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소재 하나가 생산라인의 안정성을 좌우하기도 한다. 진공펌프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돕는 윤활유와 장비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열전달액이 대표적이다. 첨단 제조업을 떠받치는 필수 소재지만 국내 기업들은 상당 부분을 해외 제품에 의존해 왔으며, 공급이 불안정해지거나 가격이 오르더라도 장비와 공정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쉽게 다른 제품으로 바꾸기 어렵다.
이 시장에 도전장을 낸 기업이 2024년 설립된 도데솔루션이다. 일본계 화학기업 연구소에서 불소소재를 연구하던 김도형 대표는 해외 의존도가 높은 불소유체를 국내에서 직접 합성하고 공급하겠다는 목표로 창업했다. 처음에는 사용한 진공펌프 오일을 재생하는 기술에서 출발했지만, 고객사를 찾아다니며 확인한 현장의 요구는 예상과 달랐다. 기업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은 재생 오일보다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신규 제품이었다.
이러한 사업 전환은 첫 상용화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 3월 도데솔루션이 국산화한 과불화폴리에테르(PFPE) 오일이 진공펌프 공급·정비 전문기업에 유상 공급됐고, 이후 같은 고객의 재구매가 이뤄졌다. 까다로운 품질 기준이 요구되는 반도체 소재 시장에서 첫 납품 이후 다시 선택받았다는 사실은 연구실에서 확보한 기술이 실제 고객의 수요로 연결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우수한 소재를 개발하는 것만큼 고객이 믿고 다시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재구매는 제품의 기술력뿐 아니라 공급업체로서의 신뢰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는 진공펌프용 오일에 이어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장비의 온도를 제어하는 칠러용 열전달액까지 국산화 범위를 넓혔다. 자체 개발한 ‘SOLEXA DFL-30’의 고객 적용평가를 진행하며 새로운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도데솔루션 김도형 대표
폐오일 재생에서 신규 합성으로, 고객이 바꾼 사업의 우선순위
김 대표는 창업 전 일본계 화학기업 연구소에서 PFPE와 불소소재를 연구하며 연간 100톤급 불소윤활유 양산 설비의 설계부터 준공, 안정화, 판매까지 경험했다. 실험실에서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것과 이를 고객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생산하는 일은 전혀 다른 과제였고, 연구개발부터 생산공정과 품질관리, 실제 공급에 이르는 전 과정을 경험한 것은 훗날 창업의 밑거름이 됐다.
처음 사업화를 구상한 분야는 사용 후 버려지는 반도체 진공펌프용 오일의 재생 기술이었다. 고가의 불소계 윤활유를 폐기하는 대신 저하된 물성을 복원해 재사용할 수 있다면 자원 낭비와 환경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폐오일에 새 오일을 혼합하는 방식만으로는 성능을 충분히 회복하기 어려웠고, 재생 과정에서도 해외 원료에 의존한다면 수입 소재의 공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실제 고객사를 만나면서 사업의 방향은 달라졌다. 유럽의 생산비용 상승과 아시아로 향하는 해상 운송비 증가로 수입 오일의 조달 부담이 커진 기업들은 폐오일 재생보다 신규 오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국내 제조업체를 필요로 했다. 이후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의 온도를 제어하는 열전달액까지 국산화해 달라는 요청이 이어지면서 연구개발의 우선순위도 바뀌었다.
처음 세운 사업계획보다 고객 현장의 요구가 변화를 이끈 셈이다. 도데솔루션은 신규 PFPE 오일 합성과 칠러용 열전달액 개발로 기술 영역을 확장했으며, 유럽 환경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원료를 활용해 불소유체를 합성하는 독자 기술도 확보했다. 관련 국내외 특허는 총 15건을 출원했고, 이 가운데 3건의 등록을 마쳤다.
사업 영역이 넓어질수록 중요해진 것은 연구실에서 확인한 성능을 실제 생산 현장에서도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일이었다. 반도체 제조 장비는 공정 가스와 화학물질, 온도 변화 등 까다로운 조건에서 가동되기 때문에 윤활유와 열전달액에도 높은 화학적 안정성이 요구된다. PFPE와 같은 불소계 소재가 정밀 장비에 사용되는 이유지만, 우수한 물성을 확보했다는 사실만으로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격보다 호환성…반도체 현장에서 국산 소재가 넘어야 할 문턱
도데솔루션이 개발한 SOLEXA DFL-30은 칠러용 불소계 열전달액으로, 3M의 FC-3283이 사용되던 분야를 초기 진입 시장으로 삼고 있다. 칠러는 열전달액을 순환시켜 장비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설비인 만큼 유체의 물성이 달라지면 운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객사들이 가격 경쟁력보다 기존 제품과의 호환성을 우선 검토하는 이유이며, 새로운 제품을 보충해 사용하는 경우에는 서로 다른 유체가 혼합된 상태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해야 한다.
김 대표 역시 이러한 혼합 사용 적합성을 제품 개발의 핵심 조건으로 꼽는다. 국내에서 제조했다는 사실만으로 구매를 기대하기보다 기존 제품과 동등한 성능을 확보하고 실제 장비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자체 시험에서 SOLEXA DFL-30과 비교 제품 FL-300의 25℃ 밀도는 각각 1.82g/㎤와 1.81g/㎤, 비열은 1,061J/(kg·℃)와 1,073J/(kg·℃)로 나타나 주요 물성이 유사한 수준임을 확인했다. 다만 실험실에서 확보한 수치가 장기 운전 성능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어서 고객 현장에서의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품질관리 기준도 마련했다. SOLEXA DFL-30은 순도 99.5% 초과, 수분 함량 20ppm 미만을 출하 관리 규격으로 설정했으며, 진공펌프용 PFPE 오일에 대해서는 생산 로트별 자체 분석성적서(COA)를 발행하고 있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공급업체 평가에 대응하는 한편, 실제 장비에서 장기간 사용했을 때의 안정성과 생산 시점에 따른 품질 일관성도 확인하고 있다.
