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분기 국내 수출기업들이 바라보는 경기 전망은 숫자만 보면 밝다.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는 111.3으로 전분기보다 4.3포인트 상승했고, 2025년 4분기 이후 다섯 분기 연속 기준선인 100을 넘어섰다. 그러나 품목별 숫자를 펼쳐놓으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조사 대상 15개 품목 가운데 수출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 품목은 7개이고 나머지 8개는 기준선 아래에 머물렀다.
반도체와 선박, 무선통신기기·부품이 전체 수출 전망을 끌어올리는 동안 생활용품과 섬유·의복, 농수산물 등은 부진을 예상했다. 기업들이 체감하는 비용 여건까지 들여다보면 간극은 더 선명해진다. 수출상담과 계약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지만 채산성과 수출단가, 원부자재 조달과 국제물류는 오히려 악화를 예상하고 있다. 수출경기의 온기가 산업 전반으로 고르게 퍼지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2026년 4/4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조사(EBSI)’는 지난 9월 1일부터 11일까지 2025년 수출실적 50만달러 이상인 무역협회 회원사 2000곳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총 1011개사가 응답했다. EBSI는 다음 분기 수출경기에 대한 기업의 전망을 지수화한 것으로 100을 넘으면 전분기보다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100보다 낮으면 악화 전망이 많다는 의미다.
전체 지수는 지난해 4분기 101.4에서 올해 1분기 115.8로 뛰었다가 2분기 106.6, 3분기 107.0을 기록했다. 4분기 전망은 111.3으로 다시 상승했다. 무역협회는 반도체 등 IT 품목의 경기 상승 사이클과 선박의 고가 수주 확대가 수출 개선을 견인할 것으로 봤다.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는 2026년 4분기 111.3을 기록하며 2025년 4분기 이후 5분기 연속 기준선 100을 웃돌았다. EBSI가 100을 넘으면 전분기보다 수출경기가 개선될 것으로 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의미다. (자료 제공: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반도체 140.7 vs 생활용품 79.0…같은 수출기업도 체감경기는 달랐다
전체 수출 전망을 끌어올린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4분기 반도체 EBSI는 140.7로 조사 대상 15개 품목 가운데 가장 높았다. 지난해 4분기 145.8에서 올해 1분기 187.6, 2분기 191.4까지 올라갔다가 3분기 142.6으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빅테크 기업의 AI 투자 확대가 이어지면서 서버용 메모리 수요와 가격이 동시에 상승하고 있는 영향이다. 서버용 D램 수요는 올해 1분기 3747백만GB에서 4분기 4090백만GB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고 같은 기간 가격은 GB당 7.26달러에서 12달러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선박도 138.0으로 반도체의 뒤를 이었다. 고운임 기조와 LNG 프로젝트 확대에 따른 신규 발주, 기존 수주 선박의 인도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무선통신기기·부품은 134.3으로 프리미엄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 효과가 반영됐다. 의료·정밀·광학기기 114.4, 기계류 112.6까지 110을 넘으며 상대적으로 강한 개선 전망을 나타냈다.
2026년 4분기 수출 전망은 반도체(140.7), 선박(138.0), 무선통신기기·부품(134.3) 등에서 개선 기대가 높은 반면 생활용품(79.0), 섬유·의복제품(80.1), 농수산물(86.5) 등은 기준선 100을 밑돌았다. (자료 제공: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생활용품은 EBSI 79.0으로 15개 품목 가운데 가장 낮았으며 섬유·의복제품 80.1, 농수산물 86.5, 철강·비철금속제품 87.7도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자동차·자동차부품과 화학공업 역시 각각 93.9와 92.5로 조사돼 반도체·선박·무선통신기기·부품을 중심으로 높아진 전체 수출 전망과 품목별 체감경기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나타났다. 주요 시장의 소비 둔화와 중국·동남아산 제품과의 경쟁, 원재료 및 물류비 부담 등도 4분기 수출기업들이 안고 있는 변수로 꼽힌다.
