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와 변압기, 산업 설비, 자동차 부품. 산업 현장에서 수명을 다한 자산들은 대부분 폐기물로 분류된다. 하지만 독일 스타트업 컨테이너그리드(ContainerGrid)는 이것들을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다시 산업으로 돌아갈 수 있는 ‘미래 자원’으로 바라본다.
독일 뮌헨(Munich)에 본사를 둔 컨테이너그리드는 산업 부산물과 스크랩(Scrap)의 회수·운송·재활용 과정을 디지털화하는 AI 기반 SaaS(Software as a Service·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제조사(OEM), 자산 보유 기업, 재활용 기업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해 폐기물 관리와 역물류(Reverse Logistics), 자산 추적, 원자재 회수 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최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EU 비즈니스 허브 @ ENVEX 2026’에서 만난 아론 핸드레케(Aron Handreke) 공동창업자 겸 CEO는 “순환경제의 본질은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의 흐름을 다시 연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론 핸드레케(Aron Handreke) ContainerGrid 공동창업자 겸 CEO가 ‘EU 비즈니스 허브 @ ENVEX 2026’에서 AI 기반 순환경제 플랫폼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폐기물 아닌 ‘자원’, 공급망의 빈틈을 보다
컨테이너그리드의 출발점은 공급망 문제에 대한 질문이었다.
왜 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가치 있는 원자재가 포함된 폐기 자산들이 비효율적으로 처리될까. 왜 제조사들은 사용이 끝난 제품을 자산으로 활용하지 못할까.
핸드레케 대표는 이러한 의문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목표는 핵심 원자재에 대한 접근을 민주화하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민주화는 단순한 재활용 확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특정 국가나 대기업 중심의 공급망에 의존하지 않고, 이미 산업 현장에 존재하는 자원을 누구나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폐기물로 분류되던 자산 속 원자재를 회수해 다시 공급망으로 연결함으로써 자원 접근성을 높이고 공급망 회복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이어지면서 배터리와 변압기, 전력 설비, 산업 장비에 포함된 금속과 자원은 전략 자산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회수부터 운송, 분류, 재활용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여전히 복잡하고 파편화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컨테이너그리드는 이 문제를 디지털 플랫폼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회사가 개발한 플랫폼은 산업 폐기물과 자산의 회수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자산 보유 기업과 재활용 업체, 제조사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한다. 단순히 폐기물을 수거하는 것이 아니라 회수된 자원이 다시 공급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연결하는 구조다.
핸드레케 대표는 “회수된 원자재를 제조업체들에게 다시 공급할 수 있고, 자산 소유자는 기존에 비용이 들던 폐기물을 오히려 수익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폐기 비용과 리스크 관리 비용, 분해 비용까지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ContainerGrid는 산업 폐기물과 스크랩의 회수·재활용 과정을 디지털화해 원자재를 다시 공급망으로 연결하는 순환경제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AI가 움직이는 순환경제 플랫폼
순환경제 산업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수거 일정 관리부터 운송, 계약, 규제 대응, 자산 추적, 재활용 인증까지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다. 컨테이너그리드는 이러한 과정을 자동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회사는 최근 독일의 자동화 플랫폼 유니콘 기업 n8n(엔에잇엔)과 협력하며 다양한 AI 및 LLM(Large Language Model·대규모언어모델)을 플랫폼에 접목시켰다. 현재 5~10개의 AI 도구가 업무 프로세스 전반에 연결돼 있으며 상당수 작업 흐름이 자동화된 상태다.
“우리는 AI를 통해 작업 흐름 대부분을 자동화했습니다. 덕분에 소수의 인원으로도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컨테이너그리드는 직원 수 5명의 작은 조직이다. 하지만 구성원 대부분이 엔지니어이며, AI 기반 자동화를 통해 높은 수익성을 확보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현재 영업이익률은 약 80% 수준에 이른다.
회사는 폐기물 관리 워크플로우(Waste Workflow), 컨테이너 관리(Container Management), 자산 추적성(Traceability), 규제 준수(Compliance) 기능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제공한다. 점점 강화되는 유럽연합(EU)의 순환경제 정책과 ESG 규제 환경 속에서 기업들이 보다 투명하게 자원 흐름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핸드레케 대표는 “앞으로 순환경제 산업은 폐기물 처리 산업이 아니라 데이터 산업으로 진화할 것”이라며 “AI는 자원 흐름을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컨테이너그리드 로고
한국 배터리·자동차 산업과 협력 기대
컨테이너그리드는 최근 한국 시장에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핸드레케 대표는 자동차 부품 기업과 배터리 산업 관계자, 학계 전문가, 정책 기관 관계자들과 만나 협력 가능성을 논의한 바 있다. 아직 구체적인 사업은 진행되지 않았지만 한국을 아시아 전략의 핵심 시장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그는 “한국은 배터리와 자동차 산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국가”라며 “순환경제와 자원 회수 시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에는 에너지 시스템과 변압기, 케이블, 배터리 산업을 중심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유럽을 기반으로 인도와 일본, 중앙아시아 등 신규 시장 진출도 검토하고 있다. 2027년까지 추가 투자 유치를 완료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확대하는 것도 주요 목표 중 하나다.
핸드레케 대표는 “앞으로 원자재 회수와 공급망 투명성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 바뀔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과 함께 순환경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산업은 오랫동안 자원을 채굴하고 소비한 뒤 폐기하는 선형 경제(Linear Economy) 구조 위에서 성장해 왔다. 하지만 공급망 위기와 지정학적 갈등, 핵심 광물 확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제 폐기물은 더 이상 처리해야 할 비용이 아니라 다시 확보해야 할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배터리와 변압기, 전력 설비, 산업 장비에 담긴 금속과 소재는 사용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 문제는 그 자산들이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누가 활용할 수 있는지를 연결하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컨테이너그리드가 구축하는 플랫폼은 바로 그 단절된 흐름을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폐기물 관리 솔루션을 넘어 자원의 이동 경로를 데이터로 추적하고, 제조사와 자산 보유자, 재활용 기업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순환경제 운영체제(OS)에 가깝다.
앞으로 기업들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원자재를 구매하느냐보다, 이미 사용된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다시 확보하고 활용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순환경제가 ESG의 영역을 넘어 공급망 전략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컨테이너그리드가 바라보는 미래 역시 여기에 있다. 폐기물이 다시 자원이 되고, 자원이 다시 산업으로 돌아가는 구조. 그리고 그 흐름을 데이터와 AI로 연결하는 것. 독일 뮌헨에서 시작된 이 작은 스타트업은 지금 ‘버려진 것들의 공급망’을 다시 설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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