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과 글로벌 환경 규제 강화 속에서 항공 산업의 탈탄소화를 이끌 솔루션으로 지속가능 항공유(SAF)가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 국내에서 출발하는 모든 국제선 항공편에 SAF 혼합 의무화 제도가 순차적으로 도입됨에 따라, 정유 및 석유화학 산업 구조를 친환경으로 재편해야 하는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제47회 국제환경산업기술·그린에너지전(ENVEX 2026)의 EU 비즈니스 허브(EU BUSINESS HUB) 관에서 독보적인 바이오매스 전환 기술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프랑스의 친환경 클린테크 기업 ‘하프너 에너지(Haffner Energy)’를 만났다.
하프너 에너지는 30년 이상의 업력을 바탕으로 산림 부산물, 농업 폐기물, 유기성 잔재물 등을 열화학적 공정을 통해 그린 수소, 재생 합성가스, 그리고 지속가능 항공유(SAF)로 전환하는 특허 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선두 주자다. 본지는 한국을 처음 방문한 하프너 에너지의 글로벌 최고 마케팅 책임자(Global Chief Marketing Officer)이자 SAF 부문 총괄인 마르셀라 프란키(Marcella Franchi)를 만나 그들의 혁신적인 기술력과 한국 시장을 향한 비즈니스 전략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ENVEX 2026 부스에서 하프너 에너지의 독자적인 기술과 재생 에너지 솔루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마르셀라 프란키 글로벌 최고 마케팅 책임자(CMO)
가족 기업의 30년 노하우가 빚어낸 혁신, 열분해(Thermolysis) 기반 공정
하프너 에너지는 마크 하프너(Marc Haffner)와 필립 하프너(Philippe Haffner) 형제가 설립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기후테크 가족 기업이다. 오랜 기간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열 생산 설비를 공급하며 축적한 기술적 노하우는 CEO인 필립 하프너의 선구안을 거쳐 전 세계적 화두인 탈탄소화(Decarbonization) 솔루션으로 진화했다.
그 중심에는 하프너 에너지가 독자 개발하여 세계적 특허를 획득한 ‘하이퍼가스(Hypergas®) 모듈’이 있다. 이 공정은 기존의 단순 소각 방식과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 산소가 없는 고온의 반응기 내에서 바이오매스를 가열하여 수소가 풍부한 합성가스(Syngas)를 추출해내는 열분해 기술이 핵심이다.
마르셀라 프란키 CMO는 하프너 에너지가 창립 이래 줄곧 바이오매스 분야에만 주력해 왔음을 밝히며, 나무나 산림 폐기물, 농업 부산물 같은 유기성 잔재물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고온의 밀폐된 오븐에서 가열하여 순수한 가스 성분을 분리해내는 열화학적 공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합성가스를 정제하는 방식을 달리하여 그린 수소나 SAF 등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청정 연료를 맞춤형으로 생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스와 바이오차의 동시 생산, 탄소를 격리하는 ‘탄소 네거티브’의 실현
하프너 에너지 기술이 가진 가장 차별화된 경쟁력은 청정 가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고체 탄소 덩어리인 ‘바이오차(Biochar)’가 함께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식물이 자라며 대기 중에서 흡수했던 이산화탄소가 열분해 과정을 거치면서 고정된 형태의 고체 탄소로 남게 되는 원리다.
프란키 CMO는 바이오차의 다각적 가치에 대해 언급하며, 식물이 머금고 있던 탄소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고체 상태로 붙잡아둔 것이 바로 바이오차라고 전했다. 이를 토양에 묻으면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격리(Sequestration)되기 때문에 공정 전체가 탄소 네거티브(Carbon Negative)를 달성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공식 인증에 따르면, 하프너 에너지 공정으로 녹색 수소 1kg을 생산할 때마다 약 10kg의 이산화탄소가 격리되는 탁월한 환경적 효과를 거둔다.
또한 생산된 바이오차는 농업 분야에서 토양을 재생하고 수분 유지력을 높이는 고효율 비료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건설 산업에서 시멘트에 첨가되어 단열 및 공조 효과를 내는 친환경 건축 자재로도 활용도가 높다. 가스와 바이오차라는 두 가지 고부가가치 물질을 하나의 공정에서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글로벌 청전에너지 시장이 하프너 에너지를 주목하는 이유다.
