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긴 여정을 거치는지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신약 하나가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는 수년에 걸친 임상시험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가 쏟아집니다. 그런데 이 방대한 데이터를 아직도 종이에 일일이 손으로 적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이 종이 더미를 디지털로 바꾸는 일에서 출발한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제이앤피메디(JNPMEDI)입니다. 2020년 설립된 제이앤피메디는 임상 데이터 관리 솔루션 ‘메이븐 클리니컬 클라우드(Maven Clinical Cloud)’를 개발한 메디컬 데이터 플랫폼 기업입니다. 임상시험 데이터를 수집·관리하는 ‘메이븐 CDMS’, 원시 데이터를 국제표준(SDTM)으로 변환하고 통계 분석까지 자동화하는 ‘메이븐 컨버터’, 약물 부작용·안전성 데이터를 규제기관에 자동 보고하는 ‘메이븐 세이프티’까지, 임상시험 전 과정을 아우르는 솔루션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습니다. 2024년부터는 임상시험을 직접 수행하는 CRO(임상시험수탁기관)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어요.
제이앤피메디는 조직이 20명이던 시절부터 HR에 진심이었습니다. 성장 방향이 뚜렷했던 만큼 사람에 대한 고민도 일찍 시작한 겁니다. 실제로 사업이 성장하면서 조직도 빠르게 커졌어요. 데이터 엔지니어부터 임상 전문 인력까지 다양한 직군이 한 회사에 모였고, 3년 만에 40명이던 인원이 190명으로 늘었습니다. 제이앤피메디는 인재를 어떻게 뽑고 어떻게 붙잡아 두는 걸까요. 그 비결이 궁금해 송도 포스코타워에 자리한 제이앤피메디 본사에서 문진희 인사본부장을 만났습니다.
제이앤피메디의 문진희 인사본부장
‘테크밋업’과 ‘커리어토크’, 인재를 모셔오는 법
훌륭한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제이앤피메디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채용 시스템(ATS) 구축이었습니다. 국내 채용 솔루션을 도입하고, 인재상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 면접관들과 공유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인지도였어요. 스타트업은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좋은 인재를 채용하기 어려운데, 제이앤피메디는 ‘인천’이라는 지리적 제약까지 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채용팀은 인재를 찾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 직접 만나러 다녔습니다. 동시에 회사의 존재감을 알릴 이벤트도 기획했었죠. 개발자·기획자·디자이너를 겨냥한 ‘테크 밋업(Tech Meetup)’이 대표적입니다. 첫 밋업부터 반응이 왔습니다. 100여 명이 등록했는데 수용 인원이 60명이라 참가자를 선별해야 할 정도로 성공했었는데, 그렇게 하면서 제이앤피메디의 채용 브랜딩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이앤피메디가 CRO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임상 분야의 숙련된 전문가가 필요해졌습니다. 특히 임상시험 업계에는 간호사 출신이 많은데, 병동을 떠나 새로운 직무로 전환하고 싶어도 정보가 부족해 막막해하는 분이 많습니다. 여기에 착안해 기획한 것이 ‘커리어 토크(Career Talk)’입니다. 간호 전공자와 현직 간호사를 대상으로 임상 직무로의 전환을 안내하는 설명회입니다. 커리어 토크는 회를 거듭하며 인재 영입 통로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난 4월 4기를 마쳤고, 이번에도 훌륭한 인재가 여럿 합류했습니다.
핵심가치
1. Client Value First(고객가치 최우선) 은 모든 의사결정의 첫 번째 기준을 고객의 가치에 둔다는 선언입니다. 주목할 건 ‘Customer’가 아니라 ‘Client’라는 단어 선택입니다. Customer가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라면 Client는 전문 서비스를 의뢰한 특정 고객을 가리킵니다. 제약사와 장기 프로젝트로 일하는 B2B 회사의 정체성이 단어 하나에 담긴 셈입니다. 그리고 ‘First’가 붙어 있으니 다른 가치와 충돌할 때 무엇을 앞세울지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2. Integrity at Heart(진실성을 중심에) 는 임상 산업에서는 단순한 윤리 덕목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데이터 무결성(Data Integrity)’을 의미합니다. 임상시험 데이터는 누가, 언제, 왜 수정했는지까지 전부 추적돼야 하고, 데이터를 정직하게 다루는 것이 곧 환자의 안전과 직결됩니다. 즉 제이앤피메디에서 Integrity는 사람의 품성과 데이터의 무결성이라는 이중 의미를 갖는, 업의 본질에 닿아 있는 가치입니다.
3. Socially Responsible(사회적 책임) 은 ‘더 건강한 세상을 위한 기반’이라는 미션과 이어집니다. 임상시험의 디지털화가 빨라지면 신약이 환자에게 닿는 시간이 단축되고, 그것이 제이앤피메디가 정의하는 사회적 기여입니다.

