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을 잘 아는 것과 고객에게 잘 설명하는 것은 다르다. 고객 상담에서는 제품과 서비스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상대의 상황에 맞춰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어내는 능력이 필요하지만, 강의를 듣고 응대 매뉴얼을 익히는 것만으로는 이를 충분히 갖추기 어렵다. 고객마다 궁금해하는 내용과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상황을 경험하고 반복해서 연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AI 기반 기업교육 솔루션 ‘쏘카인드’를 운영하는 크디랩은 이러한 문제에 주목해 실제 상담과 유사한 환경에서 연습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AI가 가상 고객 역할을 맡아 질문하거나 거절 의사를 표현하면 직원은 자신의 업무 지식을 활용해 대응하고, 실습을 마친 뒤에는 기업별 상담 기준에 따라 부족한 부분을 확인해 다시 훈련할 수 있다.
배수정 크디랩 대표가 강조하는 것은 AI와 얼마나 매끄럽게 대화했느냐보다 연습한 내용을 실제 고객 상담에서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다. 고객 응대 평가 점수와 신입 설계사 정착률 등 현장의 성과를 살펴보는 것도 교육생의 실습 점수가 높아지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업무 역량이 달라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배수정 크디랩 대표
보험 설계사 자격까지 취득한 대표…현장에서 찾은 교육의 한계
크디랩은 직무 커뮤니케이션 교육에 주력해온 기업으로, 2022년 8월 출시한 쏘카인드 역시 처음에는 표정과 목소리, 태도, 상황별 응대 방식 등을 익히는 직무화법 교육 서비스였다. 이후 보험업계에 서비스를 공급하면서 말하기 능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현장의 과제를 발견했고, 상품에 대한 이해와 고객의 신뢰를 얻는 과정까지 교육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보험 상담에서는 복잡한 보장 내용과 계약 조건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야 하는데, 상품 지식이 충분하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거나 가입을 망설이는 고객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신입 설계사들은 교육 과정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대화에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크디랩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배 대표는 신입 설계사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장에 투입되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생명보험·손해보험 설계사 자격을 취득하고 교육 과정에도 참여했다. 시험을 준비하며 상품 지식을 익히는 과정과 실제 상담을 연습하는 과정을 경험한 뒤에는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장을 모르고는 이 서비스를 자신 있게 제안할 수가 없더라고요. 직접 시험을 보고 교육을 받아보니 신입 설계사들이 어디서 막히는지가 보였습니다.”
당시 보험업계에서는 지점장이나 동료가 고객 역할을 맡아 상품 설명을 연습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었는데, 크디랩은 이를 AI로 구현해달라는 고객사의 요청을 계기로 국내 대형 보험사와 개념검증(PoC)을 진행했다. 실제 상담에서 자주 발생하는 거절이나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반복해서 경험할 수 있도록 기능을 발전시켰으며, 교육생이 고객의 거절 강도와 상담 난이도를 선택해 자신의 수준에 맞춰 훈련하는 방식도 도입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쏘카인드는 말하기 교육에서 AI 기반 상담 훈련 솔루션으로 발전했고, 현재까지 누적 73개 기업이 유료로 도입해 교육 참여 인원도 6만 명을 넘어섰다. 크디랩은 교육 프로그램을 한 번 제공하고 끝내기보다 직원들이 업무에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데 집중해왔으며, 기업교육 시장에서도 교육 이후 직원의 역량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확인하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AI에 대한 기업들의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사용 모델이나 개인정보 처리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사례도 늘었다.
고객의 거절까지 연습한다…기업마다 달라지는 AI 평가 기준
쏘카인드는 기업별 업무 지식과 상담 기준을 적용해 실제 상담과 유사한 상황을 구성하고, 교육생이 대화를 마치면 평가와 피드백까지 제공한다. 고객의 성격과 직업, 상담 목적 등을 설정하면 AI가 그에 맞는 역할을 맡는데, 보험료가 부담돼 계약을 망설이는 고객부터 다른 은행의 금리를 비교하는 고객, 시술 가격에 불만을 제기하는 환자까지 업종별로 다양한 상황을 연습할 수 있다.
