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고도화되면서 글로벌 진출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하지만 수많은 정부 지원 프로그램과 해외 진출 사업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글로벌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는 팀은 많지 않다. 무엇이 문제일까.
미국 진출 전문 액셀러레이터 아웃썸(Outsome)의 피터 신(Peter Shin·신동엽) 대표는 그 답을 기술보다 창업자의 태도와 실행 방식에서 찾는다. 와이컴비네이터(Y Combinator·YC)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스타트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그는 “글로벌 시장은 생각보다 훨씬 단순하다. 고객이 돈을 내느냐, 내지 않느냐가 전부”라고 말한다.
최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YC 리트릿에 참석한 피터 신 대표를 만나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의 변화와 한국 창업자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피터 신 대표가 아웃썸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미국 시장 진출 실전 전략 중심의 Founder Sprint 6기를 진행하고 있다.
YC가 본 AI 시대, 결국 승부는 ‘휴먼 터치’에 달렸다
피터 신 대표는 최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와이컴비네이터 리트릿에 참석했다. YC 동문 200~300여 명이 모이는 연례 행사로, 엑싯 이후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창업자부터 시리즈 B 단계 기업을 이끄는 파운더까지 다양한 창업가들이 참여한다.
그는 액셀러레이터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글로벌 멘토와 벤처 파트너를 발굴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학습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가족 동반도 가능한 행사인 만큼 네트워킹과 워케이션이 결합된 독특한 문화 역시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키워드는 단연 AX(AI Transformation)였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AI 최전선에 있는 YC 창업자들이 오히려 ‘휴먼 터치(Human Touch)’를 더욱 강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AI 코파일럿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조차 고객 온보딩과 고객 지원, 오프라인 컨퍼런스 운영에는 여전히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있었다. AI가 할 수 없는 영역을 사람이 밀착 관리하는 구조가 오히려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피터 신 대표는 향후 10~20년 동안은 AI 기술력 자체보다 고객을 얼마나 세밀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업인가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YC 창업자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면 결국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AI가 많은 일을 대신하지만 고객 경험의 마지막 순간은 여전히 사람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AI를 잘 쓰는 기업보다 고객을 끝까지 챙기는 부지런한 기업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이 가진 경쟁력에 대해서는 오히려 낙관적으로 평가했다.
미국은 병원만 가더라도 사용하는 데이터 구조와 API가 제각각일 정도로 정보가 파편화돼 있다. 반면 한국은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고 정부 주도의 표준화 정책 덕분에 양질의 산업 데이터가 체계적으로 축적돼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단일 언어와 높은 디지털화 수준, 제조 현장에서 축적된 방대한 원천 데이터는 글로벌 AI 시장에서도 충분한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웃썸(Outsome)은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실리콘밸리 현지 창업가와 투자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출처: 아웃썸 홈페이지 캡처)
‘아웃라이어’가 만드는 성장 공식… YC 플레이북을 한국에 옮기다
아웃썸이라는 이름에는 ‘아웃라이어들이 무언가를 만든다(Outliers Build Something)’는 의미가 담겨 있다.
피터 신 대표는 스스로를 언더독이라고 생각하는 창업자들이 모여 성장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누구보다 절실하지만 상대적으로 기회가 적었던 창업자들이 글로벌 무대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웃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사업 구조 역시 기존 액셀러레이터와 차별화된다.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거나 초기부터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창업자들에게 최적화된 크로스보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다시 스타트업 투자에 활용하는 구조다. 향후에는 자체 펀드 조성도 계획하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미국과 한국 액셀러레이터 생태계의 가장 큰 차이는 ‘방법론’이다.
YC는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을 철저하게 시스템화했다. 에어비앤비(Airbnb), 도어대시(DoorDash), 스트라이프(Stripe) 같은 유니콘 기업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고 본다.
