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공지능(AI) 경쟁이 초거대 언어모델 개발에서 반도체와 컴퓨팅 인프라, 로봇, 제조업 등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최첨단 범용 AI 모델 개발을 주도하는 가운데 한국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AI 반도체, 산업용 로봇, 의료·신약 등 기존 산업 경쟁력을 활용한 AI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연구개발 성과뿐 아니라 실제 제품 출시와 양산, 글로벌 계약, 투자유치 등 사업화 지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가 한국 AI 산업의 주요 변화를 이끌고 있는 연구자와 기업인 30명을 선정하고, 이들의 성과를 중심으로 국내 AI 산업의 경쟁력을 분석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는 한국 AI 산업의 주요 변화를 이끌고 있는 인물 30명을 선정한 연간 리스트 ‘THE AI 30: 한국 AI의 미래를 바꾸는 30인’을 지난 19일 공개했다. 이번 리스트는 AI 분야에서 인지도가 높은 인물을 순위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 AI 산업에서 실제로 나타난 기술적·산업적 변화를 기준으로 해당 변화를 이끈 인물을 선정한 것이 특징이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는 한국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어떤 분야의 역량을 확보하고 있는지, 연구 성과가 산업 현장과 사업화로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이번 기획을 마련했다. 선정 과정에서는 2025년 9월부터 2026년 10월까지 발표된 연구 성과와 기술 개발, 제품 출시, 기업 공시, 투자유치 및 사업화 실적 등을 주요 평가 자료로 활용했다. 편집국은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약 70명의 후보를 발굴한 뒤 기술적 성취와 산업적 영향력, 해당 변화에 대한 개인의 기여도를 중심으로 검토했다.
기업 규모나 인물의 대외적 인지도보다는 구체적인 연구·사업 성과를 우선적으로 평가했으며, 외부 전문가 검토를 거쳐 최종 30인을 확정했다. 선정 방식에도 일정한 원칙을 적용했다. 먼저 한국 AI 산업에서 나타난 주요 변화를 정의하고, 해당 변화와 직접 연결되는 성과를 만든 인물을 찾는 방식이다. 같은 기업에서 여러 인물이 중복 선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업당 한 명을 원칙으로 삼았고, 충분한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분야는 선정 인원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포함하지 않았으며, 후보자의 직함과 연구·사업 성과도 공식 발표와 공개 자료를 중심으로 반복 검증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는 최종 선정된 30인의 활동을 한국 AI 산업에서 나타나는 10가지 주요 변화로 분류했다. 주요 변화는 국내 AI 핵심 기술 확보, 업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 확산, 피지컬 AI의 양산 전환, AI 추론 비용 경쟁, AI for Science의 실제 연구·사업 적용 등이다. 여기에 AI 기업의 자본시장 진입, HBM 중심의 AI 공급망, 산업 특화 버티컬 AI, AI 신뢰와 검증, 글로벌 AI 인재 이동을 더해 총 10개 분야로 정리했다. 이는 한국 AI 산업의 경쟁력이 특정 모델이나 기술에 집중되기보다 반도체와 인프라, 로봇, 과학 연구, 산업별 응용 기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을 반영한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가 한국 AI 산업의 주요 변화를 이끈 인물 30명을 선정한 연간 리스트 ‘THE AI 30: 한국 AI의 미래를 바꾸는 30인’을 발표했다. (사진 제공: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
LG AI연구원·리벨리온·갤럭스 등 선정…기술 개발에서 양산·글로벌 사업화로
이번 리스트에는 국내 주요 AI 연구기관과 반도체·로봇·제조 기업, AI 스타트업을 이끄는 인물들이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이홍락 LG AI연구원 공동원장과 성낙호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AI 기술총괄이 선정됐다. 두 인물은 국내 AI 모델 개발과 핵심 기술 확보 분야의 주요 인물로 이름을 올렸다. LG AI연구원은 지난 7월 7,500억 개 매개변수 규모의 AI 모델 ‘K-엑사원 2.0’을 공개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는 이러한 자체 모델 개발 성과를 국내 AI 핵심 기술 확보와 관련한 주요 사례로 제시했다.
