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기준이 조기에 마련되면 기업이 제품 개발 단계부터 명확한 기준에 맞춰 준비할 수 있고, 원천 감량과 바이오 소재 등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기후테크 기업에는 새로운 시장과 투자 수요가 생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리베이션도 이러한 변화를 먼저 경험한 기업으로서 역할을 이어가려 한다. 이 대표는 선도적인 기술 개발과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기후테크 창업가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맡겠다는 뜻을 밝혔다.
리베이션이 말하는 친환경은 사업의 지속가능성까지 포함한다. 환경에 좋다는 당위성만으로 한 번의 선택을 이끌어내기보다 개발 과정의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디자인과 양산 품질을 갖춰 고객이 다시 찾을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재구매율 77%는 그 결과를 보여주는 숫자로, 친환경도 시장에서 선택받고 다시 구매돼야 살아남는다는 이민성 대표의 사업 기준을 보여준다.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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