AI 롤플레이 외에도 듣고 따라 하기, 외워 말하기, 키워드 말하기 등 여러 훈련 방식을 제공하며, 실습을 마친 교육생은 AI 코칭 리포트를 통해 잘한 점과 개선할 부분을 확인한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하더라도 고객의 반응과 상담 조건을 달리해 연습할 수 있어 실제 업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다만 모든 기업에 동일한 평가 기준을 적용하지는 않는다. 어떤 직무에서는 말하는 속도와 목소리 톤이 중요하지만, 다른 직무에서는 반드시 전달해야 할 정보를 빠짐없이 설명하거나 사용해서는 안 되는 표현을 피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답변이라도 어떤 업무에서 사용하고 어떤 고객에게 전달하는지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달라진다.
크디랩은 이러한 차이를 교육에 반영하기 위해 서비스 도입 전 통상 2주에서 한 달 정도 고객사의 업무와 교육 목적을 분석한다. 상담 과정에서 자주 발생하는 상황과 기업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을 파악한 뒤 시나리오와 평가 항목을 구성하고, AI가 설정된 조건에 맞춰 반응하는지 검증하는 과정도 거친다.
배 대표는 기업별 업무 지식과 고객 응대 기준을 AI가 처음부터 이해할 수는 없는 만큼 현장의 경험을 구체적인 교육 콘텐츠로 바꾸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서비스는 SaaS 형태로 제공하지만 실제 시나리오와 평가 체계는 업종과 기업에 맞춰 설계하며, 이 과정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업무를 분석하고 교육 내용을 세밀하게 조정해야 한다.
크디랩의 AI 기반 기업교육 솔루션 ‘쏘카인드’ 서비스 화면. 상황별 말하기와 듣고 따라하기, AI 롤플레이 등 다양한 교육 기능을 제공한다.
2,000명 교육에 응대 평가 1점 상승…현장 성과를 검증하다
크디랩이 교육 효과를 확인하는 기준은 AI 실습 점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교육생이 실제 고객을 상대할 때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 살펴보기 위해 고객 응대 평가나 직원 정착률 등 기업이 관리하는 업무 지표도 함께 분석하고 있으며, 배 대표는 국내 대형 통신사와 보험사에서 진행한 교육 사례를 소개했다.
한 대형 통신사는 고객 응대 평가를 앞두고 약 한 달 동안 직원 약 2,000명을 대상으로 쏘카인드 집중 교육을 진행했는데, 이후 KSCQI 평가 점수가 96점에서 97점으로 상승했다. 점수 차이는 1점이지만 무작위로 진행되는 평가에서 대규모 직원 집단의 평균 점수를 높이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게 배 대표의 설명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신입 설계사가 교육을 마친 뒤 얼마나 오래 현장에서 활동하는지가 중요한 지표로 꼽힌다. 보험사는 설계사를 모집하고 자격시험과 상품 교육, 영업 훈련을 지원하는 데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기 때문에, 신입 설계사가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탈하면 교육에 들인 시간과 비용도 부담으로 남는다.
크디랩은 국내 대형 손해보험사 3개 지역단 소속 설계사 약 500명을 6개월간 분석했으며, 쏘카인드를 활용한 설계사의 정착률이 2.1%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분석 대상은 입사 2~13개월 차 설계사로, 정착률은 입사 후 13개월까지 근속한 비율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과와 별개로 AI가 부여한 높은 점수가 반드시 좋은 상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현장에서 확인했다. 기업이 권장하는 표현을 정확히 사용해 좋은 평가를 받았더라도 고객에게는 형식적이거나 부담스럽게 들릴 수 있으며, 반대로 정해진 문장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더라도 고객의 상황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설명했다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성과자들이 반드시 말을 유창하게 잘한다기보다는 주로 고객의 상황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고, 어려운 내용을 고객 눈높이에 맞는 말로 바꿔 전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크디랩은 실제 상담에서 확인한 특징을 교육 내용에 반영하고, 필요한 경우 기업 교육 담당자에게 평가 항목을 개선하도록 제안한다. AI가 제시한 점수를 최종적인 성과로 판단하기보다 교육생이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는지 파악하고, 자신의 말하기 방식을 개선하도록 돕는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다.
