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진단에서 유전체 분석 기술의 발전은 질환의 원인을 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를 실제 의료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인프라는 국가와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유전체 검사를 수행할 장비와 전문인력, 분석 소프트웨어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환자가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신생아와 소아 희귀질환은 조기 진단 여부가 후속 진료와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검사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AI 기반 희귀질환 진단 기업 쓰리빌리언이 페루 공공의료기관에 유전체 검사와 AI 변이 해석 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을 통해 중남미 시장 진출에 나선다.
쓰리빌리언(대표 금창원)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포용적 비즈니스 프로그램(Inclusive Business Solution, IBS)’ 사업자로 선정됐다. 코이카 IBS는 민간기업의 기술과 사업 역량을 활용해 개발도상국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지속 가능한 사업모델을 구축하도록 지원하는 민관협력 프로그램이다.
쓰리빌리언이 AI 유전변이 해석 소프트웨어 ‘제브라(GEBRA)’를 활용해 페루 현지 의료기관과 연계한 자립형 유전진단 체계를 구축한다. (자료 제공: 쓰리빌리언)
쓰리빌리언은 이번 사업을 통해 페루에 희귀질환 유전체 진단 인프라와 유전체 기반 신생아 선별검사(gNBS) 체계를 구축한다. 핵심 기술로는 자체 개발한 AI 유전변이 해석 소프트웨어 ‘제브라(GEBRA)’를 활용한다.
페루는 희귀질환 진단 수요에 비해 의료 인프라의 지역적 편중이 큰 국가로 꼽힌다. 쓰리빌리언이 인용한 페루 보건부(MINSA) 자료에 따르면 현지 희귀질환 환자는 약 200만 명으로 추정된다. 반면 전문 의료인력과 진단 인프라의 90% 이상이 수도 리마에 집중돼 있어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들은 유전체 검사와 전문 진료를 받는 데 제약이 있는 상황이다. 쓰리빌리언은 이러한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해 현지 거점 병원에 유전체 검사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방 의료기관과 연계하는 진단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사업 기간은 2027년 6월부터 2032년 5월까지 5년이다. 리마와 카야오를 비롯한 5개 지방 지역에서 희귀질환 의심 소아와 일반 신생아 등 총 5000명을 대상으로 유전체 검사를 지원한다. 현지 공공의료진 1500명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진행한다. 유전체 검사와 변이 해석, 진단 보고에 필요한 역량을 높여 사업 종료 이후에도 현지 의료기관이 진단체계를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이번 사업에는 유전체 기반 신생아 선별검사가 포함됐다. 신생아의 유전정보를 분석해 유전질환의 가능성을 조기에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후속 진료와 치료로 연결하는 체계를 마련할 예정이다.
유전체 기반 신생아 선별검사는 기존의 신생아 검사체계와 함께 유전질환의 조기 발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접근법이다. 다만 검사 결과의 임상적 해석과 후속 진단, 치료 연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검사 장비와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의료진의 전문 역량 확보도 중요하다.
쓰리빌리언은 이번 사업에서 검사 인프라 구축과 의료진 교육, 품질관리를 함께 추진해 현지 의료기관의 진단 역량을 단계적으로 높일 계획이다.
AI 변이 해석부터 현지 의료진 교육까지…사업 종료 후 SaaS 공급 추진
페루 현지에 구축할 진단체계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장비와 AI 유전변이 해석 소프트웨어 제브라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NGS는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기술로, 유전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변이를 확인하는 데 활용된다. 그러나 검사로 확인한 다수의 유전변이 가운데 실제 질환과 관련된 변이를 선별하고 해석하는 과정에는 전문적인 분석 역량이 필요하다.
제브라는 이러한 유전변이 해석 과정을 지원하는 AI 소프트웨어로 쓰리빌리언은 현지 거점 병원에 NGS 검사 인프라와 제브라를 도입해 유전체 검사부터 변이 해석까지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예정이다. 또한 지역 의료기관과 협력해 검사 대상자를 발굴하고 진단이 필요한 환자가 검사와 후속 진료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번 사업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는 현지 의료기관이 외부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검사와 변이 해석, 진단 보고를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쓰리빌리언은 현지 의료진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검사와 분석 과정의 품질관리 체계도 마련할 계획이다.
사업 종료 이후의 운영 방식도 구체화했다. 쓰리빌리언은 2032년 5월 사업이 종료된 뒤에도 제브라를 클라우드 기반 구독형 소프트웨어(SaaS)로 공급하고 원격 품질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통해 초기 진단 인프라를 구축한 뒤 소프트웨어 공급과 유지관리 서비스를 통해 현지 의료기관의 운영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쓰리빌리언은 이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매출을 확보하고, 페루에서 구축한 진단체계를 인접 중남미 국가로 확대할 수 있는 사업모델로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다.
중남미 공공의료 시장에서는 전문 진단 인력과 유전체 분석 인프라의 부족이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쓰리빌리언은 페루에서 공공의료기관과 연계한 진단체계의 운영 경험을 확보한 뒤 다른 국가의 의료환경에 맞춰 제브라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숙진 쓰리빌리언 사업총괄이사는 “중남미는 잠재 희귀질환 환자 규모가 매우 크고 진단 수요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인프라가 부족해 공공의료 부문의 혁신 잠재력이 가장 큰 지역”이라며 “이번 코이카 IBS 사업을 통해 페루에 성공적인 자립형 진단체계를 정착시키고, 이를 교두보 삼아 수조 원 규모의 중남미 공공의료 시장에서 제브라 사업을 확대하며 글로벌 성장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쓰리빌리언은 현재 약 80개국에 희귀질환 유전진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질병관리청의 ‘희귀질환 진단지원사업’에 참여해 비수도권 환자의 유전진단 접근성을 높이는 사업을 수행해 왔다.
해외 공공의료 분야에서도 제브라 공급 경험을 확보하고 있다. 모로코 공공의료기관에 제브라를 공급해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의 신속 유전체 진단 인프라 구축에 참여했다. 또한 미국과 오스트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30여 개국의 의료·연구기관에서 제브라를 사용하거나 도입을 위한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쓰리빌리언은 이번 페루 사업을 통해 개별 의료기관에 진단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공공의료체계와 연계한 유전체 진단 인프라 구축 경험을 확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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