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과 정부 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반드시 일치할까. 기술개발에 집중하느라 매출이 발생하지 않은 기업은 재무건전성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고, 액셀러레이터(AC)와 공동으로 회사를 설립한 창업팀은 투자자의 지분율에 따라 창업기업 인정에서 제외될 수 있다. 병역이나 출산으로 사업 운영에 공백이 생기거나 실패 이후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경우에도 기존 창업지원 기준이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정부가 창업기업의 업력과 재무상태, 지분구조, 재창업 이력 등에 적용해 온 규제를 개선하기로 한 배경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0월 23일 규제합리화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창업기업 규제합리화 방안’을 상정해 논의했다. 창업지원 기준 개선과 금융·투자환경 정비, 재도전 활성화 등 3개 분야의 10개 과제를 담았다. 국무조정실과 금융위원회,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마련한 개선안으로, 향후 법령과 운영기준 개정을 통해 시행할 예정이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창업생태계의 종합 순위는 글로벌 20위권에 있지만 규제와 행정절차 등을 포함한 기업환경 수준은 32위에 그쳤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조사에서도 스타트업 업계는 자금 확보와 투자 활성화에 이어 각종 규제 완화를 시급한 정부 개선 과제로 꼽았다. 창업기업은 사업모델과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반면 관련 제도는 기존 기업의 재무구조와 사업 운영방식을 기준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개선안은 이러한 간극을 줄이기 위해 창업 초기부터 성장, 투자 회수, 재도전에 이르는 과정의 규제를 폭넓게 다뤘다. 다만 발표된 과제마다 적용 법령과 소관 부처가 달라 실제 시행 시점과 세부 기준은 후속 절차를 거쳐 확정된다.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창업지원 기간의 산정 방식이다. 현행 중소기업창업 지원법은 창업기업을 원칙적으로 업력 7년 미만으로 규정한다. 병역이나 출산 등 불가피한 사유로 사업 운영을 중단하더라도 업력 산정에서 예외를 인정하지 않아 지원 가능 기간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었다. 정부는 이러한 경영 공백에 대해 최대 5년 범위에서 창업지원사업 참여기간을 추가로 인정하는 특례를 신설한다.
초기 창업기업의 연구개발(R&D) 신청 기준도 완화한다. 그동안 정부 R&D 사업은 채무불이행과 부실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부채비율이나 완전 자본잠식 여부 등을 신청 제한 요건으로 활용했다. 부처별로 세부 기준에 차이가 있지만 부채비율 1000% 이상 등 재무건전성 지표가 기업의 신청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사례가 있었다.
문제는 기술개발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초기기업에도 이러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연구개발 인력과 장비 확보에 자금을 투입하는 동안 매출이 발생하지 않거나 자본잠식 상태에 놓일 수 있지만, 재무지표만으로 신청을 제한하면 기술성과 사업성을 평가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정부는 업력 3년 미만 창업기업에 대해 재무건전성 요건을 사전 신청 제한 대신 선정평가 단계의 심사기준으로 반영하도록 개선한다. 재무상태에 대한 검토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업 신청 기회를 우선 부여하고 기술성과 성장 가능성을 함께 판단하는 방식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창업기업 규제합리화 방안 (출처: AI 생성형 이미지)
AC 지분 50% 넘어도 창업기업 인정…벤처스튜디오 제도화의 과제
이번 개선안에서 초기투자업계가 주목하는 대목은 벤처스튜디오 모델의 창업기업 인정 기준이다. 벤처스튜디오는 AC가 사업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창업팀을 구성하며 자본과 전문인력을 투입해 기업 설립에 직접 참여하는 공동창업 방식이다. 창업 이후 유망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일반적인 AC 모델과 달리 기업 설립 이전부터 사업기획과 기술개발, 초기 영업 등에 관여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AC가 상당한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기준에서는 AC 지분율이 50% 이상인 기업이 창업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정부는 AC의 투자지분이 50% 이상이더라도 벤처스튜디오 방식으로 설립한 기업을 창업기업 범위에 포함해 중소기업창업 지원법에 따른 지원을 허용하도록 개선한다.
