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의료 데이터의 결합이 수술 로봇의 기술 발전을 이끌고 있다. AI 기반 영상 분석과 실시간 수술 내비게이션은 의료진의 판단을 보조하고, 촉각 피드백 기술은 수술 과정에서 조직에 가해지는 힘을 보다 정밀하게 조절하도록 돕는다. 이동형·모듈형 플랫폼의 등장으로 대형 병원에 집중됐던 수술 로봇의 활용 범위도 다양한 진료과와 의료시설로 넓어지고 있다.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들이 차세대 플랫폼 개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아시아 기업들도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에 가세하면서, 수술 로봇 산업의 경쟁은 정밀한 기계장치의 성능을 넘어 장비 활용도와 운영 효율, 비용 경쟁력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모도르 인텔리전스(Mordor Intelligence)에 따르면 전 세계 수술 로봇 시장은 2026년 90억5000만 달러에서 2031년 139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CAGR)은 8.96%로, 고령화에 따른 수술 수요 증가와 AI 기반 영상 인식, 힘 피드백 기술의 발전이 시장 확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기존 정형외과와 비뇨기과를 넘어 신경외과와 심혈관 분야까지 로봇 수술의 적용 가능성이 넓어지면서 의료기기 기업들의 기술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다만 시장 성장률이 높아진다고 해서 의료 현장의 도입 여건까지 같은 속도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고가 장비의 구입과 유지보수 비용, 숙련된 의료인력 확보, 수술 건수에 따른 수익성은 병원이 신규 장비 도입을 결정할 때 함께 고려해야 할 요소다. 국내에서도 수도권 대형병원과 지역 의료기관 사이의 자원 격차, 건강보험 수가와 비급여 진료 구조 등이 수술 로봇의 활용 범위를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한다. 기술 발전을 실제 의료서비스의 확대로 연결하려면 장비 성능뿐 아니라 임상 교육과 운영체계, 경제성을 함께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AI 비전·촉각 피드백 경쟁…수술실 운영 방식까지 바뀐다
최근 수술 로봇 기술에서 주목할 변화는 의료진의 수술 동작을 정밀하게 구현하는 기능에 더해 수술 과정의 판단과 조작을 보조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AI 기반 영상 기술은 수술 중 해부학적 구조와 기구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활용되며, 실시간 내비게이션과 촉각 피드백은 의료진이 수술 부위의 상태를 보다 정밀하게 확인하고 조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인튜이티브서지컬(Intuitive Surgical)의 ‘다빈치 5(da Vinci 5)’는 힘 피드백 기술을 도입해 수술 기구가 조직에 가하는 힘을 의료진이 인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기존에는 화면을 통해 조직의 움직임을 확인하며 힘을 조절했다면, 촉각 정보를 추가로 제공해 보다 세밀한 조작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러한 기능이 실제 환자의 임상 결과를 얼마나 개선하는지는 수술 종류와 적용 환경에 따라 구분해 평가할 필요가 있다.
메드트로닉(Medtronic)의 ‘스텔스 엑시스(Stealth AXiS)’는 AI 기반 수술 계획과 실시간 내비게이션, 로봇 보조 기능을 통합한 플랫폼이다. 척추 수술뿐 아니라 두개골과 이비인후과 영역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영상 정보를 바탕으로 수술 기구의 위치와 이동 경로를 정밀하게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존슨앤드존슨 메드테크(J&J MedTech)의 ‘오타바(OTTAVA)’는 로봇 팔을 수술대에 통합한 연부조직 수술 시스템으로, 별도의 장비가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고 수술실의 작업 동선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개발됐다.
뇌 수술에 메드트로닉사의 정밀 수술 내비게이션 전용 의료기기, 스텔스 엑시스를 활용하고 있다. (출처: 메드트로닉 제공)
이러한 기술 변화는 수술 로봇의 적용 분야를 넓히는 동시에 병원이 장비를 선택하는 기준도 바꾼다. 모도르 인텔리전스는 신경외과 분야의 수술 로봇 시장이 2031년까지 연평균 9.32%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으며, 이동형·카트형 플랫폼 역시 같은 기간 연평균 9.73%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병원이 여러 진료과에서 장비를 공동으로 활용하거나 수술실 간 이동이 가능한 플랫폼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장비 활용도를 높이고 고정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반면 기술이 복잡해질수록 안전성과 유지관리의 중요성도 커진다. 소프트웨어 오류와 기구 파손, 멸균 문제 등으로 발생하는 의료기기 리콜은 의료진의 신뢰와 병원의 도입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제조사에는 품질관리와 사후 감시를 위한 추가적인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수술 로봇의 적용 분야가 넓어지면서 새로운 기능 개발 못지않게 장기간 안정적인 운영을 뒷받침할 시스템 구축이 중요해졌다.
국내 주요 병원에서도 로봇수술의 임상 경험이 빠르게 축적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2007년 로봇수술 도입 이후 약 18년 만에 누적 4만례를 달성했다. 전립선암과 신장암, 소아 중증질환, 장기이식 등 고난도 수술로 적용 범위를 넓혔으며, 의료진의 숙련도 평가와 진료과 간 협진 체계를 통해 로봇 1대당 연간 600건 이상의 수술을 수행한다.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역시 2026년 8월 누적 로봇수술 5,000례를 기록하며 경기 서남권의 로봇수술 역량을 높였다.
