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품은 완벽했다. 창업 경진대회 대상도 받았다. 그런데 양산을 하려니 처음부터 다시 개발해야 했다.”
많은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이 시장에 나오기도 전에 멈춰선다. 기능 구현에는 성공하지만 제조와 양산이라는 또 다른 현실 앞에서 좌절한다. 기술력은 충분했지만 생산 단계로 넘어가지 못해 사라지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독일 자동차 부품 엔지니어 출신 이관형 대표 역시 같은 경험을 했다. 원격의료 스타트업 창업 당시 시제품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양산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다. 그는 그 실패 과정에서 한국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를 발견했다. 그리고 2024년, 저전력 AI IoT 모듈 전문기업 누코드(NuCode)를 설립했다.
누코드가 해결하려는 것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와 제품을 가진 창업자들이 제조와 양산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 일이다. 이 대표는 자신이 넘어졌던 그 지점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았다.
누코드 이관형 대표는 국내 저전력 IoT 개발 전문기업으로 글로벌 양산 기술로 한국 하드웨어 모듈 전문기업으로 혁신해 나가고 있다.
“시제품은 성공했는데 양산에서 무너졌다”
많은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이 시장에 나오기도 전에 멈춰선다. 기능 구현에는 성공하지만 제조와 양산이라는 또 다른 현실 앞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독일 자동차 부품 엔지니어 출신 이관형 대표 역시 같은 경험을 했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원격의료 스타트업을 창업했고, 기술력은 인정받았다. 시제품으로 공공기관 창업 경진대회 대상까지 수상했지만, 문제는 그다음 단계였다.
“시제품을 만들어놓고 양산으로 가려니 다시 개발을 해야 되더라고요. 아예 하드웨어부터요.”
기능 구현만 성공하면 제품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시제품과 양산 제품은 설계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생산성, 인증, 원가, 수율, 품질관리까지 고려해야 했고 결국 하드웨어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했다.
독일에서 자동차 부품 엔지니어로 일하며 제조 현장을 경험했던 그에게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당시 그는 재료 선정부터 생산 공정, 양산 품질 관리까지 자동차 산업 전반을 경험하며 제조의 중요성을 체득했지만 스타트업 창업 현장에서는 기술 개발과 제조 사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결국 사업은 중단됐다. 그러나 이 실패는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졌고 또다른 시작의 실마리가 되었다.
왜 많은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이 양산 단계에서 멈추는 걸까.
그는 문제의 원인이 기술 부족이 아니라 제조 인프라 부족에 있다고 판단했다. 아이디어와 기술은 있지만, 그것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제조 기반이 부족한 기업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누코드는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기술력을 입증해 나가고 있다.
신기술을 쉽게 쓰게 만드는 것이 모듈의 역할
양산 실패 경험 이후 이 대표가 주목한 것은 모듈(Module)이었다. 모듈은 복잡한 회로나 기능을 하나의 부품 안에 통합해 개발자들이 보다 쉽게 제품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미 검증된 기능을 활용하기 때문에 개발 기간을 줄일 수 있고, 인증과 양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도 크게 낮출 수 있다.
“모듈화를 시켜서 제품을 만들고 잘 조합하면 개발 비용도 줄고 양산 실패 확률도 크게 낮출 수 있습니다.”
해외 시장을 조사하면서 그는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영역이지만 해외에는 이미 수조 원 규모의 글로벌 모듈 전문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기술 자체를 개발하는 기업만큼이나, 그 기술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업들의 가치가 높게 평가받고 있었다.