다만 기존 제도에 자격 제한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벤처스튜디오 제도 아래 실제 지원사업 탈락 사례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화성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 회장은 벤처스튜디오 관련 시행령 개정이 진행 중이며, 새로운 제도 안에서 창업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정부 지원사업에서 제외된 사례는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개선은 발생한 탈락 사례를 사후 구제하기보다 제도 운영에 앞서 창업기업 인정 기준과의 충돌을 예방하는 조치라는 해석이다.
이어 전화성 회장은 벤처스튜디오가 단순한 자금 투자를 넘어 AC가 공동창업자로 참여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AC가 사업기획과 창업팀 구성, 기술개발, 초기 영업에 관여하면 투입한 자본과 역할에 따라 높은 지분율을 확보하는 구조도 나타난다. 이때 창업기업 인정 여부가 지분율에 좌우된다면 창업팀과 AC는 사업에 필요한 역할 분담뿐 아니라 정부 지원 자격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
제도 개선 이후에는 AC가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역할에 더해 직접 팀을 구성하고 사업을 만드는 방식으로 활동 범위를 넓힐 여지가 생긴다. 창업팀 역시 제품개발과 재무·인사, 초기 판로 확보 등 부족한 역량을 공동창업 파트너와 보완할 수 있다. 민간의 자본과 전문인력이 기업 설립 초기부터 투입되고 정부 창업지원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업 방식의 선택지가 확대되는 셈이다.
그러나 창업기업 인정 기준이 완화되더라도 모든 정부 지원사업에 자동으로 참여하거나 선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적용 시점과 기존 설립기업에 대한 적용 여부, 사업별 추가 자격 요건을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AC의 의무투자비율 산정 등 기존 투자 규정과의 정합성도 후속 검토 대상이다.
높은 지분율에 따른 투자 구조의 문제도 남는다. AC가 기업 설립 초기 상당한 자본과 전문인력을 제공하더라도 창업팀의 지분과 성과보상, 경영 자율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후속 투자 과정에서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전화성 회장 역시 창업기업 인정 여부와 별개로 창업팀의 동기부여와 후속투자 유치에 미칠 영향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벤처스튜디오 관련 규제 개선은 창업기업 인정 범위를 넓히는 데서 출발한다. 제도의 실효성은 신규 기업 설립과 정부 지원사업 접근성, 후속 투자 유치에서 나타나는 실질적인 변화에 달려 있다.
금융거래·투자 회수·재창업까지…기업 성장 단계별 규제 개선
창업 초기 기업이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겪는 금융거래의 불편도 개선 대상에 포함됐다. 현재 신규 개설 계좌에는 금융사기 예방을 위해 ATM과 전자금융거래 각각 하루 100만원, 창구거래 하루 300만원의 거래한도가 적용된다. 사업 목적을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하면 한도를 해제할 수 있지만 금융회사와 지점마다 요구하는 증빙 수준이 달라 거래 실적이 부족한 초기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이에 정부는 금융권 공동 가이드라인을 정비해 한도 해제기준을 명확히 하고, 창업지원사업 선정 이력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확인한 자료를 증빙 수단으로 추가하기로 했다. 기업이 충분한 거래 실적을 쌓기 전이라도 실제 사업 운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인정 자료의 범위를 넓히는 방식이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필요한 투자자금을 확보하고 투자자가 적절한 시점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도 정비한다. 모태펀드가 출자한 자펀드는 통상 8년 내외로 운용되는데, 현재는 만기를 연장하려면 출자자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투자기업의 성장과 회수에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일부 출자자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운용기간을 조정하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는 모태펀드 표준규약을 개정해 일정 수준의 출자자 동의만으로 존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하고, 투자 회수 시점을 보다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민간 금융권을 통한 투자 유치가 벤처기업 확인으로 연결되는 경로도 넓어진다. 정부는 벤처기업 확인에 인정되는 투자기관 유형을 기존 21개에서 23개로 확대하면서 창업·벤처전문 사모집합투자기구와 벤처기업투자신탁을 추가하고, 향후 자산운용사까지 인정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한다. 투자기관의 유형이 다양해진 현실을 제도에 반영해 기업이 확보한 민간 투자 실적을 벤처기업 확인 과정에서 보다 폭넓게 인정하려는 취지다.
