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규제 샌드박스에서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실증한 스타트업이 정식 인허가 단계에서 탈락했다면, 그동안의 실증 경험은 어떻게 평가받아야 할까. 금융당국이 시장 안정성을 이유로 신규 사업자 수를 제한할 때 그 결정에는 어떤 절차와 근거가 필요한지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토큰증권(STO) 시장의 제도화가 추진되는 가운데 조각투자 플랫폼을 운영해 온 루센트블록이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심사 과정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다. 이번 논란은 개별 기업의 인가 탈락을 넘어 금융규제 샌드박스의 실증 성과가 정식 시장 진입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신산업의 경쟁 질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로 번지고 있다.
루센트블록은 10월 27일 서울 강남구 마루180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STO 장외거래소 인가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과 심사 공정성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함께 마련한 이날 기자회견에서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는 금융위원회가 조각투자 유통 플랫폼의 인가 수를 최대 2개로 제한한 결정이 어떤 권한과 절차를 거쳐 확정됐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루센트블록이 오랜 기간 혁신금융서비스를 운영하며 시장을 검증해 왔음에도 정식 인가 단계에서 경쟁할 기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루센트블록이 10월 27일 서울 강남구 마루180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허 대표가 가장 먼저 문제 삼은 것은 인가 심사의 결과보다 심사의 전제가 된 사업자 수 제한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9월 3일 정례회의에서 조각투자 유통 플랫폼 제도화 방안을 논의했지만, 당시 인가 수 제한은 정식 의결 안건이 아닌 보고 안건에 포함돼 있었다. 관련 자료에는 사업자 수 제한의 예시로 ‘최대 2개’라는 내용이 제시됐으며, 다음 날 발표된 보도자료에서는 해당 수치가 확정적인 정책처럼 다뤄졌다는 것이 허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보고 자료에 제시된 예시가 실제 인가 기준으로 적용되기까지 어떤 의사결정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가 합의제 행정기관이라는 점에서 인가 수 제한이 위원회의 정식 의결을 거친 것인지, 별도의 결정 권한에 따라 확정된 것인지가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 대표는 지난 22일 금융당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관련 설명을 수정하고 실무상 착오를 인정했다는 취지의 내용도 언급했다. 다만 해당 자료의 구체적인 문구와 법적 의미는 금융당국의 공식 설명을 통해 추가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기자회견에서 제기된 의문만으로 인가 수 제한이 위법하거나 무효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사업자 선정의 기준이 형성된 과정은 심사의 신뢰성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업자 수를 2개로 제한한 정책적 근거 역시 논쟁의 대상이 됐다. 금융당국은 조각투자 유통 플랫폼이 다수 설립될 경우 투자자와 유동성이 분산되고 시장이 난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시해 왔다. 반면 허 대표는 인터넷전문은행과 부동산신탁업의 신규 인가 과정에서는 경쟁도와 시장 집중도,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한 전례가 있다며 STO 장외거래소에서도 사업자 수를 제한할 만큼 충분한 분석이 이뤄졌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시장 집중도를 측정하는 허핀달-허쉬만 지수(HHI) 등을 언급하며 인가 수가 왜 2개여야 하는지, 3개 이상의 사업자가 참여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정책 목적과 사업자 간 경쟁을 제한하는 조치의 적정성을 구분해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샌드박스에서 제도권으로…실증 기업의 시장 진입 기회가 쟁점
이번 기자회견에서 허 대표가 거듭 강조한 또 다른 문제는 금융규제 샌드박스의 제도화 과정이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기존 규제 아래에서 사업화하기 어려운 혁신적 금융서비스에 일정 기간 실증 기회를 제공하고, 운영 결과를 토대로 제도 개선 가능성을 검토하는 장치다. 루센트블록은 이러한 제도 아래에서 조각투자 서비스를 운영하며 시장을 검증해 왔다는 점을 내세웠다.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STO 장외거래소 인가 절차와 심사 공정성에 관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허 대표는 금융혁신지원 특별법 제21조를 근거로 혁신금융 사업자가 지정 기간 만료 전에 관련 법령에 따른 인허가 등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나 신청 절차가 마련돼 있더라도 실질적인 시장 진입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제도화 과정에서 혁신기업의 사업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창업기업이 기술과 자본을 투입해 금융서비스를 검증했음에도 정식 시장 진입이 어려워진다면, 이후 샌드박스에 도전하려는 기업들의 투자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이 정식 인가를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실증 경험을 인허가 심사에서 어느 범위까지 반영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다.
