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누구에게, 어떤 맥락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팔 것인지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때 K뷰티 산업의 경쟁력은 제품 자체에 있었다. 더 좋은 성분, 더 세련된 패키지, 더 많은 광고비가 성공의 공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시장이 성숙하고 소비자들의 정보력이 높아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 소비자는 광고보다 추천을 믿고, 브랜드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
디밀(Dmil) 이헌주 대표는 이러한 변화가 K뷰티 산업의 판을 바꾸고 있다고 진단한다. 2019년 설립 이후 6년 만에 1,400% 이상의 매출 성장을 기록한 디밀은 더 이상 스스로를 뷰티 MCN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크리에이터와 브랜드, 콘텐츠와 커머스를 연결하는 ‘크리에이터 IP 솔루션 기업’을 새로운 정체성으로 내세우고 있다.
디밀은 국내 대표 뷰티 크리에이터 그룹으로, 콘텐츠·커머스·브랜드 전략을 통합한 크리에이터 IP 솔루션 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팔로워 수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의 방향성
이헌주 대표는 크리에이터 마케팅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부터 짚었다. 많은 브랜드가 여전히 “팔로워가 많은 크리에이터에게 맡기면 매출이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시장은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
“노출과 구매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팔로워 수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판매 전환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디밀이 수년간 수백 개 브랜드 캠페인을 운영하며 확인한 사실도 여기에 있다. 브랜드 카테고리와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성격, 구독자와의 관계성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조회수가 발생해도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디밀이 직접 운영하는 커머스 플랫폼 ‘밀리언즈 셀렉트샵(Millions Select Shop)’에 있다. 현재 약 30만 명의 회원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떤 크리에이터가 어떤 제품을 소개했을 때 실제 구매가 일어나는지 분석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디밀은 크리에이터를 단순히 영향력 크기로 구분하지 않는다. 브랜드 인지도 형성에 강한 ‘아이코닉 크리에이터(Iconic Creator)’와 구매 전환에 강한 ‘보이스 크리에이터(Voice Creator)’로 나눠 접근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유명한가가 아니라 지금 브랜드에 어떤 역할이 필요한가다. 브랜드 초기 인지도 확보 단계인지, 실제 매출 확대가 필요한 시기인지, 아니면 리브랜딩이 필요한 상황인지에 따라 최적의 크리에이터 조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헌주 디밀 대표
“MCN이 아니라 브랜드 성장 설계자가 되고 있다”
이러한 시장 변화는 디밀의 사업 모델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크리에이터가 제품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마케팅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브랜드들은 단순 노출을 원하지 않는다. 실제 구매 전환과 고객 확보, 나아가 장기적인 브랜드 자산 형성까지 기대한다. 크리에이터들 역시 광고 모델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영향력을 커머스와 브랜드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디밀이 최근 공개한 ‘C-Link 2.0’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C-Link 2.0은 브랜드 성장 단계에 맞춰 적합한 크리에이터를 연결하고, 콘텐츠와 커머스, 브랜드 전략을 하나의 흐름으로 설계하는 솔루션이다. 시장 진입 초기 브랜드부터 카테고리 선두권 진입을 노리는 브랜드, 리포지셔닝이 필요한 브랜드까지 각각 다른 전략을 적용한다.
이 대표는 “결국 브랜드가 성장하는 과정 전체를 함께 설계하는 역할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현재 K뷰티 산업이 제품 경쟁에서 유통과 신뢰 경쟁으로 이동했다고 진단한다. 과거에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어떤 경로를 통해 소비자에게 도달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광고와 진짜 추천을 굉장히 정확하게 구분합니다. 무엇을 파느냐보다 누가 추천하느냐가 훨씬 중요해졌죠.”
이러한 변화는 크리에이터를 광고 채널이 아닌 하나의 IP 자산으로 바라보게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2020년 현대홈쇼핑과 아모레퍼시픽이 디밀에 150억 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을 당시에도 투자자들이 주목한 것은 단순 매출 규모보다 크리에이터와 브랜드가 연결되는 생태계 구조였다. 이 대표는 전통 뷰티 기업과 크리에이터 기업을 경쟁 관계로 보는 시각에도 선을 그었다.
“대기업은 브랜드 헤리티지와 제조 역량, 글로벌 유통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크리에이터 네트워크와 콘텐츠, 커머스를 연결하는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서로 경쟁하기보다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이 훨씬 많습니다.”
이헌주 디밀 대표가 크리에이터 IP 비즈니스와 글로벌 K뷰티 시장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좋은 제품이 아니라 좋은 신뢰 경로가 살아남는다”
이러한 시각은 디밀의 글로벌 전략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최근 디밀이 미국 크리에이터 네트워크 확대와 비드콘(VidCon) 파트너십에 공을 들이는 이유 역시 단순히 해외 진출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헌주 대표는 K뷰티의 글로벌 경쟁력이 더 이상 제품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올해 6월 미국 LA 애너하임에서 열리는 비드콘 2026에서 디밀은 K뷰티 전용관 ‘밀리언즈 서울(Millions Seoul)’을 운영한다. 비드콘 역사상 최초의 K뷰티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전시 행사처럼 보이지만, 디밀에게 이는 미국을 시작으로 주요 5개 국가로 확장할 글로벌 플랫폼 전략의 첫 번째 실험이자 검증 무대에 가깝다. 그 배경에는 소비자 행동의 변화가 있다.
한국에서는 올리브영 입점이 하나의 신뢰 인증 역할을 하지만, 미국 소비자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브랜드를 발견한다. 브랜드를 먼저 검색하기보다 크리에이터 콘텐츠를 통해 제품을 접하고, 제품보다 추천인을 먼저 신뢰하는 경우가 많다. 이 대표는 국내 브랜드들이 해외 진출 과정에서 가장 자주 범하는 실수로 “국내에서 통했던 방식이 해외에서도 그대로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꼽았다.
틱톡에서 일시적인 판매 성과를 냈다고 해서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짜 브랜드는 반복적인 구매와 신뢰, 그리고 소비자 기억 속에 남는 서사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의 경쟁이 단순한 마케팅 경쟁이 아니라 ‘신뢰 네트워크 경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장기적으로는 팬덤보다 신뢰 자본이 중요합니다.”
크리에이터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 살아남는 크리에이터는 단순히 팔로워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과 일관성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설명이다. 단기 수익을 위해 채널의 정체성을 희생하는 순간, 가장 중요한 자산인 신뢰도 함께 잃게 된다.
결국 디밀이 만드는 것은 광고가 아니다.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에 신뢰가 쌓이는 경로를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어떤 크리에이터가 어떤 브랜드를 어떤 이야기로 소개해야 소비자의 공감과 구매로 이어지는지, 그 연결 구조를 만드는 것이 디밀의 역할이다.
좋은 제품은 이미 시장에 넘쳐난다. 정보도 차고 넘친다. 소비자는 더 이상 “무엇을 살 것인가”보다 “누가 추천했는가”를 먼저 확인한다. 그래서 K뷰티의 다음 경쟁력은 제품 자체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비자에게 신뢰가 전달되는 방식, 그리고 그 신뢰가 반복적으로 축적되는 구조를 만드는 능력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디밀이 MCN이라는 이름을 넘어 크리에이터 IP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오래 살아남는 브랜드는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든 기업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신뢰 경로를 확보한 기업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디밀은 지금 그 신뢰의 길목을 설계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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