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정해진 경로를 따라 스스로 달리는 것에서 주변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해 움직이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생성형 AI에서 시작된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이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행동하는 피지컬 AI로 옮겨가면서 자율주행 산업의 기술 경쟁도 달라지고 있다. 센서와 정밀지도, 개별 알고리즘의 성능을 높이는 데 집중했던 자율주행 기술은 이제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학습하고 차량 스스로 상황을 해석해 판단하는 AI 모델로 무게중심이 이동 중이다.
2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2026 자율주행모빌리티산업전(AME 2026)’은 이러한 변화를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전시장에는 피지컬 AI와 E2E(End-to-End) 자율주행, VLA(Vision-Language-Action)를 비롯해 로보택시와 로보셔틀, 자율주행 화물트럭, 물류로봇, 라이다·레이더, 디지털트윈까지 자율주행을 구성하는 기술과 서비스가 등장했다. 올해 행사에는 40개 기업이 참여했으며 27일까지 코엑스 B홀에서 열린다.
올해 전시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자율주행을 하나의 ‘차량 기술’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AI 모델과 센서, 반도체, SDV가 차량의 판단을 만들고, 시뮬레이션과 인증 기술이 이를 검증한다. 여기서 만들어진 기술은 다시 로보택시와 무인물류 같은 서비스로 이어진다. 행사 역시 자율주행 산업을 개발과 신뢰, 사업화라는 세 영역으로 나눠 AI 모델 개발부터 실증·양산·서비스·수출까지 하나의 산업 구조로 다뤘다.
25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자율주행모빌리티산업전(AME) 참관 모습
자율주행의 중심으로 들어온 AI…‘인지·판단·제어’ 경계 허문다
전시장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피지컬 AI’다. 기존 자율주행은 카메라와 라이다 등 센서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각각의 알고리즘이 판단과 제어를 수행하는 구조를 발전시켜 왔다. 최근에는 센서에서 입력된 데이터를 하나의 AI 모델이 학습해 차량의 움직임까지 결정하는 E2E 자율주행과 이미지·언어·행동을 연결하는 VLA 등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현장에서도 이 같은 변화가 여러 기업의 기술을 통해 드러났다.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피지컬 AI와 E2E 기반 자율주행 기술을 비롯해 차량 개발·제작부터 실증과 서비스 운영까지 연결한 상용화 모델을 소개했다. 국내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과 UAE, 싱가포르 등에서 추진 중인 로보택시·로보셔틀 서비스와 레벨4 자율주행 셔틀 ‘로이(ROii)’도 전시했다.
라이드플럭스는 무인 자율주행 차량과 물류 거점을 잇는 미들마일 자율주행 화물트럭 등 실제 서비스에 적용하고 있는 자율주행 AI 소프트웨어를 내놨다. SWM은 서울 강남에서 상용 운행 중인 도심형 로보택시와 VLA 기반 기술을 소개했으며, 쏘카와 에이펙스모빌리티는 E2E 자율주행 AI 학습 데이터셋과 멀티모달 주행 데이터, 데이터 수집 차량 플랫폼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
AI가 두뇌라면 현실 세계를 읽어내는 센서와 공간 데이터도 중요해졌다. 에스오에스랩은 자율주행과 피지컬 AI에 활용되는 2D·3D 라이다를, 알브이에스랩은 레이더 신호처리 알고리즘을 선보였다. 웨이즈원은 정밀도로지도와 자율주행 인프라, 디지털트윈 기술을 소개했다.
자율주행 기술의 적용 범위도 승용차 밖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에이알247은 자율주행 물류로봇과 무인지게차 등 스마트 물류 기술을 전시장에 가져왔다. 옐로나이프는 디지털트윈과 SDV 기술을, 모빌테크는 공간지능과 디지털트윈·시뮬레이션을 각각 선보였다.
