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 한 마리가 부산의 관광 지도를 바꿨다. 부산 북항 친수공원 인공수로에 나타난 흑상어 ‘부캉이’가 누적 방문객 100만 명을 넘기는 이례적인 관심을 모으면서 지역 상권과 기업 마케팅에도 변화가 생겼다. 공원 주변 편의점 매출이 급증했고 부산 향토기업은 부캉이를 활용한 한정판 소주를 출시했다. 시민들이 상어의 위치를 공유하는 웹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야생 상어의 뜻밖의 방문이 관광과 소비를 활성화하고, 기업의 콘텐츠와 디지털 서비스 개발로까지 이어지며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부캉이는 지난 9월 18일 부산 동구 북항 친수공원 수로에서 처음 발견됐다. 국립수산과학원은 10월 6일 근접 촬영 영상과 외형적 특징을 분석해 몸길이 약 3m의 암컷 흑상어로 최종 확인했다. 흑상어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서 위기(EN) 등급으로 분류되는 종이다. 시민들이 붙인 ‘부캉이’라는 이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서 북항은 상어를 직접 보려는 사람들의 방문지로 떠올랐다.
전재수 부산시장 (사진 제공: 부산기술창업투자원)
방문객 증가 속도는 가팔랐다. 평소 주말에도 하루 평균 2000명 안팎이 찾던 친수공원에 상어가 등장한 첫 주말 이틀 동안 약 2만 명이 몰렸다. 10월 5일 누적 방문객이 100만 명을 넘어섰고, 전재수 부산시장이 8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7일 기준 누적 방문객은 106만 명에 달했다. 전 시장은 “한 보름 정도 될 때까지만 해도 운이 좋아도 너무 운이 좋은 시장이라고 생각했고, 부캉이가 그냥 예뻐 죽겠더라”고 말했다. 부산시장까지 예상하지 못한 방문객 증가에 놀라움을 나타낼 만큼 부캉이는 짧은 기간에 대규모 관광 수요를 만들어냈다.
방문객이 늘면서 주변 소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부캉이가 등장한 직후인 9월 19~20일 부산 동구의 외지인 관광 소비액은 26억2976만원으로 집계됐다. 직전 주말인 12~13일의 25억2351만원보다 1억625만원, 4.2%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기간의 주말 평균 소비액인 23억4425만원과 비교하면 12.2% 많다.
북항 친수공원과 가까운 편의점에서는 매출 증가가 더 뚜렷했다. CU에 따르면 9월 19일부터 27일까지 공원 인근 5개 점포의 평균 매출은 직전 같은 기간보다 76.7% 증가했다. 상어를 보러 온 방문객들이 음료와 간식, 생활용품 등을 구매하면서 주변 상권에도 소비가 발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부산 동구 전체의 관광 소비 증가분을 모두 부캉이의 영향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연휴와 관광객 이동 등 다른 요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부산 북항 친수공원 인공수로에서 헤엄치고 있는 흑상어 ‘부캉이’
‘부캉이’를 상품으로…대선주조의 빠른 마케팅, 유통업계의 캐릭터 전략
기업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지역의 화제성을 브랜드 콘텐츠로 연결하고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 부캉이를 활용한 곳은 부산 향토 주류기업 대선주조다. 대선주조는 10월 8일 대선 소주 ‘부캉이’ 특별 에디션을 출시했다. 라벨에는 푸른 바다와 물보라를 배경으로 파도를 타는 상어 캐릭터를 담았다. 부산에서 발생한 화제를 지역 브랜드의 상품 디자인으로 옮긴 것이다.
상품 출시 이전에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짧은 영상도 공개했다. ‘북항에 온 상어, 이유가 이거라는데?’라는 제목의 영상에는 북항 수로를 헤엄치던 부캉이가 대선 소주를 꺼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8일 뉴시스 보도 당시 영상 조회수는 2만6000회를 기록했다. 부캉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활용해 별도의 촬영이나 복잡한 제작 과정 없이도 빠르게 브랜드 콘텐츠를 만든 사례다.
대선주조가 부산 북항에 나타난 상어 ‘부캉이’를 활용해 출시한 대선 소주 특별 에디션 홍보 이미지 (사진 제공: 대선주조)
대선주조 최홍성 대표는 부캉이가 부산 원도심에 가져온 활기를 시민들과 나누기 위해 이번 에디션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화제를 제품에 반영하고 SNS 콘텐츠와 연결한 점에서 지역 밀착형 마케팅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특별판의 실제 판매량이나 매출 기여도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유통업계에서는 상어 캐릭터를 활용한 가족형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 신세계사이먼은 더핑크퐁컴퍼니와 함께 10월 9일부터 26일까지 부산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핑크퐁 아기상어 해피 피크닉’을 진행한다. 노스 중앙광장에는 높이 6m의 핑크퐁과 아기상어 조형물 포토존을 설치하고, 인근 팝업스토어에서는 인형과 완구, 의류 등 캐릭터 상품을 판매한다. 색칠놀이 체험과 동요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는 공연도 마련했다.
