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이든크루의 남경아 대표는 고객사의 거래 시스템이 아닌 개발자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이든크루는 증권사 트레이딩 시스템 구축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었다. 고객사의 요구에 맞춰 시스템을 개발하는 사업은 안정적인 수익원이었지만, 자체 제품은 달랐다. 연구개발에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했고, 언제부터 매출로 이어질지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남 대표는 직접 개발에 참여해 ‘Lucy Studio’의 첫 버전을 만들었다.
그가 새로운 개발 도구를 만들기로 한 데에는 오랜 경험이 있었다. 1993년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해 온 남 대표는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구축하면서 비슷한 화면과 기능을 여러 차례 구현해야 했다. 프로젝트를 거듭하며 기술은 축적됐지만,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할 때마다 상당 부분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 번 개발한 기술을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면 개발 방식 자체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2026년 NH투자증권의 데스크톱 거래 앱 ‘나무 맥스’ 오픈으로 결실을 맺었다. 2022년 처음 선보인 자체 기술은 개념검증(PoC)을 거쳐 실제 투자자가 사용하는 금융 서비스에 적용됐고, 데스크톱에 이어 웹 트레이딩 시스템으로 협업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고객사의 시스템을 구축해 온 이든크루가 자신들의 개발 경험을 독립적인 제품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30년 개발 경험에서 출발한 문제의식, 자체 플랫폼 개발로 이어지다
남 대표가 2015년 설립한 이든크루는 유안타증권 MTS 개발을 시작으로 금융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사업 기반을 다졌다. 이후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 현대차증권 등으로 고객사를 넓혔고, 현재까지 국내 8개 증권사와 해외 3개국의 트레이딩 시스템을 구축했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시세를 처리하고 주문 기능을 기존 금융 시스템과 연결하는 등 복잡한 요구에 대응하면서 개발 역량을 쌓았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늘어날수록 남 대표에게는 반복되는 작업이 눈에 들어왔다. 증권사마다 제공하는 서비스와 업무 방식은 달랐지만, 화면을 구현하고 기능을 연결하는 과정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특히 PC와 모바일의 개발 환경이 달라 동일한 서비스의 화면을 별도로 작성해야 했고, 디자인이 변경되면 각각 수정하는 작업이 뒤따랐다.
“저는 증권사 HTS와 MTS 화면을 직접 개발하면서, 디자인을 실제로 작동하는 앱으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지 몸소 겪었습니다. 디자인을 코드로 다시 옮기는 부담만 덜어도 개발자는 핵심 업무 로직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 대표는 프로젝트마다 축적한 기술을 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개발 환경을 구상했다. 이를 위해 선택한 기술은 구글의 크로스플랫폼 개발 프레임워크인 플러터(Flutter)였다. 이든크루는 플러터가 정식 출시되던 무렵부터 기술을 도입했지만, 하나의 코드로 여러 운영체제를 지원하더라도 디자인을 실제 화면으로 구현하는 작업은 여전히 개발자의 몫이었다. 남 대표는 이 과정까지 개선하기 위해 2019년 Lucy Studio 개발에 착수했다.
기술적 가능성과 별개로 사업적 부담도 있었다. 증권사 시스템 구축은 회사의 매출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자체 플랫폼에는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했다. 한정된 인력으로 고객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새로운 제품까지 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장 크게 고민한 결정은 SI 사업을 이어 가면서 자체 플랫폼에 투자할 것인가였습니다. 고객 프로젝트는 회사의 안정적인 수익원이지만, 플랫폼 개발은 당장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 투자입니다.”
남 대표는 두 사업을 병행하기로 했다. 증권사 프로젝트에서 확인한 요구사항을 공통 기능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새로운 서비스에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2024년에는 제품화에 역량을 집중하며 기술을 고도화했다. 현재 이든크루는 개발자 16명을 포함한 19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김진상·조성주 이사와 손성경 부장 등이 실행 엔진과 공통 기능, AI 개발 도구를 담당하고 있다. 남 대표도 현업 개발자로서 제품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NH투자증권과의 협업, 실제 거래 서비스로 입증한 기술
자체 개발 도구를 만드는 것과 이를 증권사의 거래 시스템에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금융 서비스에서는 화면을 효율적으로 구현하는 것뿐 아니라 실시간 시세와 주문 기능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든크루가 Lucy Platform의 첫 고객인 NH투자증권과 개념검증을 진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양사는 이전부터 NH투자증권의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인 NH코린도증권의 MTS 개발을 비롯해 국내 MTS 개선, 마이데이터 플랫폼, 고객상담용 앱 등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해 왔다. 이러한 협업을 통해 고객사의 업무 환경을 이해하고 있었던 이든크루는 2022년 7월 Lucy Studio를 처음 시연했다. 당시 NH투자증권은 PC와 모바일에서 일관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면서 개발자에 따른 화면 품질의 편차를 줄일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2023년 양사는 실제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해 시세 조회와 주문 기능의 성능 및 안정성을 확인하는 개념검증을 진행했다. 이후 2025년 Lucy Platform을 활용해 윈도와 macOS에서 사용할 수 있는 데스크톱 거래 앱 ‘나무 맥스’를 개발했다. 나무 맥스는 2026년 7월 macOS용, 8월 윈도용으로 차례로 공개됐다. 2019년 자체 개발 도구로 시작한 기술이 7년 만에 실제 투자자가 사용하는 금융 서비스로 자리 잡은 것이다.