고객중심을 회의실에 새기다
제이앤피메디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고객가치 최우선’입니다. 이 문화는 회의실 이름에서도 드러납니다. 제이앤피메디의 회의실에는 글로벌 제약사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송도 본사를 확장할 때 회의실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고민하다 ‘고객가치 최우선’을 떠올렸고, 2022년 글로벌 톱텐 제약사 리스트를 뽑아 그대로 회의실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화이자(Pfizer), 일라이 릴리(Eli Lilly), GSK, 노바티스(Novartis), 로슈(Roche), 사노피(Sanofi),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 아직 고객은 아니지만 ‘언젠가 글로벌 임상을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들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이름들이 바뀌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한국 제약사들이 고객으로 합류하면서 일부 회의실 이름이 종근당, 삼진제약으로 바뀌었습니다. 회의실 이름이 곧 영업 목표이자 고객 지도인 셈입니다. 제약사 이름이 낯설던 IT 개발자들이 자연스럽게 고객사 이름에 익숙해지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서울 사무소의 회의실에는 ‘규제기관’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고객의 성공이란 결국 규제기관에서 임상 허가를 받는 것이니까요. 서울 사무소에는 네 개의 회의실이 있는데, 각각 MFDS(한국 식약처), FDA(미국), EMA(유럽), PMDA(일본)입니다. 글로벌로 뻗어나가려는 고객의 성공 경로를 그대로 회의실에 새겨 넣은 겁니다.
“누군가 규칙으로 정해두지 않아도, 명문화되어 있지 않아도, 다들 이런 방식으로 사고하고 일하는 것. 그게 조직 문화라고 생각해요.”
문 본부장이 생각하는 조직 문화 정의입니다.
듀얼 래더와 커리어 래티스
제이앤피메디에서의 성장과 승진은 두 가지 커리어 모델이 있어요.
첫째는 ‘듀얼 래더(Dual Ladder)’입니다. 사다리가 두 개라는 뜻입니다. 보통 ‘승진’이라고 하면 직위가 올라가고 더 많은 팀과 사람을 거느리는 걸 떠올립니다. 그런데 제이앤피메디에는 사람 관리를 맡지 않고 전문성만으로 올라가는 ‘전문가 트랙’이 따로 있습니다. 뛰어난 개발자나 임상 전문가가 승진을 위해 원치 않는 관리자가 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관리하는 일과 자기 분야를 파고드는 일은 전혀 다른 역량인데, 많은 회사가 후자를 잘하는 사람에게 전자를 보상으로 떠안기다 둘 다 잃곤 합니다. 전문가 트랙은 관리 부담 없이 연차와 전문성에 걸맞은 직위와 보상을 받으며 자기 영역을 계속 깊게 파는 경로입니다.
물론 관리자가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한 ‘관리자 트랙’도 있습니다. 다만 준비 없이 리더 자리에 앉으면 본인도, 구성원도 힘들어진다는 걸 알기에 임명 절차를 엄격하게 했습니다. 리더십 교육을 이수해야 하고, 관련 서적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멘티 3명 이상과 각 3회 이상, 도합 9회 이상의 멘토링 세션을 거쳐야 관리자가 됩니다.
둘째는 ‘커리어 래티스(Career Lattice)’입니다. 셰릴 샌드버그의 책 <린 인>에도 나오는 개념입니다. 커리어가 반드시 위로만 오르는 게 아니라 옆으로 이동할 수도 있으며, 그것 또한 ‘성장’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다리(래더)가 아니라 격자(래티스)라는 이름 그대로입니다. 데이터 매니지먼트 레벨 2에 있던 사람이 의학통계나 바이오 분야 레벨 1로 ‘내려가는’ 것도 성장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제이앤피메디는 1년 이상 성과를 낸 구성원이라면 이런 직무 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실제 사례도 있습니다. 데이터 매니지먼트 업무를 맡아오던 한 구성원은 업무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며 개발 기획자로의 전직을 요청했습니다. 개발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었기에 본인에게도 회사에도 부담이 있는 결정이었지만, 회사는 이동을 지원했습니다. A는 지금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며 개발 기획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위로도, 옆으로도 열려 있는 유연한 조직입니다. 그 유연함의 비용을 기꺼이 치르면서 인재를 육성하고 있어요”

제이앤피메디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결국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인재를 찾아내고, 그 인재가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 채용 시스템부터 듀얼 래더와 커리어 래티스까지, 이 회사의 인사 제도는 전부 그 한 가지를 향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고객이 있습니다. 아직 고객이 아닌 글로벌 제약사의 이름을 회의실 문패로 내걸고, 고객의 성공 경로인 규제기관의 이름을 회의실에 새긴 회사. 제이앤피메디에게 좋은 인재란 곧 고객에게 더 큰 가치를 전달할 사람입니다. 그 고객의 성공이 신약이 되어 환자에게 닿을 때, ‘더 건강한 세상을 위한 기반’이라는 미션은 비로소 완성됩니다. 제이앤피메디는 사람을 키우는 일에서부터 그 기반을 차곡차곡 다지고 있었습니다.
The post [컬처슬로건 탐방기] 제이앤피메디– ‘고객 우선’과 인재상 appeared first on 벤처스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