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닥터나우 방지법’으로 불린 약사법 개정안이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비대면진료 플랫폼의 의약품 유통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스타트업·벤처업계는 특정 사업모델 자체를 금지하는 규제라며 반발했다.
그런데 같은 날 정부는 모든 비대면진료 환자를 대상으로 약 배송을 확대하는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플랫폼의 의약품 유통 참여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환자가 비대면진료 후 약을 배송받을 수 있는 길은 넓히겠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업모델은 막혔지만 그 사업이 제기했던 ‘비대면진료 후 약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정부의 제도 개선 과제로 올라왔다.
정부는 보건복지부·중소벤처기업부·국무조정실과 약사단체, 비대면진료 중개업체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약 배송 범위와 조제약 품질관리, 환자 수령 확인, 복약지도 등 안전장치를 논의할 계획이다.
비대면진료와 약 배송을 둘러싼 제도 개편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 출처: Magnific)
‘닥터나우 방지법’ 통과…벤처업계 “혁신 위축 입법”
벤처기업협회는 개정안 통과 직후 “‘타다 금지법’ 폐해를 벌써 잊었나”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했다. 리베이트와 환자 유인·알선 등의 문제는 기존 법체계로도 규율할 수 있는데 이를 이유로 도매업 영위라는 특정 사업모델 자체를 원천 금지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주장이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도 “국민이 체감해 온 편익도, 업계가 제출한 소명도 끝내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비대면진료를 받은 환자가 처방약을 보유한 약국을 찾지 못해 여러 곳을 전전하는 이른바 ‘약국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타트업이 의약품 재고정보와 유통을 연결하려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사자인 닥터나우도 법안 통과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회사는 의약품 유통 사업을 시작한 배경 역시 비대면진료 이후 환자가 처방약을 구하기 위해 여러 약국을 찾아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사업 과정에서 제기된 우려에 대해서는 앱의 핵심 기능을 자진 개편하는 등 보완에 나섰지만 이번 법안 통과에 따라 해당 사업 방식은 중단된다. 비대면진료 중개 서비스는 기존과 동일하게 운영한다.
법으로 막은 날 약 배송 확대…닥터나우 “두 사안은 다르다”
법안 통과와 정부의 약 배송 확대 발표가 같은 날 나오면서 상반된 정책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닥터나우는 두 사안을 구분했다.
닥터나우 관계자는 벤처스퀘어와의 추가 취재에서 “두 사안은 성격이 다르다”며 “약사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오랜 논의를 거쳐 결론에 이른 사안이다. 저희로서는 자정 노력을 통해 지적받은 문제를 해소하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 입법에까지 이르렀고, 그 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약 배송은 비대면진료 제도화 과정에서 별도로 풀어야 할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 문제라는 입장이다. “비대면진료를 받고도 정작 약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업계가 오래 지적해온 문제”라며 “정부가 이를 제도의 과제로 인식하고 해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의 논의에 성실히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오는 12월 비대면진료 제도화에 맞춰 우선 섬·벽지 주민과 장기요양수급자, 장애인, 감염병 환자, 희귀질환자 등에 약 배송을 허용할 예정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모든 비대면진료 환자로 약 배송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필요할 경우 약사법과 의료법 등 관련 법규 개정도 검토한다.
환자가 처방약을 가진 약국을 쉽게 찾도록 재고정보 체계도 손본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약국별 의약품 구매·조제 여부 정보를 주 단위로 비대면진료 중개업자에게 제공하고 있는데, 제공 주기를 단축하고 구매·조제 수량 정보까지 제공하는 방향으로 고도화한다.
115만건 약 배송 경험…“안전과 접근성 함께 가야”
모든 비대면진료 환자로 약 배송이 확대될 경우 핵심 쟁점은 안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다. 닥터나우는 한시적 허용 기간 동안 약 115만건의 약 배송을 운영했다. 이 기간 심각한 의료사고가 없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이를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실제 배송 경험을 토대로 제도화 과정에서 약사의 전문성과 판단권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환자가 약을 받을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조제와 배송이 적절한지는 약사가 판단하고, 오남용 우려가 있거나 대면 복약지도가 필요한 의약품은 그 판단을 존중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배송 범위도 쟁점이다. 약 배송이 확대될 경우 문전약국이나 창고형 약국으로 수요가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지역이나 거리에 일정한 기준을 두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지역 약국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또 다른 규제가 돼 정작 약이 필요한 환자의 접근성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달았다.
결국 관건은 안전장치를 얼마나 많이 두느냐보다 안전과 접근성 사이에서 실효성 있는 기준을 만드는 데 있다는 주장이다. 닥터나우 관계자는 “안전과 직접 관련 없는 행정적 제한까지 겹겹이 쌓이면 결국 약을 받지 못하는 환자만 늘어나고 제도는 있어도 쓰이지 않게 된다”며 “안전과 접근성이 함께 성립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약 배송 확대 논의 과정에서 조제약의 품질관리와 환자 수령 여부 확인, 복약지도 등을 포함한 안전장치를 함께 검토할 방침이다. 약 배송의 범위를 어디까지 넓힐 것인지와 함께 실제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안전 기준을 어떻게 설계할지가 향후 민관협의체 논의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닥터나우 로고 (자료 제공: 닥터나우)
법안엔 ‘유감’, 약 배송엔 ‘환영’…쟁점은 제도 설계로
스타트업·벤처업계의 반응도 두 갈래로 나뉜다. 약사법 개정안 통과에는 반발하지만 정부의 약 배송 확대 방침에는 일제히 환영하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약 배송은 비대면진료를 이용하는 모든 환자에게 원칙적으로 허용돼야 한다”며 정부 방침을 환영했다. 진료는 비대면으로 가능하지만 처방약은 약국을 직접 방문해야 받을 수 있는 구조로는 비대면진료가 완결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수백만 건의 약 배송을 연결하며 축적한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향후 제도 논의에도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코스포 역시 법안 통과에는 깊은 유감을 나타내면서도 정부의 후속 제도 개선은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했다. 그동안 비대면진료 스타트업이 제기해 온 의약품 접근성 문제가 특정 기업의 사업 방식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로 다뤄지기 시작했다는 이유다.
벤처기업협회도 이번 법안이 또 하나의 ‘혁신 위축 입법’으로 남지 않으려면 후속 제도 설계에서 혁신과 소비자 편익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약 배송 확대 논의를 환자의 실제 불편과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번 사안은 ‘약 배송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약사법 개정안이 플랫폼의 의약품 유통시장 참여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의 문제라면, 정부가 꺼낸 약 배송 확대는 비대면진료를 받은 환자가 처방약을 어떤 방식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때문에 논쟁의 무게중심도 약 배송의 찬반에서 구체적인 제도 설계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환자의 선택권과 의약품 접근성, 약사의 전문성과 판단권, 배송 안전성, 지역 약국의 역할과 플랫폼의 사업 범위를 어디에서 조율할지가 핵심이다.
한쪽에서는 닥터나우가 시도한 사업모델의 문이 닫혔고, 다른 한쪽에서는 모든 비대면진료 환자에게 약 배송을 허용할 가능성이 열렸다. 오는 12월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앞두고 이제 질문은 ‘약 배송을 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정부와 약사단체, 비대면진료 업계가 마주 앉을 민관협의체에서 안전과 접근성 사이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가 다음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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