누코드는 바로 그 역할을 목표로 사업을 설계하고 있다. 단순히 부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들이 최신 기술을 보다 쉽고 빠르게 제품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기술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AI가 다양한 디바이스로 확산되면서 저전력 AI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생성형 AI 열풍으로 고성능 GPU와 데이터센터가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 산업 현장과 일상 속 수많은 기기들은 다른 조건을 요구한다. 배터리로 작동하는 센서와 웨어러블 기기, 산업용 장비, 스마트홈 기기들은 성능만큼이나 전력 효율과 비용 경쟁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앞으로 AI가 클라우드뿐 아니라 기기 자체에서 동작하는 ‘엣지 AI’ 형태로 더욱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음성 인식과 센서 데이터 분석, 움직임 감지와 같은 기능은 반드시 고성능 AI 서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MCU(Micro Controller Unit)급 칩에서도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
누코드는 이러한 흐름에 맞춰 경량 AI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저전력 AI IoT 모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개발자들이 복잡한 하드웨어 설계 과정 없이도 최신 무선통신과 AI 기능을 제품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누코드는 북유럽과 독일, 미국, 대만 등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주요 칩 제조사들의 공식 서드파티 파트너로 등록돼 최신 기술을 빠르게 모듈화하고 있으며, 국내 개발자와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보다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력과 사업 역량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AI 반도체 기업의 한국 엘리트 파트너로 선정됐으며, 향후 해당 기업과 공동 브랜드 형태의 제품 출시도 준비 중이다.
이 대표는 단순히 최신 칩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이 실제 제품과 시장으로 연결되는 과정 자체를 단축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좋은 기술이 나와도 실제 제품에 적용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저희는 그 간극을 줄이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누코드가 지향하는 방향 역시 단순한 부품 공급사가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개발한 최신 기술과 이를 필요로 하는 개발자·기업을 연결하는 기술 플랫폼에 가깝다. 신기술을 보다 빠르게 시장으로 확산시키고, 개발자들이 복잡한 하드웨어 설계보다 제품과 서비스 개발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누코드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누코드 이관형 대표
좋은 기술이 양산의 벽에서 멈추지 않도록
누코드는 올해부터 미국과 영국의 글로벌 전자부품 유통망을 통해 본격적인 해외 공급을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 일본, 인도에 이어 유럽 시장 진출도 추진 중이다. 글로벌 유통 채널 확보는 단순한 판매처 확대를 넘어 기술력과 품질, 공급 안정성까지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대표가 가장 자주 이야기하는 것은 시장 규모나 매출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한 번 겪었던 실패를 다른 창업자들이 반복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양산 단계에서 포기하는 창업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누코드의 모듈을 사용하면 그런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하드웨어 창업 생태계에도 소프트웨어 산업의 클라우드 인프라 같은 기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모든 스타트업이 처음부터 회로를 설계하고 인증을 받고 제조 공정을 구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검증된 모듈과 플랫폼을 활용해 더 빠르게 시장을 검증하고 제품을 출시할 수 있어야 혁신도 더 많이 나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누코드가 만드는 것은 단순한 무선통신 모듈이나 AI 모듈이 아니다. 기술을 가진 개발자와 스타트업이 제조와 양산이라는 높은 장벽 앞에서 멈추지 않도록 돕는 제조 인프라이자 기술 플랫폼에 가깝다.
많은 스타트업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출발한다. 하지만 시장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고, 다시 그 제품을 안정적으로 양산해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업이다. 실제로 수많은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이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양산과 제조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사라진다.
이관형 대표는 누구보다 그 과정을 잘 안다. 직접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고, 동시에 양산의 벽 앞에서 사업을 접어본 경험도 있다. 그래서 누코드의 출발점은 기술이 아니라 실패였다. 그가 만들고 있는 것은 결국 하나의 모듈이 아니다. 더 많은 창업자들이 시제품에서 멈추지 않고 시장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길이다. 자신의 실패를 사업으로 바꾸고, 그 경험을 다른 창업자들의 성공 확률로 환산하는 것. 누코드가 풀고 있는 문제의 본질도 바로 거기에 있다.
The post “저전력 AI IoT 모듈, 글로벌 양산 능력으로 승부한다”… 누코드 이관형 대표가 그리는 하드웨어 모듈 업계의 미래 appeared first on 벤처스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