피터 신 대표는 YC 플레이북의 핵심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는 파트너 구성이다. YC 파트너들은 대부분 직접 회사를 창업하고 성장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 사업 초기 단계부터 스케일업까지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조언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두 번째는 철저한 상품화(Productization)다. 코파운더 매칭부터 오피스 아워 예약, 멘토링 관리까지 모든 과정이 자동화 시스템으로 구축돼 있다. 사람의 경험을 플랫폼으로 전환해 반복 가능한 성장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국내 자본시장은 상대적으로 금융과 투자 관점이 강합니다. 반면 YC는 창업자가 창업자를 돕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회사를 만들어 본 사람들이 성장 공식을 체계화했고, 그 과정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했습니다. 결국 사람의 역량이 아니라 시스템이 유니콘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구축한 셈입니다.”
그는 한국 액셀러레이터들도 단순한 네트워킹과 멘토링을 넘어 반복 가능한 성장 방법론을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터 신 대표가 미국 진출에서의 시행착오 기간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아웃썸 Founder Sprint 6기를 진행하고 있다.
“설문조사는 버려라”… 글로벌 시장은 입금으로 증명한다
피터 신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해외 진출 과정에서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문제로 기술이 아닌 ‘멘탈리티(Mentality)’를 꼽는다.
그는 한국 창업자들이 지나치게 자기 검열에 익숙해져 있다고 지적했다. 좁은 사회에서 성장한 경험 때문에 해외에서도 눈치를 보고, 영어 발음이나 표현에 위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 시장은 훨씬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다. 완벽하게 준비된 뒤 움직이기보다 먼저 시장에 뛰어들고 검증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사람들은 알맹이가 부족해도 자신 있게 세일즈를 합니다. 반대로 한국 창업자들은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 창업자들의 역량과 실행력은 생각보다 훨씬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제품·시장 적합성(PMF)에 대한 생각도 명확하다.
YC가 정의하는 PMF는 기업이 시장을 이끄는 상태가 아니라 시장이 기업을 끌고 가는 상태다. 고객 수요가 기업의 성장 속도를 앞서고, 시장이 스스로 제품의 방향을 정의하기 시작할 때 진짜 PMF가 만들어진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창업자들에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으로 설문조사를 꼽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창업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처럼 관계 중심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긍정적인 피드백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실제 구매 행동은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결국 가장 정확한 시장조사는 실제 결제다.
“가장 좋은 설문조사는 입금입니다. 제품이 완성되기 전이라도 얼리버드 판매를 진행해 보세요. 돈을 먼저 낸 고객들의 의견만이 진짜 데이터입니다.”
돈을 내지 않은 사람들의 긍정적인 피드백보다, 실제 구매 행동이 훨씬 정확한 시장의 신호라는 것이다.
피터 신 대표가 인터뷰 내내 반복한 메시지는 결국 하나였다. 글로벌 시장은 기술이나 스토리만으로 평가받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장은 창업자의 의도나 노력보다 고객의 행동으로 답한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도 고객이 지갑을 열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아무리 많은 지원 프로그램을 경험해도 시장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성장할 수 없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이제 ‘준비된 창업가’에서 ‘검증받는 창업가’로 사고방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완벽한 제품을 만든 뒤 시장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시장 안에서 제품을 완성해 가는 방식이다.
결국 글로벌 무대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가장 똑똑한 기업이 아니라 가장 빠르게 시장과 대화하는 기업이다. 그리고 그 대화의 언어는 설문 응답도, 박수도 아니다. 고객이 실제로 지갑을 열어 남긴 단 하나의 숫자, 바로 매출이다.
와이컴비네이터(YC) 출신인 피터 신 아웃썸 대표. 그는 실리콘밸리 현지 네트워크와 YC의 성장 방법론을 기반으로 국내 스타트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돕고 있다.

The post “독종만이 미국을 흔든다”… 와이컴비네이터 출신 피터 신 아웃썸 대표의 미국 진출 플레이북 appeared first on 벤처스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