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가 최근 추진되고 있는 자본시장 개편과 관련해 혁신기업의 성장과 투자 선순환을 고려한 제도 보완을 촉구하고 나섰다. 벤처기업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15일 여의도에서 ‘혁신경제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자본시장’을 주제로 공동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본시장 개편과 관련한 5대 정책과제를 금융당국에 제안했다.
업계는 코스닥 시장 활성화와 투자자 보호, 시장 신뢰 회복이라는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일부 제도가 벤처·스타트업의 성장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본시장 개혁이 규제와 관리 중심으로 진행될 경우 혁신기업의 자금조달 기능과 벤처투자의 선순환 구조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현재 금융당국은 상장폐지 요건 강화와 코스닥 시장 체질 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정책 방향 자체보다 제도 설계 과정에서 혁신기업의 성장 단계와 산업 특성을 고려한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벤처기업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3개 단체가 15일 여의도에서 공동 정책제안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코스닥은 단순 증시가 아닌 벤처 성장 인프라
벤처업계가 이번 사안을 중요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코스닥이 단순한 주식시장을 넘어 벤처기업의 자금조달 창구이자 벤처투자의 핵심 회수시장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6년 4월 말 기준 코스닥 상장기업 1,603개사 가운데 벤처이력기업은 1,274개사로 전체의 79.5%를 차지한다. 시가총액 비중 역시 81.1%에 달한다. 최근 4년간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코스닥에 입성한 기업 127개사 가운데 114개사가 벤처기업으로 집계됐다.
업계는 이 같은 구조를 고려할 때 코스닥 개편이 상장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비창업자, 스타트업, 벤처투자자, 기술특례상장 준비기업 등 벤처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고 설명한다.
벤처투자 시장에서는 투자 이후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을 통한 회수가 다시 신규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중요하다. 벤처업계는 회수시장 기능이 약화될 경우 모험자본 공급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코스닥 세그먼트·상장폐지 강화에 우려
이날 업계가 제시한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는 코스닥 세그먼트 제도 재검토다. 현재 논의 중인 프리미엄·스탠다드 시장 구분 방식은 시장 내 서열화를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특정 시장에 편입된 기업이 사실상 비우량 기업으로 인식될 경우 투자자 관심 저하와 유동성 감소, 기업가치 하락, 후속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상장폐지 요건 강화 역시 주요 쟁점이다. 업계는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부실기업 정리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시가총액, 주가, 자본잠식 등 정량지표만으로 혁신기업의 미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AI, 바이오, 딥테크 기업의 경우 연구개발과 시장 개척 과정에서 장기간 적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미래 성장 가능성을 바탕으로 투자와 기업가치가 형성되는 특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벤처업계는 상장폐지 기준 강화가 예고될 경우 일부 기업들이 시장에서 ‘상장폐지 우려 기업’으로 낙인찍히면서 주가 하락과 자금조달 악화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복상장도 혁신기업은 별도 접근 필요
중복상장 규제에 대해서도 별도 예외 기준 마련을 요청했다. 벤처·스타트업계는 대기업의 물적분할 상장과 혁신기업의 성장 과정에서 이뤄지는 자회사 상장을 동일한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국가전략산업이나 혁신기술 분야 기업, 벤처캐피탈 투자기업 등에 대해서는 사업 독립성, 일반주주 보호장치, 지배주주 사익편취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별도 심사 체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딥테크와 바이오, AI 등 신산업 분야에서는 사업 부문별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회사 분리가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 중소벤처기업부, 벤처업계가 참여하는 상설 정책협의체 구성도 제안했다. 자본시장 제도 개편이 벤처기업의 투자유치와 상장 전략, 회수시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업계 의견을 정기적으로 수렴하고 정책 효과를 점검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5일 여의도에서 열린 공동 정책제안 기자간담회에서 벤처업계 대표들이 자본시장 개편 관련 5대 정책과제를 제안하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 송병준 벤처기업협회장, 김재원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 (사진 제공: 벤처기업협회)
새 정부 출범 앞두고 커지는 정책 조율 요구
벤처업계는 이번 논의가 단순한 증시 제도 개편을 넘어 혁신기업 성장 전략과 직결된 문제라고 보고 있다. 최근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이후 스타트업과 벤처 생태계에서는 혁신기업 친화적 정책 환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투자자 보호와 시장 신뢰 회복이라는 정책 목표에 공감하면서도, 혁신기업의 자금조달과 스케일업 기회를 함께 고려하는 균형 잡힌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송병준 벤처기업협회장은 “코스닥 활성화는 벤처생태계의 오랜 과제”라며 “자본시장 체질 개선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일부 제도는 벤처·스타트업의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은 “코스닥은 모험자본의 핵심 회수시장”이라며 “회수와 재투자의 선순환이 유지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원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은 “부실기업 정리와 혁신기업 성장 지원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혁신기업의 자금조달 통로가 위축되지 않도록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자본시장 개편의 성패는 시장 건전성과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면서도 혁신기업의 성장 자금 공급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데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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