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꾸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도시가 움직이는 방식이다.”
생성형 AI 열풍 이후 부동산 산업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방향은 예상과 조금 다르다. AI가 단순히 계약서를 요약하거나 상담을 대신하는 수준을 넘어, 공간과 사람, 데이터를 하나의 운영체계로 연결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최근 공개한 보고서 Where AI is Creating Real Value in Real Estate에서 부동산 산업의 AI 활용이 본격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AI의 진짜 가치를 문서 작성이나 반복 업무 자동화에서 찾지 않았다. 임대차 자문과 시설 운영, 투자 분석, 자산관리처럼 서로 분절돼 있던 업무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운영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 AI의 핵심 역할이라는 것이다.
맥킨지는 이러한 변화가 부동산 가치사슬 전반에서 최대 4,300억~5,500억 달러 규모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결국 AI 시대 부동산 산업의 경쟁력은 더 많은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연스럽게 데이터를 연결하고 운영을 최적화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연구·주거·상업·모빌리티를 하나의 공간에서 연결하는 리빙랩(Living Lab) 도시를 구현한 모습으로 일본 Science Tokyo가 추진 중인 ‘City within a City’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구현한 미래 도시를 보여준다. (AI 생성 이미지) 
연구실을 벗어난 AI…도시 전체가 플랫폼이 된다
이 같은 변화는 일본에서 추진 중인 미래도시 프로젝트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국립 연구기관 사이언스 도쿄(Science Tokyo)가 추진하는 ‘도시 안의 도시(City within a City)’ 프로젝트는 연구시설과 주거, 상업, 의료, 모빌리티를 하나의 공간으로 묶어 실제 생활환경 자체를 기술 실험 무대로 바꾸고 있다.
기존 스마트시티가 도시에 기술을 도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 프로젝트는 도시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리빙랩(Living Lab)으로 설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연구실 안에서 검증하던 AI와 로봇 기술을 사람들이 실제 생활하는 공간으로 가져와 기술과 서비스가 동시에 검증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도쿄에 조성되는 39층 규모 복합시설에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 모빌리티, 드론 배송, AI 기반 헬스케어 등이 함께 운영된다. 약 70개 기업과 연구기관이 참여하며 소프트뱅크와 히타치 등 일본 대표 기업들도 협력사로 이름을 올렸다. 기술 개발과 산업화, 실제 생활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미래 도시 모델을 실험하는 셈이다.
박종열 건국대학교 미래지식교육원 교수는 “앞으로 도시 경쟁력은 건물을 얼마나 많이 짓느냐보다 연구개발과 산업, 생활 서비스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느냐에 달려 있다”며 “도시 자체가 기술을 검증하고 새로운 산업을 키우는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부동산의 개념이 ‘건설’에서 ‘운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AI의 승부처는 자동화가 아니라 운영이다
맥킨지 역시 같은 방향을 제시한다.
보고서는 AI 도입의 성패가 챗봇을 얼마나 많이 도입했는지에 달려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계약 검토와 시설 유지보수, 공실 관리, 투자 의사결정, 자산 운영처럼 각각 따로 움직이던 업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AI의 본질이라는 설명이다. 즉, AI는 사람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조직이 일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기술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변화는 국내 프롭테크 시장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알스퀘어는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임대차 자문과 건축·인테리어, 자산관리, 투자자문을 하나의 서비스 체계로 연결하며 운영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직방은 부동산 거래 플랫폼을 넘어 스마트 도어록과 월패드, 공동주택 관리 서비스까지 연결하며 스마트 주거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야놀자 역시 숙박 예약을 넘어 호텔 운영 시스템(PMS), 객실관리, 수익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며 공간 운영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 영역은 서로 다르지만 세 기업이 향하는 방향은 같다.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에서 공간 운영을 책임지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간의 경쟁이 아니라 연결의 경쟁이 시작됐다
결국 AI 시대 프롭테크 산업의 경쟁은 새로운 기능 하나를 더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개발과 거래, 운영, 관리, 데이터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공간은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낸다. 건물 자체보다 건물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데이터와 서비스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할 것인지가 경쟁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조인혜 한국프롭테크포럼 처장은 “AI 시대 공간 산업의 경쟁력은 기능을 추가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며 “개발과 거래, 운영, 관리, 데이터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고객의 의사결정을 돕는 플랫폼이 앞으로 시장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맥킨지의 분석과 일본의 미래도시 실험, 그리고 국내 프롭테크 기업들의 전략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부동산 산업은 더 이상 ‘공간을 짓는 산업’에 머물지 않는다. 이제 경쟁력은 공간과 사람, 서비스와 데이터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운영할 수 있느냐에서 결정된다. AI는 건물을 더 똑똑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운영체계로 바꾸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스타트업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앞으로 AI 시대의 경쟁력은 더 뛰어난 알고리즘 하나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산업 곳곳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연결하고, 여러 서비스를 하나의 운영체계로 통합하며, 실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다음 세대 유니콘은 ‘AI를 만든 기업’이 아니라 ‘AI로 산업을 다시 설계한 기업’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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