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제조와 금융, 바이오 등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식품 산업은 여전히 디지털 전환(DX)과 인공지능 전환(AX)의 속도가 유독 더딘 분야로 꼽힌다. 식품의 품질을 수치화하기 어려운 데다, 사람마다 다른 미각·후각적 취향과 경험에 크게 의존하는 관능적 특성 때문이다.
보이지벤처스(VoyageVentures)는 이러한 한계를 데이터와 공정 기술로 정면 돌파하고 있는 딥테크 푸드테크 스타트업이다. 창업 동아리에서 출발해 커피의 향미를 분석하고 재현하는 ‘분자 풍미 설계(Molecular Flavor Design)’ 기술을 구축한 보이지벤처스는 원두를 사용하지 않은 제로카페인 커피 대체 음료와 기능성 음료 소재를 개발하며 B2B OEM·ODM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기술은 내부적으로 최대한 정교하게 만들되, 외부적으로는 가장 쉬운 제품 경험, 소비자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저희의 원칙”이라는 보이지벤처스 최준호 대표 (제공: 보이지벤처스)
“식품 DX의 핵심은 레시피보다 정량화된 향 데이터”
최준호 대표는 식품 산업에 AI를 적용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로 ‘데이터 수집 및 정량화의 난제’를 꼽았다. 기존 제조업은 공정 데이터를 수집하고 예측하기 쉽지만, 식품은 원하는 인풋과 아웃풋을 정의하는 것부터 어렵다. 사람마다 맛에 대한 취향이 다르고 원산지, 수확 시점, 수분 함량 등에 따라 원료 데이터가 가변적이다. 특히 단맛·쓴맛과 달리 고소함이나 초콜릿 향, 바디감 같은 ‘향(Aroma)’은 수많은 휘발성 화합물과 전처리·발효·로스팅·추출 등 복잡한 공정의 영향을 동시에 받기 때문에 정량화가 극도로 어렵다.
보이지벤처스는 모든 식품을 한 번에 바꾸기보다, 식품 중에서도 향미 분자 구성이 가장 복잡한 ‘커피’를 첫 번째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커피 추출·가공 과정의 향미 데이터를 축적하고, 원료 성분과 공정 조건, 향미 결과를 연결하는 정량 향미 분자 데이터 알고리즘을 고도화했다. 최 대표는 AI를 조향사나 연구원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R&D 효율을 높이는 도구로 규정한다. 수개월씩 걸리던 풍미 탐색과 맛 복제 과정을 데이터 기반으로 단축하고, 양산 단계에서도 품질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보이지벤처스의 접근 방식이다.
“장기적으로 보이지벤처스는 단순히 AI를 활용하는 식품회사를 넘어, 식품 제조의 DX·AX에 필요한 정량 향미 분자 데이터를 공급하고 원료 성분과 공정을 연결해 주는 인프라 기업을 목표로 합니다.”
기존 대체커피의 한계를 넘는 ‘분자 풍미 설계’와 시장의 공백
기존 디카페인 커피는 원두 그라인더 추가 관리와 공정 비용으로 인해 일반 커피보다 30~50% 높은 원가 부담을 초래했고, 저가형 커피 매장은 인건비와 원두 가격 상승 속에서 마진 스퀴즈(Margin Squeeze)를 겪었다. 한편 보리차·치커리 등 기존 대체 음료는 커피 특유의 풍미를 충족하지 못했고, 건강 효능만 강조하는 기능성 음료는 맛과 브랜드 경험이 부족해 재구매로 이어지지 못했다.
보이지벤처스는 건강음료를 하나 더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대체커피에 부족한 향미 구조를 분석하고 원료와 공정으로 보완하는 기술적 문제로 접근했다. 당과 아미노산이 특정 온도와 조건에서 반응하는 마이야르 반응 메커니즘을 연구하여, 전처리·발효·배합·로스팅·추출 조건을 정밀 조정했다.
보이지벤처스의 독자 공정 기술(신규 개발) (출처: AI 생성 이미지)
이를 통해 소비자에게는 맛·기능성·익숙한 커피의 맛을 제공하고, 카페 사업자에게는 원가와 운영 부담을 줄이면서 오후·저녁 시간대 제로카페인 수요층까지 흡수할 수 있는 상위 호환의 카테고리를 제시했다.
