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가 연구실을 벗어나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되려면 성능과 전력 효율뿐 아니라 조달 경로와 장기 운영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국방과 공공 분야는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도입하는 데 따른 책임과 계약 절차가 새로운 기술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정부가 혁신제품에 적용하는 수의계약과 구매면책은 공공기관이 국산 AI 반도체를 시험하고 도입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글로벌 시장에서 양산 수주를 늘려온 딥엑스가 국내 공공·국방 시장으로 적용 범위를 확장할 기반을 확보했다.
AI 반도체 기업 딥엑스(DEEPX)는 저전력 엣지 컴퓨팅용 AI 반도체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우수연구개발 혁신제품’으로 지정됐다고 18일 발표했다.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왼쪽부터), 장창희 딥엑스 대외기술교류 담당, 이경원 딥엑스 과장, 조낙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상임부회장이 혁신제품 지정서 수여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딥엑스)
지정 제품은 AI 모델의 실시간 추론 연산을 수행하는 딥엑스의 NPU 기반 AI 추론 모듈 ‘DX-M1·DX-H1 시리즈’다. NPU는 인공지능 연산에 특화된 프로세서로, 카메라와 로봇, 산업용 장비 등에서 영상과 센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한다.
우수연구개발 혁신제품 지정 제도는 정부 연구개발 사업을 통해 개발된 제품 가운데 혁신성과 공공성, 사업화 가능성을 갖춘 제품의 공공시장 진입을 지원한다. 지정 제품은 3년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수의계약 대상이 되며 구매 담당자는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을 경우 구매에 따른 책임을 면제받는다.
수의계약은 경쟁입찰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공공기관이 지정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 초기 도입 기간을 줄인다. 구매면책은 실적이 부족한 혁신 제품을 도입하는 담당자의 부담을 낮춰 시범 적용과 현장 검증을 촉진하는 장치다. 지정 제품은 조달청이 운영하는 공공혁신조달플랫폼을 통해 공공기관에 소개·공급된다.
딥엑스는 데이터센터보다 전력과 냉각 능력이 제한된 엣지 환경에 초점을 맞춰 NPU를 개발했다. 실외 함체와 이동형 장비, 지능형 카메라에서는 연산 성능이 높아도 소비전력과 발열이 커지면 별도의 냉각장치와 전원 설비가 필요하다. 이는 장비 가격과 설치비, 장기 운영비 증가로 이어진다.
회사는 AI 연산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데이터를 칩 내부에서 재활용하는 ‘데이터 재사용(Data Reuse)’ 아키텍처로 외부 메모리와의 데이터 이동을 줄였다. 데이터 이동에 필요한 전력과 처리 지연을 낮춰 제한된 전력 안에서 실시간 추론 성능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공군 기지에서 해외 10여 개국까지…현장 적용으로 이어지는 NPU
딥엑스가 제시한 공인시험 결과에 따르면 DX-M1 기반 NPU 모듈은 고해상도 AI 객체 탐지 과제에서 비교 대상 엔비디아 GPU보다 전력 소모를 최대 93% 줄이면서 동등한 수준의 탐지 성능을 기록했다. 실제 절감 폭은 적용하는 AI 모델과 카메라 채널 수, 시스템 구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전력과 발열 관리가 중요한 엣지 장비에서는 소비전력이 제품 선택의 주요 기준이 된다.
DX-M1은 최대 25TOPS의 AI 연산 성능을 1~5W의 전력 범위에서 제공한다. M.2 형태의 소형 모듈로 산업용 컴퓨터와 영상관제 장비 등에 장착해 기존 시스템에 AI 추론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DX-H1은 여러 DX-M1을 구성해 다수의 영상 채널과 더 큰 추론 작업을 처리하는 제품군이다.
딥엑스는 500여 건의 글로벌 기술 특허를 기반으로 저전력 NPU와 소프트웨어 개발도구를 함께 공급하고 있다. 반도체 성능과 함께 기존 AI 모델을 NPU 환경으로 변환하고 최적화해 실제 장비에 배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체계를 제공하는 전략이다.
국내에서는 국방부의 ‘NPU 기반 지능형 영상감시체계 시범 구축 사업’을 통해 공군 기지의 AI 경계감시체계에 NPU를 공급했다. 실시간 영상 분석이 필요한 경계·보안 분야에서 저전력 NPU의 성능과 운용 가능성을 검증하는 사례다.
해외 수주도 양산 이후 증가하고 있다. 딥엑스는 1세대 NPU ‘DX-M1’ 양산 1년 만에 글로벌 10여 개 국가·지역에서 77건, 총 1300만달러(약 183억원) 이상의 구매주문(PO)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양산 7개월 기준으로 8개국에서 27건의 주문을 확보한 데 이어 수주 국가와 건수가 늘어난 것이다.
김녹원 딥엑스 대표는 “이번 혁신제품 지정을 계기로 국내 공공 인프라에 국산 AI 반도체 적용을 확대하고 실제 현장에서 경제성을 입증하는 소버린 AI 사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혁신제품 지정으로 딥엑스는 해외 제조사와의 양산 협력에 더해 국내 공공기관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는 조달 경로를 갖추게 됐다. 다음 과제는 공공기관의 시범 사용과 납품을 통해 장기 운영 안정성, 유지보수 체계, 전력비 절감 효과를 구체적인 데이터로 증명하는 일이다. 공군 기지와 지능형 CCTV 등에서 확보한 운용 결과가 다른 공공 인프라와 해외 프로젝트의 도입 근거로 이어진다면 국산 NPU의 경쟁력은 반도체 성능 수치를 넘어 실제 현장의 총소유비용을 낮추는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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