특히 생활용품의 변화 폭이 눈에 띈다. 지난해 4분기 96.6이었던 지수가 올해 1분기 110.4까지 올랐다가 2분기 65.8로 급락했다. 3분기에는 96.7까지 회복했지만 4분기 전망은 다시 79.0으로 떨어졌다. 반면 반도체는 같은 기간 모든 분기에서 140을 웃돌았다. 전체 수출경기를 하나의 지수만으로 읽기 어려운 이유다.
주문은 들어오는데 비용이 문제…‘수출 증가=수익성 개선’은 아니었다
품목별 전망의 차이는 수출 수요와 비용 여건에서도 나타난다. 10개 세부 항목 가운데 수출상담·계약은 109.5, 설비가동률은 106.2로 비교적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자금사정 101.9와 수출대상국 경기 101.7도 기준선 100을 넘어섰다. 해외 수요와 수출 활동에 대한 기대는 이어지고 있지만 수출채산성은 98.6, 수출단가와 제조원가는 각각 98.0, 원부자재 수급·조달은 95.6, 국제물류는 91.6을 기록하면서 생산부터 운송까지 비용과 관련된 항목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전망이 나왔다.
이러한 차이는 3분기와 비교했을 때 더 크게 나타난다. 수출채산성이 105.6에서 98.6으로 낮아진 데 이어 수출단가도 107.3에서 98.0으로 움직였고, 원부자재 수급·조달은 111.4에서 95.6으로 15.8포인트 하락했으며 국제물류 역시 105.3에서 91.6으로 변화했다. 수출상담·계약은 109.5로 해외 주문과 거래에 대한 기대를 이어갔지만 원부자재 조달과 물류, 채산성에 대한 전망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수출 확대에 대한 기대와 실제 수익 여건 사이의 간격이 커졌다.
2026년 4분기 수출기업의 최대 애로요인은 원재료 가격 상승(20.4%)으로 조사됐다. 원화 환율 변동성 확대는 16.5%, 물류비용 상승은 15.2%로 나타났으며 환율 변동성에 대한 응답 비중은 전분기보다 2.6%포인트 높아졌다. 복수응답 기준. (자료 제공: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기업들이 꼽은 애로요인에서는 원재료 가격 상승이 20.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원화 환율 변동성 확대 16.5%, 물류비용 상승 15.2%가 뒤를 이었다. 특히 환율 변동성은 전분기보다 2.6%포인트 높아져 애로요인 가운데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원재료 가격 부담은 전분기보다 낮아졌지만 여전히 기업들이 가장 많이 꼽은 어려움이었다.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도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렸다. 월평균 환율은 2월 1449원에서 4월 1487원, 6월 1527원까지 상승했다가 8월 1406원으로 내려왔다. 여기에 중동 지역의 해상 운송 차질과 홍해를 둘러싼 위험이 이어지면서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는 7월 24일 3062에서 9월 18일 3688까지 상승했다.
산업에 따라 비용 충격의 크기도 다르다. 섬유·의복제품은 국제물류 지수가 66.6, 수출채산성이 68.8에 불과했고 원재료 가격 상승을 가장 큰 애로요인으로 꼽은 응답도 24.0%에 달했다. 생활용품은 수입규제·통상마찰이 56.8까지 내려갔다. 반면 AI 수요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는 반도체는 국제물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세부 항목에서 기준선을 넘어섰다.
결국 4분기 수출경기를 설명하는 숫자는 111.3 하나가 아니다. 반도체 140.7과 생활용품 79.0 사이의 간격, 수출상담·계약 109.5와 국제물류 91.6 사이의 차이가 동시에 존재한다. 수출기업들이 체감하는 시장 수요와 실제 비용 부담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업종별 경기 온도차도 한층 커지고 있다.
4분기에도 반도체와 선박, 무선통신기기·부품을 중심으로 수출 개선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그 온기가 다른 산업으로 얼마나 확산될지는 원재료 가격과 환율, 물류비에 달려 있다. 수출액이 늘어나는 것과 기업이 수출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4분기 수출경기의 두 얼굴도 그 차이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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