“소비자에게는 ‘버섯 분자 기술’이라는 복잡한 설명 대신 제로카페인과 익숙한 커피 풍미라는 직관적 경험을 전달하고, B2B 고객에게는 향미 프로파일, 원료 사양, 추출 수율, 제조 단가, MOQ (최소 주문 수량)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시장 문턱을 낮추고 있습니다.”
규제 리스크를 줄이는 스마트한 사업화 전략
대체 식품 및 신소재 스타트업은 식품위생법상 신원료 안전성 입증 규제(안전성 평가 등)로 인해 상용화가 지체되는 데스밸리에 빠지기 쉽다. 또한 국내에 유통되는 식품 원료는 식품 제조사가 어떤 제품에든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된 원료(범용 원료)에 치중되어 있어, 대체커피나 기능성 커피에 필요한 특화 원료 공급망이 부재하다 보니 완제품 제조사들이 배합만으로는 원하는 커피 향미를 구현하는 데 한계를 겪고 있었다.
보이지벤처스는 규제를 우회하려 하기보다, 이미 국내 식약처 인허가가 완료된 안전한 식품 원료와 허용 공정 범위 안에서 원료 특성을 새롭게 설계하는 전략을 택했다. 1차 원료 가공 단계부터 아미노산·당 조성과 반응성을 커스텀 설계하여 공급함으로써, 규제 리스크와 사업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B2B 고객사가 원하는 맛과 기능 사양에 맞춘 원료를 직접 개발·공급하는 독보적 B2B 차별점을 확보했다.
경기도농수산진흥원과 월드푸드테크협의회가 공동주최한 ‘2024 코리아 푸드테크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농수산진흥원장상을 수상한 보이지벤처스팀 최준호 대표(왼쪽)와 최창수 경기도농수산진흥원장 (제공: 보이지벤처스)
푸드테크 생태계가 풀어야 할 실질적 과제
최 대표는 국내 푸드테크 산업이 일시적 유행(Fad)을 넘어 지속 가능한 메가 트렌드로 안착하기 위해 현장에서 체감한 세 가지 생태계 개선안을 제언했다.
첫째, 소규모 유연 생산을 위한 민간 위탁 ‘공공 공유공장’이다. 초기 스타트업은 수요를 증명하지 못해 대량생산을 못 하고, 제조사는 수익성 때문에 소량 주문을 거절하는 생산 모순에 빠진다. 장비만 제공하는 공유공장을 넘어, 인허가와 운영 역량을 갖춘 민간 제조사에 위탁하여 50kg, 100kg, 300kg 단위 파일럿 생산부터 품목제조보고, 유통기한 설정, 품질검사까지 원스톱 지원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 관능 검증을 위한 상설 테스트베드 구축이다. 소비자가 실제 제품을 체험하고 유상 PoC(개념 증명) 및 재구매 데이터를 즉각 수집·검증할 수 있는 오프라인 상설 테스트베드 채널지원이 시급하다.
셋째, 실질적인 오픈이노베이션 활성화이다. 단순 전시용 매칭을 넘어, 유통망과 대량 생산 인프라를 갖춘 대기업과 원천 기술 및 특화 원료 설계 능력을 갖춘 스타트업 간의 B2B 공동 개발·원료 채택 프로그램이 확대되어야 한다.
“목표는 메이드 인 코리아 식품을 만드는 ODM 인프라 기업”
최 대표는 대체커피를 기존 커피를 완전히 대체하거나 열화 복제하는 상품으로 보지 않는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오후·저녁 카페인을 피하고 싶은 고객, 수면·건강 관리자, 임산부 등을 위한 ‘기능성 커피’ 시장의 세분화된 하위 카테고리로 정의한다.
단기적으로는 대체커피·기능성 커피 원료를 농축액, 분말, 드립백, 티백, RTD(완제품) 등 다양한 형태로 B2B OEM·ODM 공급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커피에서 축적한 풍미 데이터를 타 식품군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저희의 중장기 비전은 한국 식품 산업에서 인디 브랜드와 스타트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메이드 인 코리아 식품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ODM 인프라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The post “푸드테크의 디지털 전환은 결국 ‘향’에서 시작됩니다”…보이지벤처스 최준호 대표가 말하는 식품 AI의 미래 appeared first on 벤처스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