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바꾸는 일은 책상을 옮기는 일이 아닙니다. 결국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일입니다.”
AI가 반복 업무를 대신하는 시대가 오면서 사무실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강지수 넵스랩 대표는 공간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조직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테리어와 가구를 새로 들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문화와 IT 시스템, 그리고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이 함께 변화하는 것이다.
넵스랩 역시 자신들을 인테리어 회사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공간을 매개로 조직의 업무 방식과 문화를 혁신하는 ‘업무 혁신 파트너’를 지향한다.
강 대표는 “공간은 사람의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결국 조직문화를 만든다”며 “좋은 오피스는 보기 좋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잘 일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라고 말했다.
넵스랩은 스스로를 인테리어 회사로 부르지 않는다. ‘업무 혁신 파트너’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강지수 넵스랩 대표.
공간보다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은 일하는 방식
강 대표의 이력은 일반적인 오피스 컨설턴트와는 다르다. 건설이나 인테리어 업계가 아니라 UN과 KOICA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교육 인프라와 국제협력 사업을 경험했다. 국가마다 환경은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공간의 형태가 결국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조직문화를 만든다는 점이었다. 그 경험은 창업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철학이 됐다.
“책상을 옮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한국 기업의 오피스를 바라보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공간보다 문화였다. 많은 사무실은 업무를 위한 공간보다 조직의 위계를 보여주는 구조에 가깝다. 창가의 임원실과 줄지어 놓인 고정 좌석, 항상 예약이 가득한 회의실은 조직의 수직적인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넵스랩은 공간 설계보다 진단을 먼저 시작한다. 조직이 어떻게 소통하는지, 업무가 어떤 흐름으로 진행되는지 분석한 뒤 공간과 IT 시스템,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함께 설계한다. 세 가지 요소가 함께 바뀔 때 사람들의 행동도 자연스럽게 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객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요청은 “회의실을 더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넵스랩은 곧바로 설계에 들어가지 않는다. 회의실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회의 문화가 비효율적인 것인지부터 다시 살핀다.
“고객이 말하는 것은 증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컨설팅은 요구사항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의 성장 단계에 따라 공간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는 시각 역시 같은 맥락이다. 초기 조직은 구성원 간 물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오가지만,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집중 공간과 협업 공간을 구분하고 우연에 의존하던 소통을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유니콘 단계에 가까워질수록 공간은 업무 효율을 넘어 조직문화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경영 도구가 된다.
넵스랩이 진행한 고객사 종근당의 오피스
AI 시대, 오피스는 ‘앉는 공간’에서 ‘일하는 공간’으로 바뀐다
넵스랩이 가장 주목하는 변화는 생성형 AI의 확산이다. 강 대표는 AI가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맡게 될수록 사무실의 역할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성과를 바라보는 기준이다.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이 몰입하고 효과적으로 협업했는지가 개인과 조직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변화는 공간 구성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개인 고정 좌석의 비중은 점차 줄어드는 대신 깊이 집중할 수 있는 독립 공간과 빠르게 의견을 나누고 협업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긴 회의를 위한 회의실보다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모이고 다시 흩어질 수 있는 협업 환경이 새로운 오피스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글로벌 기업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해외 선도 기업들은 오피스를 비용이 아니라 인재를 끌어들이고 조직문화를 만드는 전략적 자산으로 바라본다. 어떤 공간에서 일하느냐가 어떤 인재가 모이고,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는지를 결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공간을 비용과 면적 중심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디자인 수준은 빠르게 높아졌지만 공간과 조직문화, 의사결정 구조를 하나의 전략으로 연결하는 관점은 이제 막 자리 잡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결국 AI 시대의 공간 경쟁력은 얼마나 넓은 사무실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더 잘 일하고 더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을 얼마나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강 대표의 생각이다.
넵스랩이 구축한 종근당 스마트오피스는 업무 방식과 조직문화를 반영한 공간 설계를 통해 AI 시대에 맞는 협업 환경을 구현했다.
“결국 공간은 사람을 위한 기술입니다”
넵스랩의 시선은 오피스에만 머물지 않는다. 스마트오피스에서 시작한 공간 혁신은 모듈러 주거와 관광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외국인과 경력단절 여성 고용, ESG 기반 공간 개선 프로젝트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일하는 공간과 사는 공간, 머무는 공간은 서로 다른 시장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람의 삶과 문화를 만드는 하나의 공간이라는 철학이 바탕에 있다.
AI와 데이터 기반 공간 분석, 디지털 트윈 기술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 자체보다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더 나은 공간 경험을 만드는 데 활용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20년 뒤 어떤 회사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강 대표는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답했다.”일하고, 살고, 머무는 모든 공간에서 사람들의 행동과 문화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회사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강 대표가 말하는 공간 혁신은 결국 인테리어 프로젝트가 아니다.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조직문화를 변화시키며, 더 나은 협업과 연결을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AI가 공간을 더 똑똑하게 만드는 시대일수록 공간이 품어야 할 가치는 기술보다 사람이라는 믿음도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사무실과 집, 관광지처럼 용도는 서로 다르지만, 공간이 사람의 경험과 문화를 만든다는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넵스랩이 그리고 있는 미래 역시 같은 방향을 향한다.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더 잘 일하고, 더 편안하게 머물며, 더 건강하게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AI는 그 변화를 더 정교하게 구현하는 도구이고, 공간은 결국 사람을 위한 기술이라는 것이 강 대표의 결론이다.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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