이처럼 로봇수술이 다양한 진료과로 확산되고 수술 건수가 늘어나면서 장비를 정교하게 조작하는 기술뿐 아니라 수술팀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기술에도 관심이 쏠린다. 특히 수술 도구 전달과 내시경 유지, 조직 견인처럼 의료진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보조 업무를 로봇과 나눌 수 있다면 숙련된 인력이 부족한 의료 현장에도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수술 보조 로봇 ‘ORchestra(오케스트라)’ 시연 현장
삼성서울병원이 총괄하는 피지컬 AI 기반 휴머노이드 수술 보조 로봇 ‘ORchestra(오케스트라)’는 이러한 문제에서 출발했다. 기존 다빈치가 집도의의 조작에 따라 수술을 수행하는 장비라면 ORchestra는 의료진과 같은 공간에서 수술 보조 업무를 맡는 로봇이다. “클립 주세요”라는 음성 명령에 따라 도구를 찾아 전달하고, 복강경 수술에서는 내시경 시야를 조절하거나 조직을 견인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와 에이딘로보틱스, 성균관대, 서울대 등이 참여하는 한국형 ARPA-H 프로젝트로, 2029년 첫 임상시험을 목표로 한다.
연구진은 숙련된 의료진의 손동작과 도구 사용 순서, 수술실 내 협업 과정을 데이터로 축적해 AI가 다음 행동을 예측하도록 학습시키고 있다. 다만 실제 수술 환경에서의 안전성과 정밀한 힘 조절, 오작동에 따른 책임 문제 등은 임상 적용에 앞서 검증해야 할 과제다. 국내 로봇수술이 임상 경험의 축적을 넘어 의료진과 로봇의 협업으로 진화하는 가운데, 이러한 기술을 실제 의료 현장에 안착시키기 위한 인력·비용·제도적 기반의 중요성도 커졌다.
숫자가 담지 못한 국내 의료 현장…비용·인력·수가의 과제
글로벌 시장의 성장 전망과 별개로 국내 의료기관이 수술 로봇을 도입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는 경제성과 인력 확보 문제가 함께 나타난다. 수술 로봇은 장비 구입비 외에도 소모품과 유지보수, 의료진 교육에 지속적인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충분한 수술 건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투자비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 수도권 대형병원에 비해 환자 수요와 전문인력 확보 여건이 제한적인 지역 의료기관에서는 이러한 부담이 더욱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모도르 인텔리전스 역시 아시아태평양 일부 시장에서 로봇 수술 전문교육을 받은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점을 성장 제약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숙련된 전문의의 확보는 장비 도입 이후에도 안정적인 수술 운영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이다. 로봇 수술은 장비를 조작하는 의사뿐 아니라 수술실 간호인력과 마취과 의료진, 장비 관리인력의 협력이 필요한 만큼, 개별 의료진의 숙련도를 넘어 병원 차원의 교육과 운영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국내 의료기관의 투자 판단에는 건강보험 수가와 비급여 진료 구조도 영향을 미친다. 고가 장비를 도입하더라도 충분한 수술 건수와 진료 수익을 확보하지 못하면 고정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사이버보안과 소프트웨어 관리, 장비 유지보수 비용까지 고려하면 초기 구매가격보다 전체 사용기간에 발생하는 총소유비용(TCO)이 더욱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씨엠알써지컬(CMR Surgical)사의 수술용 로봇 시스템, ‘버시우스’를 활용하고 있다. (출처: 씨엠알써지컬 제공)
장비 활용도를 높이려는 움직임은 의료시설의 변화에서도 나타난다. 모도르 인텔리전스는 외래수술센터(ASC) 부문의 수술 로봇 수요가 2031년까지 연평균 9.88%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미국 등에서 외래수술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소형 플랫폼의 도입이 늘어나는 흐름을 반영한 수치다. 다만 국가마다 의료 전달체계와 보험 보상 구조가 다르므로, 이러한 성장 전망을 국내 외래수술 시장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장비 도입을 넘어 지속 가능한 의료서비스로
수술 로봇 시장의 성장과 함께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인튜이티브서지컬을 비롯한 기존 기업들이 AI와 촉각 기술, 디지털 서비스를 결합해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가운데 중국의 마이크로포트(MicroPort), 티나비(TINAVI) 등 아시아 기업들도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섰다. 새로운 사업자들의 진입으로 의료기관의 장비 선택 기준 역시 기술 성능을 넘어 구입비와 유지관리, 교육 지원, 활용 범위 등으로 다양해졌다.
한국 기업에도 새로운 시장 기회가 열렸지만 외산 장비를 대체할 하드웨어 개발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의료진이 실제 수술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을 구현하고 병원의 기존 시스템과 연동하는 것은 물론, 안정적인 생산과 유지보수 체계까지 갖춰야 한다. 해외 진출에서도 국가별 인허가와 보험 보상, 임상 교육, 현지 서비스망을 고려한 사업화 전략이 필수적이다.
국내 의료 현장에서도 장비 도입 대수보다 실제 활용도와 안전성이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 의료기관까지 로봇 수술의 접근성을 넓히려면 전문인력 교육과 병원 간 협력체계를 강화하고, 장비 운영에 따른 비용 부담을 줄일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의료기관의 규모와 수술 수요에 맞는 플랫폼을 선택하고 여러 진료과가 장비를 공동 활용하는 방식도 경제성을 높일 대안으로 꼽힌다.
글로벌 수술 로봇 시장은 2026년 90억5000만 달러에서 2031년 139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러나 시장의 외형적 성장이 의료 현장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려면 장비의 성능과 가격뿐 아니라 숙련된 인력, 임상 안전성, 안정적인 운영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결국 K-수술 로봇 산업의 다음 승부처는 기술 개발 속도보다 의료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활용과 이를 국내외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연결하는 역량에 달렸다.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참고자료 모도르 인텔리전스(Mordor Intelligence), 「수술 로봇 시장 규모 및 점유율 분석 – 성장 추세 및 전망(2026~20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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