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닉스 로고>
혈관에 삽입하는 카테터나 가이드와이어는 표면의 작은 차이도 중요하다. 가늘고 긴 의료기구가 혈관 벽이나 체내 조직과 마찰하면 손상이나 염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 제조사들은 물에 닿으면 미끄러워지는 친수성 코팅을 적용한다.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성능을 확보하려면 코팅막이 표면 전체에 균일하게 형성돼야 하고, 사용 중에도 쉽게 벗겨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의료기기의 형태와 소재가 달라지면 코팅 방법도 달라진다. 스텐트처럼 작고 복잡한 구조에는 약물과 고분자를 미세하게 분사해야 하고, 길이가 긴 카테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두께로 코팅막을 입혀야 한다. 장비와 코팅액을 서로 다른 업체에서 공급받는 경우에는 각각의 특성을 조율하고 제조 조건을 맞추는 일까지 의료기기 제조사의 몫이 된다.
노아닉스는 이처럼 의료기기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표면처리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다. 초음파 분무장치와 정밀 코팅 설비, 기능성 코팅액을 자체 개발하고, 의료기기의 특성에 맞는 제조공정까지 설계한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에 따라 장비와 소재를 함께 조정하는 것이 사업의 특징이다.
최형준 대표가 2007년 창업한 노아닉스는 처음부터 의료기기 분야를 전문으로 했던 회사는 아니다. 정해진 양의 액체를 정확하게 공급하는 정량펌프와 자동분주기를 만들던 기업이 초음파 분무 기술과 의료용 코팅액을 개발하며 사업의 중심을 옮겼다. 현재는 다른 제조사에 필요한 장비와 소재를 공급하는 데서 나아가 자체 브랜드 의료기기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정량펌프에서 의료용 코팅까지, 유체 제어 기술의 발전
노아닉스의 출발점은 유체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었다. 2007년 노아케이블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한 뒤 2009년 법인으로 전환했고, 2010년에는 중국 이차전지 업체에 펌프를 납품했다. 초기 주력 제품인 정량펌프와 자동분주기는 정해진 양의 액체를 일정하게 공급하는 장비로, 소량의 유체를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기술은 의료기기 코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카테터나 스텐트 표면에 기능성 소재를 입히려면 코팅액의 공급량과 분사 상태를 정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소재라도 필요한 위치에 균일하게 도포하지 못하면 원하는 품질을 확보하기 어렵다. 유체를 정확하게 보내는 기술이 얇은 코팅막을 형성하는 제조공정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다.
노아닉스는 2013년 히알루론산(HA)을 활용한 친수성 코팅액을 개발하면서 기능성 소재 분야에 진출했다. 이듬해에는 초음파 분무 시스템을 출시하고 연구개발센터를 오송으로 이전했으며, 2015년 의료기기 품질경영시스템 국제표준인 ISO 13485 인증을 획득했다. 정량분주 장비에서 축적한 기술에 초음파 분무와 소재 개발 역량을 더하면서 의료기기 제조공정에 필요한 기술을 갖춰 나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 대표가 구축한 사업의 특징은 맞춤형 제작이다. 의료기기는 형태와 용도, 생산량에 따라 필요한 코팅 조건이 달라 표준화된 장비만으로 모든 고객의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 노아닉스는 코팅할 제품을 먼저 확인한 뒤 액체 공급 방식과 분무장치, 제어 프로그램 등을 조합하는 방법을 택했다.
최 대표는 2022년 IBK기업은행 중소기업 CEO 리포트에서 “노아닉스 제품은 기본적으로 주문 제작”이라고 설명했다. 장비의 외형과 프로그램, 유체 공급장치, 노즐 등을 고객 사양에 맞춰 설계한다는 것이다. 한 번 개발한 제품을 반복해서 판매하는 방식보다는 고객의 제조공정에 필요한 장비를 직접 구성하는 일이 사업의 중심이 됐다.
장비와 소재를 함께 설계하며 쌓아 온 코팅 기술
의료기기 제조사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코팅 장비의 성능만이 아니다. 제품의 표면에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고, 이를 일정한 품질로 반복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노아닉스는 이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장비 개발과 코팅액 공급을 하나의 사업으로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기술은 초음파 스프레이와 딥코팅이다. 스텐트나 약물용출풍선처럼 작은 부품에는 초음파 진동으로 액체를 미세하게 분사하는 장비를 사용한다. 반면 카테터와 가이드와이어처럼 길이가 긴 의료기구는 코팅액에 담갔다 끌어올리는 방식을 적용한다. 튜브 내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을 처리하기 위한 전용 장치도 개발했다.
긴 의료기구를 코팅할 때는 작업시간과 코팅액 사용량, 표면의 균일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노아닉스가 개발해 미국에서 등록받은 딥코팅 장치 특허는 여러 개의 카테터나 가이드와이어를 동시에 처리하고 코팅액 소모량을 줄이도록 설계한 기술이다. 정밀한 코팅을 유지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려는 제조현장의 요구가 반영됐다.
코팅액 분야에서는 히알루론산 기반의 친수성 소재가 대표적이다. 히알루론산은 수분과 친화력이 높은 천연 고분자로, 의료기기 표면의 마찰을 줄이는 데 활용된다. 회사는 코팅막의 부착력을 높이는 베이스 코팅과 윤활성을 부여하는 탑 코팅을 조합하고, 대상물의 소재와 사용 조건에 따라 경화 방식을 달리한다. 이렇게 확보한 기술은 카테터뿐 아니라 백내장 수술에 사용하는 인공수정체(IOL) 삽입용 카트리지 등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
장비와 코팅액을 함께 공급하는 방식은 고객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의료기기 제조사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부터 코팅 조건을 함께 검토하고, 생산이 시작된 이후에는 필요한 소재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장비의 개선이나 후속 제품 개발에도 참여할 수 있어 개별 납품을 넘어 제조공정을 함께 설계하는 사업모델이 형성됐다.
