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향한 글로벌 에너지 전환의 흐름 속에서, ‘수소’는 미래 청정에너지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은 과거 세계 최초로 수소법을 제정하고 수소 시범도시 프로젝트를 선제적으로 추진하는 등 글로벌 수소 시장을 선도해 왔다. 그러나 초기 인프라 구축 당시 제정된 보수적인 기준과 법규가 이제는 혁신 기술의 진입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되었다. 수소를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수송할 수 있는 인프라의 다변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이유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5월 18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EU 비즈니스 허브(EU Business Hub @ ENVEX 2026)’ 전시회 현장에서 수소 수송의 패러다임을 바꿀 혁신적인 솔루션이 등장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에너지 고효율 건축자재 및 기술 보급 전문기업인 (주)해강인터내셔널이 네덜란드의 글로벌 비금속 배관 선도기업 솔루포스(SoluForce)의 한국 파트너로서 선보인 비금속 복합 수소 배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현장에서 만난 이정현 대표이사(솔루포스 한국대표)는 기술에 대한 확신과 국내 수소 산업 발전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제시했다.
‘EU 비즈니스 허브 @ ENVEX 2026’에 마련된 솔루포스(SoluForce) 부스 앞에서 이정현 한국 대표이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틸의 한계를 넘다… ‘수소 취성’과 ‘부식’을 차단하는 혁신적 복합 소재
현재 국내 수소 시범도시와 주요 인프라에는 주로 스틸(강관) 파이프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금속 소재는 수소 수송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낸다. 이정현 대표는 가장 먼저 금속 배관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수소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볍고 분자 구조가 미세한 물질이기 때문에 이 미세한 수소 분자가 철의 격자 구조 내부로 침투해 철을 취약하게 만들고 결국 균열을 일으키는 ‘수소 취성(Hydrogen Embrittlement)’ 현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강한 강관이라도 수소 앞에서는 내구성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여기에 금속 특유의 부식 문제와 시공상의 한계가 더해진다. 강관 파이프는 통상 최대 길이가 12m 단위로 공급되기 때문에, 12m마다 용접하고 플랜징(Flanging) 작업을 해야 한다. 이 대표는 “결함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매번 고비용의 비파괴 검사를 거쳐야 하므로 공사 기간이 늘어나고 시공비가 치솟게 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솔루포스가 개발한 RTP(Reinforced Thermoplastic Pipe, 강화 열가소성 플라스틱 파이프) 기술은 이 같은 스틸의 한계를 단숨에 극복했다. 이 배관은 부식에 강한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내·외부층 사이에 고인장 아라미드 섬유(Aramid Fiber)와 수소 투과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고유의 알루미늄 층을 결합한 다층 복합 파이프다.
솔루포스 한국 이정현 대표가 비금속 복합 수소 배관의 내부 구조와 핵심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400m를 한 번에”… 시공성과 경제성의 압도적 반전
솔루포스 비금속 배관이 가진 가장 직관적인 메리트는 ‘연속성’에 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유연하면서도 강한 이 파이프는 대형 롤(Roll) 형태로 감겨 공급된다. 이 대표는 “솔루포스의 배관은 한 코일당 최대 400m 길이로 연속 공급된다”고 밝히며, “12m마다 용접해야 하는 스틸 관과 달리 400m 구간을 용접 없이 단 한 번에 깔고 특수 커플링으로 연결하면 끝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시공 속도를 비교할 수 없이 높이고 공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내부 표면의 마찰력도 극도로 낮아 동일 구경의 금속 배관 대비 훨씬 높은 유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실제로 이 배관은 최대 42bar의 압력과 65℃의 혹독한 온도를 견디며 지진과 같은 외부 충격이나 지반 침하에도 유연하게 대응한다. 한 번 매설하면 50년 이상의 수명을 보장해 유지보수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인프라 자산으로서 엄청난 강점이다. 이미 글로벌 오일·가스 시장에서 지난 25년간 육상과 해상을 가리지 않고 약 4,500km 이상 설치되어 그 안정성을 완벽히 검증받았다. 솔루포스는 이러한 독보적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게 수소 배관 국제 인증을 획득한 ‘솔루포스 H2T(Hydrogen Tight)’ 브랜드를 통해 글로벌 수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중심에서 찾은 파트너십
에너지 고효율 건축 자재와 기밀 시스템 기술을 국내에 보급해 온 (주)해강인터내셔널이 수소 인프라 영역으로 발을 넓힌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정현 대표는 수년 전 독일 패시브하우스 연구소(PHI) 등에서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저탄소 건축 기술을 연구하며 자연스럽게 차세대 에너지원인 수소 생태계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는 “수소 경제가 실현되려면 생산만큼이나 안전한 ‘이송’ 인프라가 핵심 카테고리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전 세계에서 이 분야의 넘버원 기술을 가진 기업을 찾던 중 솔루포스를 발견했고 직접 적극적으로 컨택을 시도했다”고 전했다. 이후 국내에서 열린 수소 전문 전시회(H2 MEET)에서 네덜란드 본사 관계자들과 직접 만나 깊은 신뢰를 쌓았고, 이를 계기로 독점 파트너십을 맺어 국내 시장에 혁신 기술을 정식으로 도입하게 되었다.
전시 부스에 진열된 솔루포스 수소 이송용 비금속 복합 배관 제품. 유연성과 강도를 모두 갖추어 기존 금속 강관을 대체할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제도적 장벽 넘고, 한국 EPC 기업과 손잡고 글로벌 무대로
획기적인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 안착을 위해 넘어야 할 허들은 존재한다. 가장 큰 과제는 국내의 보수적인 법규와 표준(Code & Standard)이다. 현행 국내 수소법 및 한국가스안전공사(KGS)의 상세 기준은 과거 기술을 바탕으로 디자인되어 있어, 모든 기준이 ‘스틸 강관’에 맞추어져 있다. 법 제정 이후에 등장한 신기술인 RTP 복합 배관의 우수성과 안전성을 기존 제도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정현 대표는 제도적 개선을 위한 규제 샌드박스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보다 거시적인 포부를 밝혔다. 이 대표는 “수소 배관은 국가와 지자체, 공기업 단위의 과감한 투자와 기후변화 대응 의지가 맞물려야 하는 거대 인프라 사업”이라며, “규제 완화를 통해 국내 수소도시에 솔루포스의 배관이 적용된다면 가장 안전하고 경제적인 수소 인프라의 표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U 비즈니스 허브 @ ENVEX 2026’에 마련된 솔루포스(SoluForce) 부스 전경. 대규모 친환경 저탄소 기술 미션의 일환으로 국내 수소 관계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나아가 그는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무대로의 도약도 준비하고 있다. 이 대표는 “한국에는 세계적인 설계·조달·시공(EPC) 기업들이 포진해 있다”고 짚으며, “이들이 중동이나 동남아 등 전 세계에서 대규모 수소 및 에너지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 저희의 혁신적인 배관 솔루션을 결합해 함께 글로벌 무대로 나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의 우수한 플랜트 기술력과 솔루포스의 독보적 배관 기술이 결합한다면 세계 수소 경제 시장에서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솔루포스가 그리는 그림은 크다. 자재 하나하나에 수소 경제의 안전을 담겠다는 철학, 그리고 금속배관이 지배해 온 시장의 판도를 비금속 복합관으로 바꾸겠다는 도전. 대한민국 수소 인프라의 새 지평을 열 이들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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