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소프트웨어를 배울 곳이 부족해 직접 교육 플랫폼을 만든 대학생이 있었다. 그가 창업한 렉터스(LECTUS)는 누적 수강생 5만명과 800여개 제휴 기업을 확보한 건축 전문 에듀테크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창업자 박상근 대표의 관심은 이제 강의실 밖으로 향하고 있다. 건축을 배우는 사람을 늘리는 데서 나아가, 그들이 익힌 기술로 실제 주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렉터스는 인공지능(AI) 기반 건축정보모델링(BIM) 데이터 자동화 기술을 개발하며 서울 합정동 일대 194세대 규모 주택사업을 대상으로 기술검증(PoC)을 진행하고 있다.
박 대표가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건축인들이 실무에 필요한 기술을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였다. 이제는 교육을 통해 성장한 인재와 축적된 기술이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20세기 독일의 건축·디자인 교육기관 바우하우스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예술과 기술을 결합한 교육이 실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힘으로 이어졌듯, 렉터스 역시 교육과 기술을 연결해 건축 산업의 변화를 이끌겠다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렉터스는 온라인 교육 플랫폼과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하며 총 10명이 근무하고 있다. 대학 네트워크 90곳을 확보했고, 지난해 매출은 14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20억원이다. 개인 수강생을 대상으로 시작한 교육사업은 기업·기관 맞춤형 교육과 소프트웨어 공급, AI 건축 기술 연구개발로 이어졌다.
박상근 렉터스 대표
건축을 가르치던 회사가 건축의 문제를 직접 풀기까지
박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건축학과 학생 시절 겪었던 불편이었다. 건축 설계를 위해서는 3차원 모델링과 도면 작성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다룰 줄 알아야 했지만, 대학에서는 이론과 기초적인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우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실무에서 활용하는 소프트웨어는 10가지가 넘었고 기술 변화도 빨랐다. 그러나 전문 강의를 제공하는 교육기관은 부족했다.
“건축 실무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많았지만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은 부족했습니다.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건축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민간 교육시장 역시 규모가 작아 전문 강의를 지속적으로 제작하고 갱신하기 어려웠다. 수도권과 지방의 교육 격차도 존재했다. 박 대표는 장소와 관계없이 건축 전공생과 실무자가 필요한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만들었다.
렉터스가 차별화한 것은 강의의 양보다 현장 활용성이었다. 프로그램 사용법만 전달하는 대신 실제 건축 프로젝트에서 해당 기술을 활용하는 전문가를 강사로 섭외했다. 실무 사례를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기초부터 심화까지 단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전문성, 체계성, 활용성, 효율성, 피드백을 기준으로 제작한 강의는 현재 90개에 이릅니다. 수강 만족도는 95% 수준이죠.”
초기에는 온라인 강의를 구매하는 개인 수강생이 중심이었다. 지역과 관계없이 건축 전공생과 실무자가 유입됐고, 지인 추천을 통한 수강도 이어졌다. 박 대표는 이 과정에서 대학과의 협력 가능성을 발견했다.
수도권 대학을 시작으로 지역별 학교와 제휴해 수강 혜택을 제공하고, 매년 신입생에게 교육 정보를 전달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개별 수강생을 확보하던 방식에서 대학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고객을 만나는 구조로 바뀌었다. 졸업생들이 건축회사에 취업하면서 기업 교육 수요도 늘어났다.
현재 렉터스는 한국건축가협회와 부산광역시건축사회 등 건축 관련 단체와 협력하고 있다. 교육부 평생교육시설, 고용노동부 원격훈련기관, 국토교통부 건축사 실무 인증 전문 교육 등 제도권 교육 분야에도 진입했다. 개인 수강료에 의존하던 사업은 기업·기관 맞춤형 교육과 정부 지원 교육,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공급으로 수익원이 다양해졌다.
온라인에서 만난 건축인들이 직접 교류할 수 있도록 홍대 인근에 마련한 ‘렉터스 라운지’도 사업의 한 축이다. 전시와 세미나, 워크숍, 네트워킹 행사를 운영하며 교육 콘텐츠를 통해 형성된 관계를 오프라인으로 연결한다. 교육받은 인재를 실제 건축 공모와 프로젝트에 참여시키는 서비스도 개발하고 있다.