잘 달리는 AI 다음은 ‘믿을 수 있는 AI’
자율주행 AI의 성능이 높아질수록 산업계가 풀어야 할 문제도 복잡해진다. 차량이 스스로 판단하는 영역이 커지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AI의 판단을 어떤 기준으로 검증할 것인지, 해킹과 데이터 보안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상용화의 조건으로 따라온다.
올해 AME가 3일간의 컨퍼런스를 ‘신뢰와 규제’, ‘기술 혁명’, ‘자율주행 트렌드’로 구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첫날에는 산업통상부와 국토교통부가 자율주행 산업 육성과 정책 방향을 다루고 AI 보안, 법·제도, 입법, AI 신뢰성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기술 변화의 중심에는 AI가 자리한다. 마르코 파보네 스탠퍼드대학교 교수 겸 엔비디아 AI 부문 시니어 디렉터는 첫날 ‘Physical AI를 위한 추론 모델’을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선다. 26일에는 이경민 현대자동차 자율주행개발센터 상무가 ‘Data Flywheel을 통한 자율주행 모델의 지속 개선’을, 27일에는 김진규 카카오모빌리티 부사장이 ‘모빌리티 플랫폼이 여는 자율주행 서비스의 미래’를 다룬다.
‘데이터 플라이휠’이라는 주제 역시 현재 자율주행 경쟁의 변화를 보여준다. 차량이 주행하면서 데이터를 만들고, 이를 다시 AI가 학습해 모델을 개선하며, 개선된 모델이 새로운 주행 데이터를 만드는 반복 구조다. 결국 얼마나 많은 실제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빠르게 학습과 검증으로 연결하느냐가 자율주행 AI의 성능을 좌우하게 된다.
자율주행모빌리티산업전(AME)에서 열린 2026 자율주행 산업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하는 마르코 파보네 스탠퍼드대학교 교수 겸 엔비디아 AI 부문 시니어 디렉터
연구개발 넘어 로보택시·물류로…자율주행의 다음 경쟁은 ‘사업화’
올해 전시에서 또 하나 달라진 지점은 자율주행 기술을 ‘언젠가 구현될 미래’보다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는 점이다. 로보택시와 로보셔틀, 자율주행 화물차, 무인지게차 등이 함께 등장한 것도 자율주행의 적용 범위가 실증을 넘어 구체적인 서비스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행사 구성도 이러한 산업 변화를 반영했다. 해외 바이어 초청 수출상담회에는 중국·스위스·호주 등 10개국 해외 바이어 20개사가 참여해 국내 기업과 1대1 상담을 진행한다. ‘퓨처 모빌리티 IR 피칭데이’를 통해 기술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하고, 기업·전문가 간 협업을 위한 네트워킹 프로그램과 대학생 대상 자율주행 해커톤도 함께 운영한다.
자율주행 산업의 경쟁 기준도 그만큼 복잡해지고 있다. 좋은 센서를 만들거나 주행 알고리즘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 모델과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실제 차량에서 검증한 뒤 안전성과 신뢰성을 입증해야 한다. 다시 이를 양산과 서비스, 해외시장까지 연결해야 하나의 사업이 된다.
이번 행사는 ‘2026 퓨처 모빌리티 위크’의 하나로 EV TREND KOREA 2026, 2026 무인이동체 X 민군협력 엑스포와 동시에 열린다. 전동화 차량과 충전·배터리를 다루는 A홀에서 자율주행과 피지컬 AI의 B홀, 무인이동체와 국방 AI까지 하나의 전시장으로 연결한 구성이다. 퓨처 모빌리티 위크가 전동화·지능화·무인화를 각각 차량·AI·드론의 영역으로 구성한 것도 현재 모빌리티 산업이 이동하고 있는 방향을 압축한다.
결국 자율주행의 질문은 ‘차가 스스로 달릴 수 있는가’에서 한 단계 넘어가고 있다. 차량이 현실 세계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가, 그 판단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기술을 실제 서비스와 비즈니스로 만들 수 있는가. 피지컬 AI가 자율주행의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이제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해결하는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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