이번 행사는 부캉이와 직접 연계해 기획한 공식 협업은 아니다. 신세계사이먼이 가을 나들이 시즌을 겨냥해 준비한 가족형 콘텐츠로, 부산에서 상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와 맞물렸다. 실제 야생 상어를 보기 위해 북항을 찾는 관광객과 캐릭터를 활용한 체험형 유통 콘텐츠는 성격이 다르지만, 동물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가족 단위 방문 수요와 결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지역에서 발생한 화제를 얼마나 빠르게 상품과 콘텐츠에 반영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대선주조가 부캉이를 직접 활용한 한정판 상품과 AI 영상을 선보였다면, 신세계사이먼과 더핑크퐁컴퍼니는 이미 확보한 아기상어 캐릭터 지식재산권(IP)을 오프라인 체험과 상품 판매로 연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목격 정보도 서비스가 됐다…시민 참여형 AI 플랫폼 등장
부캉이 열풍은 상품 판매를 넘어 새로운 디지털 서비스도 탄생시켰다. 국립부경대학교 학·석사연계 ICT 핵심인재양성 사업단 소속 이노아 연구원이 개발한 ‘부캉이 지금 있나’가 대표적이다. 부캉이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방문객들이 SNS에서 목격 정보를 찾는 데 불편을 겪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웹서비스를 개발했다.
국립부경대 이노아 연구원이 개발한 시민 참여형 웹서비스 ‘부캉이 지금 있나’. 현장 목격 정보와 사진을 바탕으로 부캉이의 위치를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료 제공: 국립부경대학교)
지난 9월 22일부터 운영된 이 서비스는 현장 방문객이 ‘지금 보여요’ 또는 ‘안 보여요’ 버튼을 누르고 사진을 올리면 목격 구역이 공원 지도에 표시되는 방식이다. 현장 사진은 AI가 실제 촬영 여부를 판별하며, 위치 기반 제보를 통해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는 문제를 줄이도록 설계했다.
개설 약 2주 만에 누적 방문자는 2만 명에 이르렀다. 거창한 사업계획보다 시민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정보를 빠르게 서비스로 구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실시간 목격 정보를 여러 SNS에서 일일이 찾아보던 과정을 하나의 화면으로 모았고, 현장 이용자가 직접 정보를 갱신하는 참여형 구조를 만들었다.
이노아 연구원은 처음에는 SNS에서 제보를 직접 찾아 옮겼지만 한계가 있었다며, 시민들이 간단하게 제보하고 AI가 사진을 자동으로 확인하도록 만든 뒤 필요한 정보를 더 빠르게 제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부캉이 사례는 지역의 일시적인 화제가 디지털 서비스 개발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용자들이 특정 장소에서 겪는 불편을 파악하고, 지도와 위치정보, AI 검증 기술을 결합해 짧은 시간 안에 서비스를 구현했다. 향후 유사한 관광·축제·야생동물 관찰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 방식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팀브레인즈와 홍보법인 동서남북이 온라인 응답자 38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트렌드 나침반: 부캉이편’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1%가 자연 귀환을 기다려야 한다고 답했다. (자료 제공: 홍보법인 동서남북)
학부모 71%는 “그냥 놔둬야”…인기만큼 커진 보호 책임
부캉이를 향한 관심은 이제 관광과 소비를 넘어 야생동물의 안전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유아 전문 에듀테크 기업 팀브레인즈와 홍보법인 동서남북이 10월 1일부터 7일까지 온라인 채널에서 성인 남녀 38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트렌드 나침반: 부캉이편’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1%가 부캉이를 그대로 두는 편이 낫다고 답했다. 구조해야 한다는 응답은 29%였다.
응답자들은 인위적인 구조 과정에서 부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하며 부캉이가 스스로 바다로 돌아가는 방식을 선호했다. 부캉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로는 ‘억수로 고맙데이’가 42%로 가장 많았고 ‘인자 퍼뜩 가라’ 29%, ‘참말로 미안하데이’ 16%, ‘밥은 챙겨 뭇나’ 10%가 뒤를 이었다. 부캉이를 보기 위해 찾아간 경험에 대한 고마움과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이 함께 나타난 결과다.
다만 이번 조사는 팀브레인즈 회원과 홍보법인 동서남북 홈페이지 방문자 등 온라인 참여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응답자의 모집 경로가 제한돼 있어 전체 부산 시민이나 모든 유치원 학부모의 의견으로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 부캉이의 건강 상태를 둘러싼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부산시 등 관계기관은 9월 29일과 10월 2일 두 차례 외해 유도 작업을 진행했지만 부캉이는 수로에 남았다. 최근에는 주둥이 부위의 찰과상이 확인됐고, 수온 하락과 먹이활동 흔적 부족, 특정 구간을 반복해서 오가는 행동 등이 관찰됐다.
전재수 부산시장은 8일 기자회견에서 국립수산과학원과 함께 건강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간 관람객이 비추는 강한 불빛 등으로 부캉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부산시는 당장 추가 구조작업을 진행하기보다 이상징후를 살피면서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부캉이가 만들어낸 경제적 파급효과는 분명 눈여겨볼 만하다. 평범한 친수공원이 전국적인 관광 명소가 됐고, 주변 상권의 매출이 늘었으며, 기업들은 한정판 상품과 AI 콘텐츠를 제작했다. 시민의 관심은 새로운 웹서비스 개발로도 이어졌다. 별도의 대규모 관광 개발이나 광고 캠페인 없이 자연스럽게 발생한 사건이 지역 경제와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러나 이 현상의 중심에는 보호가 필요한 야생동물이 있다. 부캉이를 오래 머물게 하는 것이 지역 경제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구조와 보호의 기준이 돼서는 곤란하다. 기업들이 부캉이의 인기를 활용하는 동안 지자체와 관계기관에는 관람객 관리와 생태적 안전을 확보할 책임이 남는다. 부캉이가 건강하게 바다로 돌아가더라도 북항에 모였던 관심을 지역의 지속적인 관광 수요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부산에 남겨진 또 하나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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