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다공증은 치료제가 없는 질환이 아닙니다. 문제는 환자를 제때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의료 AI 스타트업 프로메디우스의 배현진 대표는 골다공증을 바라보는 기존 의료 시스템의 한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프로메디우스는 세계 최초로 흉부 X-ray 영상만으로 골다공증 위험도를 선별하는 AI 솔루션 오스테오시그널(OsteoSignal)’을 개발하며 의료 현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해당 기술력을 인정받아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 골다공증 및 골관절염 학회(ESCEO)가 공동 주관한 ‘WHO-ESCEO Innovation Prize’를 수상하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했다.
프로메디우스 배현진 대표
천문학자에서 의료 AI 창업가로… 기술은 현장에서 쓰여야 한다는 올곧은 신념
배 대표의 전공은 의외로 천문학이다.
그는 천문학 박사 과정에서 우주 신호 분석과 영상 처리,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연구했다. 이후 이러한 기술을 보다 실질적인 사회 문제 해결에 활용하고자 서울아산병원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다양한 의료 AI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배 대표는 이 과정에서 기초과학 분야에서 개발한 기술이 연구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의료 현장에서 활용돼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는 “기술이 연구 성과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활용돼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교수진과 함께 창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프로메디우스 배현진 대표가 회사 비전과 주요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치료제는 있는데 환자를 못 찾는다”… 골다공증에 주목한 이유
프로메디우스는 창업 초기 다양한 의료영상 기반 AI 기술을 연구했다. 흉부영상 연구실에서 출발한 만큼 흉부 X-ray와 CT 등 다양한 영상 데이터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기술의 가능성을 검증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기존 방식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의료 현장의 문제를 AI로 해결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자 했다. 그 결과 프로메디우스가 주목한 질환이 바로 골다공증이다.
골다공증은 대표적인 고령화 질환이지만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상당수 환자가 진단 시기를 놓친다. 특히 골절이 발생하면 삶의 질이 급격히 저하될 뿐 아니라 일부 암보다 높은 사망률을 보일 정도로 위험성이 큰 질환이다.
기존에는 연령, 폐경 여부 등 위험인자를 기반으로 골밀도 검사(DEXA)를 권유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증상이 없는 상황에서 추가 검사를 받도록 설득하기 쉽지 않았고, 의료진 역시 적극적으로 검사를 권유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배 대표는 “골다공증은 효과적인 치료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조기 발견 체계가 부족해 많은 환자가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고 있다”며 “전 국민이 촬영하는 흉부 X-ray를 활용해 위험군을 선별할 수 있다면 골절 예방은 물론 사회적 비용 절감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 흉부 X-ray 기반 골다공증 선별 AI… WHO 혁신상 수상
프로메디우스의 대표 제품인 오스테오시그널(Osteo Signal)은 흉부 X-ray 영상과 골밀도 검사 결과를 대규모로 매칭해 학습한 골다공증 선별 AI 소프트웨어이다. 별도의 검사나 추가 비용 없이 골다공증 위험도를 분석하고 고위험군을 선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26년 4월 기준 오스테오시그널은 국내 약 16개 의료기관에서 활용되고 있다. 프로메디우스에 따르면 시범 운영 기간 동안 의료진의 반응이 긍정적으로 나타나면서 실제 도입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회사는 향후 총판 계약을 통해 제품 유통을 전국 단위로 확대할 계획이다.
오스테오시그널의 확산에는 최근 획득한 ‘평가유예 신의료기술’ 선정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평가유예 신의료기술은 인허가를 받았지만 임상적 유효성에 대한 추가 검증이 필요한 신기술에 대해 제한된 기간 동안 의료 현장에서 사용하며 근거를 축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배현진 대표는 “신기술의 임상적 근거를 확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며 “평가유예 신의료기술 선정은 실제 의료 현장에서 제품을 활용하며 임상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이자 시장성을 검증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고 설명했다.
해당 제도는 심사 과정이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수의 전문가가 기술의 활용 목적과 대상, 임상적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기 때문에 선정 자체만으로도 의료 현장에서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평가다. AI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아직 선정 사례가 많지 않은 만큼 의미가 더욱 크다.