이처럼 축적한 기술은 혈액과 직접 접촉하는 의료기기로도 이어졌다. 노아닉스는 전남대학교병원 정인석 박사팀과 함께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에 사용되는 인공도관과 카테터용 기능성 코팅액을 개발했다. ECMO는 환자의 혈액을 체외로 순환시켜 산소를 공급하는 장치로, 혈액이 접촉하는 부품의 표면 특성이 중요하다. 연구진은 히알루론산을 활용해 혈액 적합성과 내구성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사업화해 2025년 약 15억 원의 신제품 매출을 달성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2026년 2월 발표한 성과다.
정량펌프에서 출발한 기술이 의료용 코팅 장비와 소재를 거쳐 실제 의료기기 부품에 적용되고, 매출로 이어진 사례다. 다만 기능성 코팅액의 사업화와 해당 코팅을 적용한 완제품 의료기기의 인허가·판매는 구분되는 단계다.
작은 회사의 미국 시장 도전, 자체 의료기기 제조를 향한 선택
최형준 대표는 국내에서 기술을 개발하는 동안 해외 고객을 만나는 일에도 꾸준히 시간을 들였다. 미국 의료기기 제조 분야의 대표 전시회인 MD&M 웨스트에는 10년 넘게 참가했다. 처음에는 참관객으로 전시장을 찾았지만, 이후 직접 부스를 마련해 노아닉스의 장비와 소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의 규모와 자금 여력이 충분했던 것은 아니다. 최 대표는 2025년 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 인터뷰에서 처음 전시 참가를 결정하던 때를 회상하며 “회사 규모도 작고 자본도 넉넉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서 참가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전시회를 살펴본 뒤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시장이라고 판단했고, 비용 부담에도 직접 참가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고 곧바로 수출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미국 의료기기 시장은 새로운 공급업체에 대한 검토가 까다롭고, 제품을 채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최 대표도 오랜 전시 참가에 비해 단기적인 매출 증가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대신 현지 기업들이 노아닉스의 이름을 기억하고, 코팅 기술을 검토하거나 공동연구를 제안하는 관계가 쌓이기 시작했다.
기억에 남는 경험도 있다. 대부분의 해외 고객이 여러 단계의 테스트를 거친 뒤 발주를 결정하는 것과 달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업체는 노아닉스에 바로 주문을 넣었다.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들과 공동 연구개발을 논의할 기회도 생겼고, 현지 산업용 코팅기업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은 적도 있었다. 최 대표가 꾸준한 전시 참가의 성과를 단순한 현장 계약액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이유다.
그는 KOTRA 인터뷰에서 “당장 지갑을 열지 않더라도 노아닉스를 인식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전시회에 반복해서 참여하며 고객의 신뢰를 쌓는 것을 장기적인 해외시장 전략으로 삼았다는 설명이다. 미국에서 코팅 수요에 직접 대응할 수 있는 시설과 현지 영업 인력을 확보하는 방안도 향후 시장 확대를 위한 과제로 제시했다.
해외시장 개척과 함께 최 대표가 추진하는 또 다른 변화는 자체 브랜드 의료기기 제조다. 지금까지 다른 제조사에 코팅 장비와 소재를 공급해 왔다면, 앞으로는 축적한 기술을 직접 완제품에 적용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의료기기용 코팅을 개발하는 기업에서 제품 전체의 제조와 품질까지 책임지는 기업으로 역할을 넓히려는 것이다.
최 대표는 2025년 뉴데일리 인터뷰에서 “이제는 자체 브랜드의 의료기기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제조업체로서의 길을 걸어가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과정에서 설계와 제조시설 투자, 인허가에 상당한 자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실제로 완제품 제조는 기존 사업과 요구되는 조건이 다르다. 코팅 장비와 소재를 공급할 때와 달리 제품 전체의 안전성과 성능을 검증해야 하고, 의료기기 품목별 인허가와 제조 품질관리도 갖춰야 한다. 기술 개발만으로 사업을 완성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투자와 운영 역량이 필요한 단계다.
노아닉스는 이를 위해 2026년 9월 오송에서 신사옥으로 본사를 이전하고 생산시설을 확장했다. 의료기기 제조를 위한 GMP 클린룸도 구축했다. 회사가 2023년 개발한 ECMO용 항혈전 코팅과 심폐용 혈액도관에 이어 자체 의료기기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향후 완제품의 상용화는 개별 품목에 필요한 허가와 검증 절차를 거쳐 진행해야 한다.
2007년 중국 이차전지 업체에 펌프를 공급하던 노아닉스는 이제 혈액과 접촉하는 의료기기의 표면을 설계하고, 자체 브랜드 제품을 제조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정량펌프에서 코팅 장비로, 기능성 소재에서 완제품 개발로 이어진 변화에는 액체를 정밀하게 제어하고 이를 일정한 품질로 구현하는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해외시장에서 여러 해에 걸쳐 고객의 신뢰를 쌓아 온 최형준 대표는 이제 그 경험을 자체 의료기기의 생산과 판매로 연결하려 한다. 다른 제조사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던 회사가 직접 제품을 만드는 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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