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사람을 대신해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하고 결제하는 ‘에이전트 경제’에서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초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해시드오픈리서치 분석에 따르면 현재 AI 에이전트 결제의 약 98.6%가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으로 처리된다. 초기 개발 환경에서 달러가 기본 결제 수단으로 채택된 결과가 정산 인프라와 서비스 생태계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반면 국내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는 발행 주체를 둘러싼 쟁점에 집중돼 있다. 원화가 AI 결제 시장에서 실질적인 통화로 사용되려면 발행 권한과 함께 독자적인 정산망, 유통 접점, 디지털 신원 인증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해시드오픈리서치, ‘에이전트 경제 시대,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전략’ 발간 (자료 제공: 해시드오픈리서치)
글로벌 블록체인·AI·콘텐츠 벤처캐피털 해시드의 정책 싱크탱크 해시드오픈리서치(HOR)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에이전트 경제 시대,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경쟁축이 코인 발행에서 결제와 정산, 유통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결제기업 스트라이프는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을 잇달아 인수하며 결제·정산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서클도 자체 결제용 블록체인 네트워크 ‘아크(Arc)’를 구축하며 정산 영역에 진입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발행부터 사용자 접점까지 수직통합을 추진하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은행과 비은행 가운데 누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지를 둘러싼 논의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HOR은 정책 논의의 범위를 준비자산 수익 배분과 유통 사업자의 협상력, 정산망 접근 조건, 의사결정 구조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발행사가 아닌 결제 통로가 수익 확보…신원 인증도 핵심 인프라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 산업의 수익과 주도권이 발행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실제 결제가 이뤄지는 정산망과 소비자·가맹점 접점을 보유한 유통 사업자가 더 큰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행사는 준비자산을 운용해 수익을 얻지만 규제 변화와 금리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용자를 확보하려면 지갑과 거래소, 결제 플랫폼 등 유통 파트너에게 수익 일부를 배분해야 한다. 발행 권한을 확보해도 독자적인 정산망과 사용처가 부족하면 시장 지배력과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게 보고서의 판단이다.
AI 에이전트 결제는 통화와 정산망 경쟁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꼽혔다. 현재 관련 결제의 98.6%가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집중된 상황에서 이러한 구조가 고착되면 원화 기반 결제 서비스도 해외 블록체인과 달러 정산망에 의존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국내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사이 일부 원화 연동 자산 발행과 국내 사업자의 실증 사업이 해외 법인, 외국 블록체인, 달러화 스테이블코인 등 해외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보고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와 함께 AI 에이전트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정산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원 인증도 에이전트 경제의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AI가 사용자를 대신해 거래하려면 정당하게 권한을 위임받았는지 확인하고, 결제 오류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책임 주체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HOR은 한국이 보유한 전자서명과 금융 실명 확인 체계를 블록체인 기반 신원 증명 기술과 결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AI 에이전트의 권한과 거래 범위, 책임 주체를 검증하는 체계를 구축하면 원화 결제 인프라를 넘어 글로벌 에이전트 거래의 신원 인증 표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HOR 관계자는 “국내 논의는 달러가 선점한 범용 결제 시장과 발행 주체 경쟁에 집중돼 있다”며 “원화가 AI 에이전트 경제의 정산 통화로 사용되려면 독자적인 정산망을 구축하고 한국의 디지털 신원 인증 체계를 블록체인과 결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경쟁력은 발행 허용 여부보다 AI 에이전트와 가맹점이 실제로 사용할 정산 경로와 거래의 책임을 확인할 신뢰 인프라를 확보하는 데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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