기술 개발 과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프로메디우스가 처음 골다공증 선별 AI를 선보였을 당시 의료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흉부 X-ray로 골다공증을 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배 대표는 이러한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해외 검증 연구에 집중했다. 특히 미국 보스턴의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 산하 병원들과 협력해 대규모 검증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로 꼽았다.
그는 “AI 성능을 검증하려면 흉부 X-ray 영상뿐 아니라 골밀도 검사(DEXA) 결과까지 함께 확보해야 하는데, 미국에서는 두 데이터를 연계해 확보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며 “MGH 산하 10개 병원에서 약 1,500명의 데이터를 수집해 검증을 진행했다”고 회상했다. 그 결과 프로메디우스의 AI는 미국 데이터에서도 높은 정확도를 기록했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 개발한 기술이 해외 환자군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셈이다.
배 대표는 “첫 해외 검증이었던 만큼 걱정도 많았지만, 기대했던 수준의 성능이 확인되면서 기술에 대한 확신을 얻는 계기가 됐다”며 “우리 제품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같은 성과는 국제 무대에서도 인정받았다. 프로메디우스는 올해 처음 개최된 WHO-ESCEO 혁신상(WHO-ESCEO Innovation Prize)에서 수상 기업으로 선정됐다. 당시 시상식은 전 세계 의료 전문가와 연구자 약 1만 명이 참석한 국제 학술대회 개막 행사에서 진행됐으며, 프로메디우스는 다수의 글로벌 혁신 기업들과 경쟁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배 대표는 수상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를 떠올리며 “세계 각국의 우수한 기업과 기술들이 경쟁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선정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기술 자체뿐 아니라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중요성과 사회적 임팩트를 높게 평가받은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수상 배경에는 탄탄한 임상 근거가 있었다. 프로메디우스는 한국을 포함한 6개 국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비용효과성 연구를 통해 해당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 180만 건의 골절을 예방하고 약 52조 원 규모의 사회경제적 비용 절감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수상 직후 열린 국제 학회 전시 현장에서도 반응은 뜨거웠다. 배 대표는 “시상식 이후 많은 연구자와 의료 전문가들이 부스를 찾아와 축하와 함께 제품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며 “흉부 X-ray로 골다공증을 조기에 선별한다는 접근 방식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많았고, 우리 기술이 현장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점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의료기술은 기술력만으로 평가받기 어렵다”며 “실제 임상 현장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임상적 근거가 얼마나 충분한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로메디우스가 개발한 흉부 X-ray 기반 골다공증 위험도 선별 AI 솔루션 ‘오스테오시그널(OsteoSignal)’
뼈에서 근육, 그리고 심혈관 질환까지… ‘Healthy Aging’ 플랫폼 구축
프로메디우스의 목표는 골다공증 진단에 머무르지 않는다. 회사는 복부 CT 영상을 활용해 근육량과 지방량, 근육 내 지방 침착도까지 분석하는 AI 솔루션 ‘마이오시그널(MyoSignal)’도 개발했다. 단순한 근육량 측정을 넘어 근육의 질적 상태를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최근 비만치료제 사용 증가와 함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근감소증과 대사질환 관리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향후에는 심혈관 질환 영역까지 파이프라인을 확장해 예방·예측 중심의 AI 스크리닝 플랫폼으로 성장한다는 계획이다.
배 대표는 “프로메디우스의 미션은 ‘AI를 통한 건강한 노화(Healthy Aging through AI)’다. 언젠가는 프로메디우스의 기술이 없는 의료 현장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임팩트를 만드는 기업이 되고 싶다”며 “건강하게 나이 드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 회사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수많은 환자들이 골절이 발생한 뒤에야 골다공증을 알게 된다. 프로메디우스가 풀고자 하는 문제는 단순히 AI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있지 않다. 질병을 더 빨리 발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나이 들 수 있도록 돕는 것에 가깝다.
천문학 연구실에서 시작된 영상 분석 기술은 이제 의료 현장에서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도구가 됐다. 우주를 연구하던 과학자가 의료 현장에서 찾은 답은 결국 사람의 삶에 있었다. 그리고 프로메디우스는 그 답을 AI 기술로 증명하며, 예방 중심 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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