AI 반도체 분야에서는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가 선정됐다. 리벨리온은 AI 추론에 특화한 반도체를 개발하는 기업으로, AI 모델을 실제 서비스에 적용할 때 필요한 연산 성능과 비용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보고서는 AI 기술의 경쟁이 모델 개발 성능뿐 아니라 실제 서비스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론 비용과 컴퓨팅 효율성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반도체 공급망 분야에서는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와 송재혁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포함됐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AI 데이터센터와 고성능 AI 연산에 활용되는 HBM 시장의 주요 공급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2월 HBM4 상용 제품을 업계 최초로 양산·출하한 데 이어 5월에는 HBM4E 12단 샘플을 세계 최초로 글로벌 고객사에 공급했다고 발표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는 이러한 반도체 개발과 공급 성과가 한국 AI 산업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주요 사례라고 평가했다.
로봇과 피지컬 AI 분야에서는 송기영 홀리데이로보틱스 대표가 선정됐다. 홀리데이로보틱스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는 기업으로, 최근 1,5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고 휴머노이드 100대 생산 계획을 발표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는 피지컬 AI 분야에서 연구개발을 넘어 실제 제품 생산과 산업 현장 적용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주목했다.
자동차 및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박민우 현대자동차·기아 AVP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가 이름을 올렸다. AI 기술이 자동차와 모빌리티 산업의 소프트웨어 및 운영 체계에 적용되는 흐름도 한국 AI 산업의 주요 변화 중 하나로 다뤄졌다.
AI를 과학 연구에 적용하는 ‘AI for Science’ 분야에서는 석차옥 갤럭스 공동대표가 선정됐다. 갤럭스는 AI 기반 신약개발 기업으로, 2026년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AI 기반 항체 개발 협업을 진행하며 공동연구를 확대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는 AI 기술이 과학 연구와 신약개발 과정에 적용되면서 기존 연구 방식과 사업화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AI 신뢰와 검증 분야에서는 오혜연 KAIST 교수가 선정됐다. AI 기술의 성능 향상과 산업 적용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신뢰성과 검증 체계 역시 중요한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번에 공개된 주요 선정 인물들은 대기업과 연구기관, 스타트업에 걸쳐 있다. AI 모델 개발과 반도체 공급망, 휴머노이드 로봇, 신약개발 등 각기 다른 산업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반영한 구성이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는 한국 AI 산업의 강점이 하나의 초거대 AI 모델에 집중돼 있기보다 기존 산업 경쟁력과 AI 기술을 결합할 수 있는 기반에 있다고 진단했다.
반도체와 제조업, 로봇, 의료·신약 등에서 확보한 기술과 산업 경험이 AI 기술의 실제 적용과 사업화에 활용될 수 있다고 분석한 반면 범용 AI 모델과 대규모 소비자 플랫폼 분야에서는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선도 기업과의 격차가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한국 AI 산업의 경쟁력은 기술 개발 성과를 실제 제품 양산과 매출, 수출, 글로벌 기업과의 계약 등으로 얼마나 연결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 성과와 투자유치 규모만으로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판단하기보다 실제 시장에서 기술이 활용되고 지속적인 사업 성과를 창출하는지가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는 ‘THE AI 30’을 매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향후 새로운 연구 성과와 기술 개발, 산업 변화 등을 반영해 선정 인물과 주요 변화 항목을 다시 검토하고, 한국 AI 산업의 발전 과정을 지속적으로 기록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개별 기업과 연구기관에 흩어진 연구개발 및 사업화 성과를 장기적으로 축적하고, 국내 AI 산업의 변화와 핵심 인재의 흐름을 보여주는 연간 기록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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