현재 칠러 전문기업에 SOLEXA DFL-30 평가용 물량을 공급한 데 이어 10월 초부터는 국내 디스플레이 대기업의 장비 적용을 위한 평가도 시작됐다. 약 3개월로 예상되는 평가 기간에는 운전시간과 유체 보충량, 열화·부식·누설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실제 공정에서 요구하는 성능과 안정성을 충족하는지 판단하게 된다. 아직 최종 공급사 승인이나 양산 납품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이번 평가 결과는 열전달액 사업의 상용화 가능성을 가늠할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
도데솔루션이 국산화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도 있다. 3M이 2025년 말 과불화·폴리불화알킬물질(PFAS) 제조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기존 불소계 유체를 사용하던 기업들은 새로운 공급선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해외 제품에 의존해 온 국내 기업들에도 공급망 다변화의 필요성이 커졌으며, 국내에서 직접 합성·정제한 유체를 공급할 수 있다면 운송비와 공급 지연에 따른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열렸다.
다만 글로벌 기업의 시장 철수가 곧바로 국산 제품의 채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 사용되는 소재는 작은 물성 차이도 장비 운전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기존 제품과의 성능 동등성, 장비 호환성, 장기 공급능력을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 도데솔루션이 국내 고객사와의 적용평가를 진행하면서 대만 시장 진입도 타진하는 이유다. 반도체 산업이 발달한 대만에서도 해외 소재의 운송비와 공급 리스크를 줄이려는 수요가 있는 만큼 현지 공급망을 확보한 거래 채널을 통해 사업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국내 반도체·전자소재 기업그룹과의 협력도 구체화됐다. 올해 3월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8월에는 공동개발계약을 맺었으며, 자체 불소유체 합성·제조 기술과 협력사의 사업 역량을 결합해 제품 개발과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향후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세정용 소재와 데이터센터 액침냉각 등 새로운 산업 분야로 제품군을 확대하되, 기존 제품의 품질과 공급능력을 안정화하는 데 우선순위를 둘 예정이다.
김도형 도데솔루션 대표
2028년 연 500톤 생산 목표, 『마지막 수업』에서 시작된 기술 자립의 꿈
고객의 재구매와 신규 평가 요청이 이어지면서 다음 과제는 생산 규모 확대다. 연구실과 파일럿 설비에서 제품을 만드는 것과 고객이 요구하는 물량을 일정한 품질로 공급하는 일은 다르다. 경북 경산의 자사 시설에는 파일럿 합성 설비와 증류·분자증류 정제 설비, 분석·공정 장비 28종을 갖췄으며, 2027년 연 수십 톤 규모의 생산체계를 마련한 뒤 2028년에는 경산에 확보한 산업용지를 활용해 연 500톤 이상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설비 확충을 위한 자금 조달도 진행 중이다. 회사가 밝힌 누적 투자유치액은 7억3,000만원으로, 2025년 말 유치한 프리A 투자 5억원이 포함돼 있다. 현재 25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유치를 추진하고 있으며, 매출 확대와 금융권 자금 조달도 병행할 방침이다. 기존 사업계획에서 제시한 2027년 매출 목표는 29억7,000만원, 영업흑자 전환 목표 시점은 2029년이다.
그러나 당장 집중하는 것은 매달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매출을 확보하는 일이다. 소재기업은 기술개발과 고객 평가, 설비 투자, 생산 안정화가 맞물려 성장하는 만큼 고객의 검증 절차를 통과하고 장기적인 공급 관계를 구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매월 매출을 꾸준하게 만들어 사업의 성장 흐름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김도형 대표가 회사 이름을 지을 때 떠올린 작품은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이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뒤 자신의 언어를 배울 자유마저 잃게 되는 이야기는 국가의 힘이 부족하면 당연하게 누리던 권리와 자유조차 지키기 어렵다는 교훈을 남겼다. 도데솔루션이라는 사명에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그에게 화학소재의 국산화는 단순히 수입 제품을 대체하는 사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같은 첨단산업에서 핵심 소재를 해외에 의존하면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국내 기업의 선택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모든 소재를 국내에서 생산할 필요는 없더라도, 중요한 소재를 자체 기술로 개발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만큼은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다.
해외에서 개발한 제품을 구매해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에서도 직접 소재를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오랜 연구와 양산 경험에서 나왔다. 대한민국의 화학소재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바람은 그렇게 창업으로 이어졌다. 장기적으로 기업공개(IPO)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당장은 고객이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는 것이 우선이다.
“국내 첨단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불소유체를 자체 기술로 개발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상용화를 통해 대한민국 불소유체 국산화를 선도하는 전문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폐오일 재생 기술에서 출발한 도데솔루션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신규 합성으로 사업을 전환했고, 이제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 필요한 다양한 불소유체의 국산화에 도전하고 있다. 첫 납품과 재구매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열전달액의 장기 성능 검증과 대규모 생산체계 구축이라는 과제도 남아 있다.
『마지막 수업』에서 출발한 기술 자립의 꿈은 결국 고객이 실제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재를 만드는 일로 이어졌다. 수입 제품을 대체할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과 고객이 반복해서 선택하는 제품을 공급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도데솔루션이 국산화의 의미를 기술적 성취에서 산업적 경쟁력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 그 답은 앞으로 쌓아갈 납품 실적과 고객의 선택에 달려 있다.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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