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리더십 육성과 조직문화 자문을 위해 한 기업의 리더와 마주 앉았다. 그는 20대 팀원들과 업무를 조율하며 느낀 피로감을 털어놓다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요즘은 AI가 기안서 초안도 쓰고 코딩도 도와주잖아요. 팀원들이 AI와 대화하면서 자기 일을 하면 되는데, 굳이 세대 차이를 감수하며 계속 소통해야 할까요? 메신저로 지시하고 결과물만 받는 편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가벼운 농담이 아니었다. 소통 과정에서 겪어온 어려움을 AI가 어느 정도 해결해 주지 않을까 하는 솔직한 기대였다. 실제 현장에서 만나는 적지 않은 리더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실무는 AI가 처리할 수 있는데 굳이 면담하고, 일의 의미를 설명하고, 동기를 끌어내는 과정까지 필요하냐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AI가 실무의 일부를 대신한다고 해서 대화의 필요성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I가 업무 속도와 개인의 실행 범위를 넓힐수록 리더와 팀원이 맞춰야 할 방향과 맥락은 더 많아진다.
AI 시대에는 대화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목적과 방식을 바꿔야 한다.
AI가 넓힌 것은 업무 속도만이 아니다
과거 주니어 팀원은 선배가 나눠준 업무의 일부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자료를 조사하거나 초안을 정리하고, 이미 정해진 방향 안에서 세부 과업을 수행하는 역할에 가까웠다.
AI가 일상적인 업무 도구로 자리 잡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 명의 팀원이 시장 조사부터 기획, 디자인 초안, 데이터 분석까지 폭넓게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과거 여러 사람이 나눠 처리하던 업무를 개인이 하나의 프로젝트 단위로 다루는 경우도 늘고 있다. 주니어가 단순한 업무 보조자를 넘어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을 경험하는 ‘1인 전문가’로 성장할 기회가 커진 셈이다.
하지만 업무 범위가 넓어지고 실행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은 초기 방향이 조금만 어긋나도 전혀 다른 결과물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AI는 주어진 지시를 빠르게 확장하지만 그 지시가 회사의 전략과 맞는지, 고객에게 필요한 결과인지까지 스스로 판단하지는 못한다. 조직이 가진 배경과 우선순위가 충분히 입력되지 않으면 정교하지만 쓸모없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AI라는 빠른 도구가 올바른 목적지를 향하도록 만드는 조향 장치는 결국 리더와 팀원의 대화다.
AI가 구성원의 업무 범위를 넓힐수록 리더에게는 일방적인 지시보다 각자의 업무와 조직의 방향을 연결하는 대화가 중요해진다. (사진 출처: Unsplash)
모두가 다른 난제를 푸는 조직
팀원의 역할이 넓어진 만큼 기존 소통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이전에는 주간회의에서 구성원이 함께 업무를 나누고 진척도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조직의 방향을 맞출 수 있었다. 모두가 비슷한 맥락 안에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나누어 수행했기 때문이다.
AI를 활용하는 현재의 업무 환경에서는 한 팀 안에서도 각자가 풀고 있는 문제가 달라진다. 한 팀원은 데이터 분석 자동화를 고민하고, 다른 팀원은 해외 고객을 겨냥한 마케팅 문구를 시험할 수 있다. 또 다른 팀원은 AI를 활용해 고객 인터뷰 자료를 정리하거나 신규 서비스의 화면을 설계한다.
같은 부서에 속해 있어도 활용하는 AI 도구와 필요한 정보, 마주한 난제는 제각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메신저에 “다음 주까지 기획안을 제출해 주세요”라고 지시하거나 회의에서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과물의 형식과 기한은 전달할 수 있지만 어떤 고객을 우선해야 하는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회사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팀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AI라는 뛰어난 조력자와 일하지만, 그 조력자에게 우리 조직의 어떤 방향과 기준을 입력해야 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모두에게 똑같이 전달하는 일방향 소통만으로 각자의 업무를 세밀하게 조율하기 어려운 이유다.
메신저가 전달하지 못하는 ‘맥락’
이때 필요한 것이 개별적인 맥락을 맞추는 1대1 대화다. 메신저를 통한 업무 지시가 불필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텍스트 지시만으로는 결과물의 기준을 전달할 수 있어도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떤 배경에서 시작됐는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판단해야 하는지까지 충분히 공유하기 어렵다.
AI가 팀원의 실무 처리 능력을 높였다면 리더는 1대1 대화를 통해 팀원의 맥락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대화에서는 추상적인 동기부여보다 팀원이 풀고 있는 문제와 회사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고객은 누구인지, AI가 제시한 여러 대안 중 현재 예산과 인력으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빠르게 성과를 내는 것과 장기적인 기반을 만드는 것 중 무엇을 우선할지 함께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시장조사 보고서를 작성해 달라”는 지시보다 “이번 조사의 목적은 시장 전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6개월 안에 진입할 수 있는 고객군을 찾는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팀원은 이 맥락을 바탕으로 조사 범위와 질문을 다시 설계하고, AI에도 더 구체적인 조건을 입력할 수 있다.
리더와 충분히 맥락을 공유한 팀원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반론적인 보고서를 가져올 가능성이 낮다. 조직의 상황과 고객, 예산, 실행 조건을 프롬프트에 반영해 지금 필요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과정이 빠지면 팀원은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정리하고 전달하는 역할에 머무를 수 있다. 작업 속도는 빨라져도 스스로 판단하고 성장할 기회는 줄어든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단순 작업을 반복하게 될 수도 있다.
리더의 역할은 지시가 아니라 맥락의 조율이다
AI는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 대한 여러 선택지를 빠르게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 조직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지금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어떤 선택이 회사의 전략과 맞는지는 조직 안의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단순 실무를 AI가 덜어줄수록 리더의 역할은 업무를 나누고 결과물을 확인하는 데서 일의 이유와 판단 기준을 연결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팀원이 AI를 조직의 무기로 활용하게 하려면 리더는 지시자가 아니라 맥락을 조율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대화 시간을 늘리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 팀원이 진행 중인 업무와 막혀 있는 지점, 필요한 판단, 다음 행동을 중심으로 대화를 구조화해야 한다. 서로의 기억과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고 대화 내용을 기록해 이후의 실행과 연결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세대 간 소통이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팀원의 태도나 리더 개인의 화법만 문제 삼기 전에 조직의 대화 방식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팀원에게 전달되는 것이 단순한 업무 목록인지, 아니면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맥락인지 점검해야 한다.
AI 시대의 리더십은 대화를 줄이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팀원이 더 넓어진 업무를 스스로 판단하고 완수할 수 있도록, 필요한 맥락을 더 정확하게 연결하는 데서 출발한다.

김경민 대표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스타트업과 자산운용사를 거치며 비즈니스 현장의 경험을 쌓았다. 현재 리버스마운틴 대표로 사내 1대1 대화 AI 솔루션 ‘오블릿’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과 함께 조직 내 소통 체계를 연구하며, 대화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성원의 성장과 조직 성과 향상을 지원하는 컨설팅과 리더십 교육, 코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니어가 AI로 겉보기에는 훌륭한 보고서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작성했는지 물어보니 본인도 모른다고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AI가 만든 결과물에 의존해 자신의 판단을 놓치기 쉬운 팀원을 어떻게 코칭하고 피드백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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