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PR 경쟁력은 누가 AI를 잘 쓰느냐보다, 누가 자기 조직의 데이터를 AI가 읽을 수 있게 만들었느냐에서 갈릴 것이다.”
5월 19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한국PR협회가 주최한 특별 세미나 ‘PR 전문가들의 AI 활용’이 열렸다. 학계와 실무를 넘나드는 업계 전문가들이 연단에 올랐다. 새로운 AI 툴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생성형 AI 시대에 기업 정보를 어떻게 구조화하고, PR의 역할을 어떻게 재정의해야 하는지를 놓고 날 선 논의가 이어졌다.
한국PR협회가 주최한 특별 세미나 ‘PR 전문가들의 AI 활용’ 현장
검색창이 아니라 AI에게 묻는다
“중년 남성에게 좋은 피로회복제를 추천해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네이버 검색창에 단어 몇 개를 던졌다. 이제는 ChatGPT나 Perplexity 같은 생성형 AI에게 질문 자체를 맡긴다. AI는 수천 개의 기사와 보도자료, 블로그를 읽은 뒤 스스로 답을 골라 정리해 보여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AI가 어떤 브랜드를 추천하고, 어떤 회사를 설명하고, 어떤 기사를 인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노출과 신뢰도가 갈린다. 홍문기 한세대학교 교수는 PR 전문가들의 AI 활용 실태를 짚으며 “생성형 AI 환경에서 PR 실무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현장부터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많이 호출된 개념은 ‘GEO(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다. 검색엔진최적화(SEO)를 넘어, 생성형 AI가 답변을 구성할 때 어떤 브랜드와 콘텐츠를 반복 인용하는지를 관리하는 개념이다. SEO가 특정 키워드를 검색 상단에 올리는 싸움이었다면, GEO는 일관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쌓아 AI가 자연스럽게 그 브랜드를 불러오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전장이 바뀌었다.
문경호 플랜얼라이언스 대표가 한국PR협회 특별 세미나에서 ‘PR의 AX(AI 전환)’를 주제로 생성형 AI 시대 데이터 구조화 전략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나만의 AI를 키운다”…PR의 AX 전환
문경호 플랜얼라이언스 대표는 이 흐름을 ‘PR의 AX(AI 전환)’로 정의했다. 핵심은 외부 AI 서비스를 갖다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 고유의 데이터를 AI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내 PC나 회사 서버에 직접 쌓는 것이다.
그가 현장에서 쓰는 방식은 구체적이다. 보도자료와 회의록, 기자 미팅 기록, 고객사 자료를 Markdown(MD) 파일로 변환해 저장하면, AI가 폴더 간 연관성을 스스로 연결하고 학습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무료 지식관리 툴인 ‘옵시디언(Obsidian)’이 그 허브 역할을 한다. 그는 “AI는 원래부터 마크다운 파일을 읽도록 설계돼 있다”며 “한글 파일이나 워드 문서도 MD로 변환하면 AI가 훨씬 정확하게 읽는다”고 설명했다. 사람은 잘 꾸며진 PDF를 선호하지만, AI는 구조화된 텍스트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얘기다.
그는 “텔레그램을 통해 외부에서 회사 서버에 접속하고, 기자 미팅 내용을 현장에서 바로 저장하는 방식도 실무에 도입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조직이 보유한 데이터를 AI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구조화하는 것 자체가 앞으로의 PR 경쟁력을 가를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관형 인터메이저 실장은 AI 검색 시대 PR의 가치 상승 전략을 다루며 “브랜드가 어떤 질문 상황에서 호출되는지를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사용자가 AI에게 질문을 던지면, AI는 이를 다시 여러 개의 세부 질문으로 쪼개 자료를 비교·분석한 뒤 최적의 답변을 내놓는다. 브랜드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숫자와 시점 중심의 구조화된 콘텐츠를 꾸준히 쌓는 것이 AI 답변 안에 브랜드가 살아남는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보도자료가 다시 살아나는 이유
흥미로운 반전이 있다. 한동안 업계에서는 “보도자료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돌았다. 그런데 생성형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AI는 자극적인 광고 문구보다 구조화된 문장을 선호한다. 핵심 정보가 앞부분에 정리되고 숫자와 사실 중심으로 짜인 보도자료의 형식이, 오히려 AI가 읽고 인용하기에 적합한 포맷이라는 재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경달 블루닷AI 이사는 “AI가 답을 쓰는 시대, PR은 어떤 출처가 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AI 엔진별로 콘텐츠를 인용하는 속도와 방식이 다르다는 점도 지적했다. Perplexity나 Google Gemini는 새 콘텐츠를 비교적 빠르게 반영하지만, ChatGPT는 동일한 콘텐츠를 발행해도 반영까지 3주 안팎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 AI가 어떤 출처를 주로 인용하는지 모니터링하고, 상위 출처 도메인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PR 활동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는 기업 홈페이지가 이미지 중심으로 구성돼 있을 경우 AI 크롤러가 정보를 읽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문제도 지적했다. “기계를 설득해야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표현이 행사장에 맴돌았다. AI 답변 안에 브랜드가 포함되지 않으면, 잠재 고객과의 접점 자체가 끊길 수 있다는 경고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AI 도입이 PR 업무 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하고, 향후 PR 전문가의 역할과 전문성 강화 방안이 제시됐다.
헬스커뮤니케이션이 보여주는 단서
유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는 헬스커뮤니케이션 사례를 통해 AI 시대 PR의 본질적 과제를 짚었다. 그는 조기 유방암 환자의 경제적 손실을 병기별로 정리한 데이터를 발행했더니 며칠 만에 AI가 해당 자료를 인용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알고리즘을 공략하려 하기보다, 사람이 진짜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만들어냈을 때 AI가 오히려 그 미끼를 문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광고·PR 업계가 AI를 도입하면서도 여전히 연예인 중심의 오래된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꼬집었다. 코카콜라나 나이키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AI로 소비자를 공동 제작자로 끌어들이고,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메타 컨셉을 구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AI 시대일수록 기술보다 사람의 마음을 깊이 읽는 콘텐츠가 더 강력한 출처가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AI가 판을 바꾸되, 책임은 사람에게 남는다
발표자들은 AI의 한계도 정면으로 짚었다. 할루시네이션(허위 정보 생성), 데이터 편향, 저작권과 개인정보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특히 AI가 잘못된 출처를 인용해 오류 정보가 확산될 경우, 이를 바로잡는 작업은 기존 인터넷 환경보다 난이도가 높다는 경고도 나왔다. “AI가 그렇게 판단했다”는 말은 위기관리 국면에서 책임 회피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반복됐다. AI는 정보를 연결하는 속도를 높이지만, 최종 검증과 판단의 무게는 여전히 사람이 져야 한다.
이번 세미나는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됐다. AI 시대의 PR은 기사 한 건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브랜드가 AI의 기억 속에 어떤 문장으로 남을지를 설계하는 일이다. 행사에 참석한 20년차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전문 임원은 “홍보 담당자의 역할은 콘텐츠 생산자를 넘어, 브랜드의 출처를 관리하고 데이터를 구조화하며 AI가 브랜드를 어떻게 호출할지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중”이라고 공감했다.
한국PR협회가 주최한 특별 세미나 ‘PR 전문가들의 AI 활용’ 참석자들이 생성형 AI 시대 PR 전략 변화와 GEO, AX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흐름에 대한 발표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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