루센트블록은 예비인가 탈락 사유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허 대표는 자기자본과 재무건전성, 사업계획 등 법령상 요건보다 제한된 인가 수와 사업자 간 선정 순위가 탈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실제 심사 기준의 적용 여부는 금융당국의 세부 평가자료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배구조 논란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허 대표는 본인 지분은 약 35%이며,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으로 집계된 51%에는 개인투자조합 투자자들의 지분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지분은 임의로 처분하거나 의결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없어 단순한 지분율만으로 실질적인 지배력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넥스트레이드의 STO 장외거래소 사업 참여를 둘러싼 논란도 다뤄졌다. 허 대표는 넥스트레이드가 관련 사업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약속을 했고, 이를 전제로 루센트블록과의 사업 검토가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업 방해 목적이나 의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한 점은 존중하지만, 당시 약속과 정보 취득 과정의 공정성은 별도로 살펴볼 사안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는 루센트블록 측 설명으로, 실제 약속의 내용과 효력, 정보 활용 여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허 대표는 지금까지 약 230억원의 자본을 조달하고 인프라 구축에 250억원 이상을 투입했으며, 사업 준비와 운영에 약 7~8년을 들였다고 밝혔다. 조달 자본과 인프라 투입 비용은 성격이 달라 단순 합산하기 어렵지만, 오랜 기간 사업을 운영하며 구축한 인프라와 경험이 정식 시장에서 경쟁할 기회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에 우려를 나타냈다.
향후 대응과 관련해서는 기존 인가 사업자의 지위를 취소하거나 경쟁사를 배제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루센트블록은 신속한 추가 인가를 통해 정식 시장에서 경쟁할 기회를 요구하고 있으며, 재심사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배구조와 대주주 관련 요건도 보완할 의사가 있다는 입장이다. 법적 대응 가능성은 열어두되 소송에 따른 시간과 사업 운영 부담을 고려해 정책적 해결을 우선하고 있다.
이번 사안은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혁신금융 실증과 제도화 과정의 문제로 다뤄졌다. 이언주·민병덕·조정훈·박민규·신동욱·김태년·정태호 의원 등이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루센트블록과 조각투자 시장의 제도화 문제를 거론한 만큼, 금융당국이 인가 수 제한의 결정 경위와 심사 기준을 어떻게 설명할지도 관심사다.
이번 논란은 루센트블록의 추가 인가 여부를 넘어 새로운 금융시장의 사업자 수를 제한하는 기준이 어떤 절차로 마련됐고, 기존 실증 사업자의 경험을 정식 인허가 과정에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로 이어진다. 시장 안정성과 투자자 보호를 고려하더라도 경쟁 기회를 제한하는 정책에는 충분한 판단 근거가 뒷받침돼야 하며, 샌드박스에서 제도권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기업이 적용 기준과 사업 지속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루센트블록이 요구한 추가 인가가 이뤄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인가 수 제한의 결정 경위와 심사 기준, 기존 실증 사업자의 권리 범위에 대한 금융당국의 설명은 향후 다른 혁신금융 분야의 제도화 과정에서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The post [VS 현장] “7년 실증했는데 시장 진입은 막혔다”…루센트블록, STO 인가 ‘2개사 제한’ 정면 문제 제기 appeared first on 벤처스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