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M&A 전문가의 협상은 화려한 말이나 가격 싸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도 중요한 것은 상대를 이기는 기술보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과정이다. 드라마 〈협상의 기술〉 속 흰머리의 M&A 전문가 ‘윤주노’의 실제 모티브로 알려진 우준호 우앤파트너스 대표가 실제 M&A 협상 경험을 토대로 협상의 본질과 현장에서 작동하는 기술을 풀어낸다. 첫 번째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혼동하는 ‘흥정’과 ‘협상’의 차이에서 시작한다.
2025년 봄 방영된 드라마 〈협상의 기술〉 속 흰머리의 M&A 전문가 ‘윤주노’의 실제 모티브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대표님, 협상 전문가시니 가격도 엄청 잘 깎으시겠네요? 제가 이번에 뭘 하나 협상해야 하는데 원포인트 레슨 좀 해주세요.”
그때마다 필자는 생각한다. 사람들이 협상(Negotiation)과 흥정(Haggling)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협상을 상대를 설득해 가격을 깎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가져오는 싸움으로 이해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흥정에 가깝다. 협상(協商)의 ‘협’ 자는 협동과 협력에 쓰이는 화합할 협(協) 자를 쓴다. 한쪽만 이기고 상대를 무너뜨리는 거래에는 ‘다음’이 없다.
그렇다고 “그건 협상이 아니니 도와드릴 수 없네요”라고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해에도 정확히 이런 상황을 맞닥뜨렸다.
어느 회사가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M&A 막바지 단계였다. 계약서 서명 직전, 양측의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딜이 깨질 위기에 처하자 필자에게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해 온 것이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 없이 타결 직전의 불붙은 협상장에 뛰어드는 것은 전문가에게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정중한 요청을 외면할 수 없어 회의에 직접 참석해 협상을 주도하기로 했다.
아무런 카드도 없이 들어간 협상장에서 필자는 무엇을 했을까.
경계를 허물어야 진짜 협상이 시작된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필자라는 사람을 진심을 다해 소개하는 것이었다. 사전 맥락 없이 갑자기 등장한 낯선 M&A 전문가를 바라보는 상대방의 눈빛에는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상대측이 우리를 압박하려고 원군을 불렀구나’라는 방어 기제가 작동하면 합리적인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워진다.
화려한 경력이나 전문용어를 늘어놓는 대신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된 배경과 상대를 돕고자 하는 진정성을 겸손하게 전달했다. 자신을 정직하게 밝히는 자기소개는 상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차가운 협상장에 감도는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드는 ‘라포(Rapport) 형성’이 이뤄져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방어막을 허물어야 비로소 진솔한 대화가 시작된다.
소개가 끝난 뒤 한 일도 내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었다. 정중하게 질문을 던졌다.
“죄송하지만 제가 이 상황과 회사의 상태에 대해 잘 몰라 조심스럽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지난 몇 년간 실적이 좋았는데, 작년에 갑자기 꺾인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희가 실적 악화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를 인수하려는 건 향후 폭발적 성장에 대한 기대 때문인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솔직히 현재 수치만 보면 인수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아 드리는 질문입니다.”
질문을 받은 매도자는 자신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 30분 만에 상대의 진짜 속마음(Need)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 사람은 회사를 정말 매각하고 싶어 하는구나. 우리와 손을 잡았을 때 강력한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구나!’
우준호 우앤파트너스 대표(왼쪽)와 그를 모티브로 한 M&A 전문가 윤주노 역의 배우 이제훈이 담긴 JTBC 드라마 〈협상의 기술〉 포스터. (사진 제공: 우앤파트너스·JTBC)
설득보다 질문이 먼저다
상대가 진짜 원하는 것, 즉 매각의 완성과 시너지에 대한 확신을 파악하자 비로소 우리의 요구 조건을 분명하게 제시할 근거가 생겼다. 상대의 답변을 충분히 경청한 뒤 제안을 꺼냈다.
“이것이 저희가 제안해 드릴 수 있는 최선입니다. 한번 고민해 보시고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게 회의를 마무리하려 하자 오히려 상대방의 표정에서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타결하고 싶어 하는’ 조급함이 읽혔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안의 핵심을 정중하게 다시 요약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제안된 3가지 조건 가운데 2가지는 즉시 수용하되, 나머지 1가지 조건만 조금 높여줄 수 있는지 역제안을 해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을 잘해서 상대를 설득했다는 데 있지 않다. 먼저 질문했고, 답을 들었고, 그 과정에서 상대가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를 파악했다. 상대의 진짜 필요를 알고 나서야 어떤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지, 어느 지점에서 합의를 시도해야 하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협상에서 질문은 정보를 얻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상대가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무엇은 양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거래를 얼마나 원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좋은 협상은 조건만이 아니라 사람을 남긴다
사실 상대가 요구한 정도의 양보는 이미 협상장에 들어오기 전 내부적으로 승인해 둔 범위 안에 있었다. 그 자리에서 즉시 “좋습니다. 그렇게 진행하시죠”라고 도장을 찍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지 않고 멈췄다. 거래가 끝난 뒤에도 상대방과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사람은 필자가 아니라 옆에 앉아 있는 회사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최종 결정권을 대표에게 넘겼다. 회의를 정돈한 뒤 대표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대표가 직접 상대의 최종 조건을 흔쾌히 수용하는 모양새로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협상은 정해진 정답을 찾는 시험이 아니다. 양쪽이 원하는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해답은 ‘나와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질문을 통해 상대의 진짜 의도를 파악했기에 우리에게 조금 더 유리한 지점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 나아가 마지막 순간에 공을 클라이언트에게 돌림으로써 딜의 성공뿐 아니라 ‘거래 이후에도 오래 지속될 사람과 신뢰’까지 남길 수 있었다.
이것이 필자가 정의하는 협상이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어 함께 움직이는 파트너가 되는 것.
여러분의 다음 협상 테이블에서는 어떤 질문을 던지겠는가?
우준호 대표는 이랜드에서 15년간 M&A와 전략, 사업 운영, 투자를 경험하며 국내외 15건, 누적 약 13억달러 규모의 인수·매각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현재 M&A·투자유치 전문 자문사 우앤파트너스 대표로 기업의 거래 검토부터 협상과 실행까지 지원하고 있다. 드라마 〈협상의 기술〉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인물로 알려졌으며, 실제 M&A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상 전략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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