Lucy Platform은 화면 디자인과 업무 로직을 연결해 모바일·PC·웹 애플리케이션을 통합 개발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업용 앱 실행 플랫폼이다. 디자이너가 피그마(Figma)에서 제작한 디자인을 Lucy Studio로 불러오면 개발자는 시세 조회나 주문 처리 같은 기능을 연결한다. 화면과 업무 로직을 정의하는 부분을 실행 환경과 분리해 iOS·안드로이드·웹·윈도·macOS 등 다양한 운영체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됐다. 이든크루가 2023년 5월부터 12월까지 수행한 프로젝트를 기존 방식과 비교한 결과, 콘텐츠 화면 제작 시간은 30%, 애니메이션 효과 제작 시간은 60% 감소했다. 화면 구현에 필요한 소스코드 양도 30~5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남 대표가 해결하고자 했던 반복적인 개발 작업의 부담을 실제 프로젝트에서 줄인 것이다.
NH투자증권과의 협업은 후속 사업으로 이어졌다. 데스크톱 거래 앱에 이어 오는 11월 12일에는 웹트레이딩시스템(WTS)을 오픈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교보증권과 유진투자선물도 Lucy Platform을 도입해 새로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가장 의미 있는 성과는 Lucy Platform을 도입하는 증권사가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첫 도입이 후속 프로젝트로 이어진 것은 고객이 플랫폼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든크루의 2025년 매출은 전년 대비 약 51% 증가했다. UI 자동 생성 기술에 대한 특허를 확보하고 중소벤처기업부 연구개발 과제를 통해 기술을 고도화하는 등 자체 제품의 경쟁력도 강화해 왔다. 이러한 연구개발 성과를 인정받아 ‘2026년 중소기업 R&D 우수성과 5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기존 시스템 구축 사업에 솔루션 공급과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SDK), 유지보수를 결합하며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금융권을 넘어 SaaS와 해외 시장으로, 플랫폼 사업의 다음 단계
금융권에서 적용 사례를 확보한 이든크루는 이제 더 많은 기업과 개발자가 Lucy Platform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공급 방식을 바꾸고 있다. 지금까지는 고객사와 직접 협의해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이 중심이었지만, 다른 산업으로 진출하려면 새로운 이용자가 스스로 제품을 익히고 적용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중심에 있는 제품이 협업 도구 ‘Lucy TeamCloud’다. 현재 Lucy Studio는 개발자 PC에 설치해 사용하고, TeamCloud는 고객사 서버에 구축하는 온프레미스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든크루는 배포·조직·권한 관리 기능을 강화한 고도화 버전을 2026년 12월 말 기존 고객사에 공급하고, 2027년 초에는 기업과 개인 개발자가 직접 가입해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베타 버전을 공개할 계획이다.
남 대표는 구축형 사업과 구독형 서비스의 차이를 제품의 접근성에서 찾고 있다. 고객사와 함께 요구사항을 분석하고 개발하는 방식과 달리, SaaS에서는 이용자가 별도의 지원 없이 자신의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능을 제공하는 것과 고객이 스스로 이해하고 활용하도록 돕는 것은 별개의 과제입니다.”
이에 따라 이든크루는 사용 안내와 예제, 기술 지원 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개발자가 자연어로 요구사항을 입력하면 화면 수정과 스크립트 작성을 돕는 AI 어시스턴트 ‘Lucy Devora’도 개발 중이다. 기업이 설정한 권한 범위 안에서 작동하도록 설계해 금융권을 비롯한 기업 개발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공공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2026년 하반기 중소벤처기업부 혁신제품 지정에 신청해 서류·발표 평가를 마쳤으며, 현재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정될 경우 공공기관 공급을 추진할 계획이다. 금융 이외의 산업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기 위해 관련 업무 전문성을 보유한 SI 기업 및 개발사와의 협업도 검토하고 있다.
해외 시장을 향한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26에 참가해 Lucy Platform과 금융권 적용 사례를 시연했으며, 오는 10월 29~30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되는 FlutterKaigi 2026에도 참가한다. 조성주 이사는 공개 모집을 통해 채택된 기술 세션에서 플러터 활용 경험을 일본어로 발표하고, 정인재 과장은 골드 스폰서 부스와 세션에서 제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해외 기업 관계자는 물론 플랫폼의 기반 기술을 사용하는 개발자들과 직접 교류하며 협력 기회를 찾겠다는 구상이다.
남 대표는 앞으로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첫 번째 작동 화면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 개념검증이 실제 도입으로 이어지는 비율, 기존 고객의 유지와 확장 여부를 주요 성과지표로 삼을 계획이다. 기술의 기능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개발 과정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되는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개발자로 일해 온 남 대표는 지금도 직접 코드를 작성한다. 증권사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개발 도구는 이제 실제 금융 서비스에 적용되는 제품으로 성장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그동안 축적한 기술을 더 많은 산업과 개발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장기적으로는 금융권에서 검증한 Lucy Platform을 국내외 여러 산업으로 넓혀, 기업과 개발자가 모바일·데스크톱·웹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앱 실행 플랫폼으로 키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누구나 쉽고 빠르게 고품질의 앱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이든크루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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