교육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도 서비스 개선에 쓰인다. 신입 직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과 어려워하는 상황, 성과가 좋은 직원들의 설명 방식 등을 분석해 시나리오와 평가 기준을 보완하고, AI가 설정된 고객의 특성에 맞게 반응하는지와 피드백이 적절한지도 반복해서 검증한다.
같은 보험 상담이라도 상품과 고객의 특성, 기업의 영업 방식에 따라 적절한 설명과 평가 기준이 달라지는 만큼 범용 AI 모델만으로는 이러한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게 배 대표의 생각이다. AI 기술을 활용하는 역량과 함께 해당 업종의 업무를 이해하고 현장 경험을 교육 콘텐츠로 설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AI 모델은 이제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모델에 현장의 어떤 경험과 노하우를 담느냐입니다. 저희가 모델 개발보다 교육 콘텐츠와 평가 체계 설계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배수정 크디랩 대표
보험·금융에서 메디컬로…AI가 대신할 수 없는 상담의 역할
크디랩은 보험·금융 분야에서 쌓은 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피부·미용 의료기관 등 메디컬 분야 고객들과 서비스 도입을 논의하고 있으며, 기업 간 거래(B2B) 영업과 기술 영업 분야에도 적용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보험과 의료, 부동산, 자동차처럼 고객이 구매나 계약을 결정하기까지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전문지식을 갖추는 것만큼 상대의 걱정을 이해하고 신뢰를 얻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업종이 달라지면 교육 내용도 달라져야 한다. 보험 상담에서는 보장 내용과 계약 조건을 정확히 설명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의료기관에서는 시술에 대한 걱정을 이해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크디랩은 이러한 차이를 반영해 업종별 상담 시나리오와 평가 기준을 설계하고 있으며, 기존 보험·금융 분야에서 쌓은 운영 경험을 다른 산업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는 글로벌 보험사 네트워크를 통해 문의가 들어오면서 일본어·영어 버전 출시를 검토 중이다. 배 대표는 해외 고객을 대상으로 교육하려면 언어를 번역하는 것뿐 아니라 국가마다 다른 상담 관행과 서비스에 대한 기대를 이해해야 한다고 봤다. 같은 표현이라도 문화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를 수 있어 현지 상황에 맞는 교육 콘텐츠를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사업 영역이 넓어지는 가운데 AI가 상담 업무에 미칠 영향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반복적인 문의나 정형화된 안내는 AI가 처리하는 비중이 커질 수 있지만, 복잡한 계약 조건을 설명하거나 고객의 불안을 이해하고 신뢰를 쌓는 과정에는 여전히 사람의 판단과 소통 능력이 필요하다.
배 대표는 AI가 고객 응대를 대신하는 영역이 늘어날수록 사람이 제공하는 상담에서는 오히려 진정성과 상황에 맞는 설명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직원들이 정해진 문장을 반복하는 데 익숙해지기보다 기업의 업무 원칙을 이해하면서도 고객의 상황에 맞춰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크디랩의 장기 목표는 전 세계 1,000만 명이 어려운 대화를 자신 있게 풀어가도록 돕는 것이다. 보험과 금융을 넘어 다양한 직무에서 필요한 대화를 미리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정해진 답변을 잘 외우는 사람보다 상대를 이해하고 자신의 언어로 소통하는 사람을 길러내겠다는 생각이다. AI가 대화를 대신하는 시대, 크디랩은 사람이 더 잘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결국 나를 표현하는 일이라 정답이 하나일 수 없습니다. 고객의 언어로 말하는 자신만의 방식은 스스로 찾아가야 합니다.”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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