기업공개를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기술특례상장 과정의 중복 행정 부담을 줄이는 데 무게를 뒀다. 현재 기술특례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은 두 개 전문평가기관의 기술성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기관별 자료요건과 평가기준이 달라 유사한 서류를 각각 작성하고 제출하는 경우가 있다. 정부는 복수평가에 활용할 공통 제출자료와 표준서식을 마련해 기업이 평가 준비에 투입하는 시간과 행정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기술성과 사업성을 평가하는 절차는 유지하되 동일한 자료를 반복해서 준비하는 비효율을 개선하는 것이다.
재창업 인정 범위 확대…실패 경험도 창업 경력으로
창업과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약을 완화하는 동시에 실패 이후 다시 사업을 시작하는 창업자에 대한 지원 기준도 달라진다. 재창업자가 이전 기업을 운영하면서 불성실한 행위를 했는지 확인하는 성실경영평가는 그동안 중기부와 일부 기관의 재기지원에 활용돼 왔으나, 정부는 평가기준을 재기 노력과 성실성 중심으로 개편하고 관련 지원 특례를 중기부 사업에 우선 적용한 뒤 관계부처와 협의해 확대할 예정이다. 과거의 사업 실패 이력만이 아니라 이후 재도전을 준비하는 과정과 경영의 성실성을 함께 살피겠다는 취지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기존 사업과의 관계 때문에 창업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 역시 개선한다. 그동안 개인사업자가 다른 개인사업을 추가로 개시하거나 기존 법인의 임원이 일정 지분 이상을 보유한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면 사업의 연속이나 확장으로 판단해 창업지원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있었다. 정부는 개인사업자가 다른 업종으로 창업하거나 기존 법인의 임원이 단독으로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 등 일부 유형을 창업으로 인정하도록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다. 창업 경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새로운 사업에 대한 지원 기회가 제한되지 않도록 인정 범위를 조정하는 것이다.
창업 경험을 공식적인 경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함께 마련된다. 개인사업자 창업 경력과 달리 법인 대표자로 기업을 경영한 이력이나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창업을 준비한 경험은 기존 경력조회체계에서 확인하기 어려웠다. 정부는 가칭 ‘도전·창업경력서’를 발급할 수 있는 인증체계를 신설하고 고용노동부의 통합경력증명서비스와 연계해 창업 경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창업 과정에서 축적한 경영과 사업화 경험을 이후 취업이나 재창업 과정에서도 공식 경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셈이다.
이번 규제합리화 방안은 창업기업의 지원 자격과 금융거래, 투자 유치와 회수, 재도전에 이르는 여러 단계의 제도적 제약을 함께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발표된 10개 과제는 법령 개정과 관계부처 협의, 사업별 운영기준 정비를 거쳐야 하는 만큼 실제 적용 시점과 세부 요건은 과제마다 달라질 수 있다. 창업기업 입장에서는 개선안이 발표됐다는 사실보다 언제부터 어떤 조건으로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지가 실질적인 관심사인 만큼 후속 조치의 구체성과 일관성이 정책 효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 (자료 제공: 중소벤처기업부)
중기부는 이번 개선안에 이어 민간 협단체 규제혁신 네트워크와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 규제 사전검토를 통해 추가 과제를 발굴하고, 규제합리화위원회 산하에 민간 전문가와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창업벤처규제혁신위원회를 신설한다. 스타트업 공동 규제실증 프로젝트와 광역연계형 규제자유특구 등 신산업 분야의 규제실증 수단도 확대해 창업 현장에서 제기되는 제도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다.
이번 규제합리화 방안의 성과는 개선 과제의 숫자보다 창업기업이 실제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경험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재무지표 때문에 R&D 신청 기회를 얻지 못했던 초기기업이 기술성과 사업성을 평가받을 수 있는지, 벤처스튜디오를 통한 기업 설립과 후속투자가 활성화되는지, 실패한 창업자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지가 정책의 실효성을 판단할 기준이다. 특히 벤처스튜디오 제도는 AC의 공동창업 참여를 인정하는 동시에 창업팀의 경영 자율성과 후속투자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어, 창업기업 인정 기준의 변화가 실제 기업 설립과 투자 성과로 연결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제시한 규제 개선 방향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후속 법령 정비와 사업별 적용기준이 일관되게 마련돼야 하며, 창업기업이 새로운 제도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행정적 제약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점검도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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