박상근 렉터스 대표가 AI 기반 건축정보모델링(BIM) 데이터 자동화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교육사업이 성장하자 박 대표에게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기술을 배운 건축인들이 현장에서 마주하는 문제까지 해결할 수는 없을까. 설계 과정에서 반복되는 작업과 복잡한 데이터 관리가 건축 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에 주목했다.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반복적인 설계 업무를 줄이는 기술도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렉터스는 기업부설연구소 ‘LECTUS.LAB’을 설립하고 건축 기술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초기에는 설계에 필요한 지형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메스그라피’를 개발했고, 이후 3D 자동 생성과 디지털 자산 유통 등으로 연구 범위를 넓혔다. 혁신성장형 벤처기업 인증을 받고 관련 특허도 확보했다.
현재 연구의 중심은 AI 기반 BIM 데이터 자동화다. BIM은 건축물의 설계와 시공, 유지관리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디지털 모델로 연결해 관리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외산 소프트웨어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데이터 표준화 부족, 업무 단계마다 정보가 단절되는 문제가 활용을 어렵게 한다.
렉터스는 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딥테크 특화 창업중심대학 지원과 한국인공지능협회와의 업무협약을 바탕으로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사업 초기의 수익성 검토부터 설계, 시공, 유지관리까지 필요한 데이터를 연결해 건축 프로젝트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사업 초기의 수익성 검토부터 설계와 시공, 유지관리까지 필요한 데이터를 연결하고 싶습니다. 특히 공공주택 공급사업에 적용해 건축물의 공급과 관리 효율을 높이는 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사회주택협회 소속 나눔하우징과 함께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일대 194세대 규모 주택사업을 대상으로 기술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개발 중인 솔루션이 실제 건축사업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얼마나 정확하게 처리하고 연결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단계다. 교육 콘텐츠를 통해 축적한 건축 전문성을 실제 주택사업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렉터스의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건축 교육 플랫폼 렉터스는 누적 수강생 5만명과 800여개 제휴 기업을 확보하며 전문 교육에서 기업·기관 맞춤형 서비스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기술개발과 함께 박 대표의 관심은 건축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로 이어졌다. 건축인 5만명에게 기술을 가르친 다음에는 그 기술이 누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바우하우스의 교육 철학이었다. 예술과 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건축과 디자인의 가능성을 탐구했던 바우하우스처럼, 렉터스도 교육을 통해 길러낸 전문성과 기술을 사회문제 해결에 연결하고자 했다.
렉터스는 2023년 기술보증기금의 소셜벤처 판별을 받았다. 박 대표는 2025년 KAIST IMPACT-MBA에 입학해 사회적 가치 창출에 관한 공부도 이어가고 있다. 한국해비타트와 취약계층을 위한 이동식 목조주택 공모전을 진행했고, 서울 가산동 청년주거 개조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이러한 활동은 건축 교육기업이 주거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건축 기술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주거 취약계층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일에도 기업의 역량을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앞으로 렉터스는 주거권 보장과 건축 폐기물 감축, 지속가능한 도시 등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할 예정이다. AI BIM 기술 고도화를 위한 후속 연구개발과 딥테크 팁스(TIPS)를 활용한 투자유치도 검토하고 있다. 자체 건축 미디어 채널 ‘렉크레이션’을 웹매거진과 오프라인 매거진으로 발전시키는 작업도 준비 중이다.
“20세기 바우하우스가 그랬듯 21세기 렉터스도 교육과 기술을 통해 건축인들이 성장하고, 그들이 건축과 관련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생태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건축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던 학생의 고민은 5만명이 이용하는 교육 플랫폼으로 성장했고, 이제 실제 주택사업에 적용할 AI 기술을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교육을 통해 만난 건축인들과 기업 네트워크는 렉터스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남은 과제는 교육시장에서 쌓은 전문성과 신뢰를 실제 건축 기술의 경쟁력으로 입증하는 일이다. 합정동 194세대 주택사업에서 진행 중인 기술검증은 그 가능성을 확인할 첫 시험대다. 박 대표가 꿈꾸는 ‘21세기 바우하우스’가 교육 플랫폼을 넘어 주거 현장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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