▲ 하프너 에너지가 보유한 바이오매스 열분해 공정(The biomass thermolysis process)의 메커니즘을 나타낸 인포그래픽. 바이오매스 잔재물이 하이퍼가스 모듈을 거쳐 수소, SAF, 메탄올 등 다양한 에너지원으로 전환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자료=하프너 에너지)
“세계 최대 제트 연료 수출국 한국, 수입 원유 대신 국내 바이오매스로 자립해야”
하프너 에너지는 글로벌 시장 확장 단계에서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을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이 석유화학 산업의 고도화된 인프라를 바탕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제트 연료(항공유) 수출국이라는 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프란키 CMO는 한국이 세계적인 제트 연료 수출국이지만, 현재 수출하는 연료의 대부분은 중동 등에서 수입한 화석 원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거대한 석유화학 공장에 수입 원유 대신 하프너 에너지의 공정을 거친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투입한다면 중동에서 원유를 사 오지 않고도 동일한 고품질의 친환경 제트 연료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국 시장을 향한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국토가 넓지 않은 한국이라도 국내 곳곳에 존재하는 산림 부산물이나 유기성 폐기물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모델이며, 이는 환경 연료 생산을 넘어 한국의 에너지 안보(Energy sovereignty)와 자립을 실현하는 가장 혁신적인 물류 체계가 될 것이라는 견해다. 내년부터 본격화되는 국내 SAF 의무화 제도는 하프너 에너지에게 거대한 기회의 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와 전쟁의 한파를 딛고 일어선 기술 집약적 회복력
지금의 독보적인 SAF 생산 기술이 완성되기까지 하프너 에너지가 걸어온 길이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과 연이어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전역의 탈탄소화 지원 정책과 산업 투자를 일시적으로 동결시키는 거대한 대외적 악재로 작용했다. 글로벌 경제가 위축되고 자금줄이 마르는 상황은 신생 그린테크 기업에 치명적인 위기였다.
그러나 하프너 에너지는 전 세계적 정체기를 오히려 기술 고도화를 위한 도약의 기회로 반전시켰다. 외부 활동이 제한되고 프로젝트들이 지연되는 동안, 연구개발(R&D) 역량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하이퍼가스 모듈의 효율을 높이고 SAF 대량 생산을 가속화할 수 있는 독자적 공정을 완성해 낸 것이다. 위기 속에서 타협하기보다 기술적 완성도를 다지는 데 집중한 뚝심이 오늘날 글로벌 SAF 시장의 선두 주자로 우뚝 거듭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프란키 CMO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여파로 유럽 내 거시적 지원이 중단되었을 때, 이를 기술 고도화를 통한 SAF 생산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기회로 전환했다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온 하프너 에너지 특유의 역동성과 회복력을 강조했다.
하프너 에너지(Haffner Energy)의 공식 로고.
국내 대기업 대상 전략적 접촉 모색… 한국 산업계의 탄소 중립 파트너십 구축 목표
하프너 에너지는 이번 ENVEX 2026 참가를 계기로 한국의 에너지, 제철, 항공 등 다양한 산업군의 선도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한국 시장 진출을 위해 이들이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 협력 후보 기업들의 면면도 구체적이다.
석유화학 및 에너지 분야의 대기업인 SK에너지와 GS칼텍스는 물론, 이미 국내에서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성공적으로 가동하고 있는 SGC에너지가 주요 접촉 대상이다. 아울러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을 비롯해, 제철 공정의 대대적인 탈탄소화와 수소 공급망 구축이 시급한 포스코(POSCO) 역시 핵심 협력 후보로 꼽혔다. 프란키 CMO는 하프너 에너지의 공정에서 발생하는 바이오 기반의 순수한 이산화탄소를 친환경 ‘그린 스틸’ 생산 공정에 연계할 수 있어 제철 산업의 탈탄소화에도 완벽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프란키 CMO는 한국이 대단히 혁신적이며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놀라운 속도로 흡수하는 역동적인 시장이라고 평가하며 기후테크와 탄소 중립에 대한 한국 사회의 높은 관심과 세련된 정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 온 하프너 에너지의 역동성이 한국 산업계의 탄소 중립 여정에도 강력한 동력이 되기를 바란다며, 역량 있는 한국의 파트너들을 발굴해 조속히 실제 프로젝트를 성공 궤도에 올리고 싶다는 기대를 피력했다.
글로벌 에너지 패러다임이 격변하는 서막 속에서 하프너 에너지가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폐기물로 버려지던 바이오매스를 활용해 탄소를 격리하면서 그린 수소와 SAF를 동시에 생산하는 이들의 기술은, 친환경 규제 압박을 성장의 기회로 반전시켜야 하는 한국 석유화학 및 중화학 업계에 가치 있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특히 팬데믹과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오히려 기술 혁신을 이루어낸 이들의 회복탄력성은 국내 청전에너지 지형도에 신선한 자극과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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