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직장인 한 명이 식당 앞에서 스마트폰을 꺼낸다. 몇 초 뒤 결제가 끝난다. 종이 식권도, 장부 서명도 없다.
이제는 익숙한 장면이지만, 이를 일상으로 만드는 데 식신은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맛집 추천 서비스로 출발한 식신은 현재 하루 26만 명이 사용하는 기업 식대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전국 5만여 개 식당과 1,000여 개 기업을 연결하며 B2B 푸드테크 시장의 대표 기업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안병익 식신 대표는 “직장인 식대 시장은 배달 시장보다 더 크다”며 “아직도 절반 이상이 종이 식권과 수기 정산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그가 바라보는 시장은 단순한 식권 서비스가 아니라 40조 원 규모의 기업 식대 시장 전체다.
안병익 식신 대표가 식신의 모바일 식권 서비스와 AI 기반 푸드 데이터 사업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맛집 데이터에서 식대 시장의 기회를 발견하다”
식신의 출발점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안 대표는 KT 연구개발본부에서 전자지도와 위치기반서비스(LBS)를 담당했다. 이후 창업한 위치기반 체크인 SNS ‘씨온(SeeOn)’에는 1억 5천만 건 이상의 체크인 데이터가 쌓였다. 그 데이터를 분석하던 중 흥미로운 패턴이 발견됐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고 기록하는 장소의 상당수가 음식점이었다. 그렇게 2013년 탄생한 서비스가 맛집 추천 플랫폼 식신이다.
현재 식신은 월간 이용자 350만 명이 남긴 리뷰와 조회수, 클릭 데이터, 평가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전국 75만 개 식당 가운데 약 6,000곳의 별맛집을 선정하고 있다. 해당 데이터는 현대차·기아·제네시스 일부 차량 내비게이션에도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진짜 전환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2014년 현장을 돌아보던 안 대표는 직장인들이 종이 식권을 제출하고 식당 장부에 서명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대였지만 식대 관리만큼은 과거 방식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기업 입장에서도 불편은 컸다. 현금 지급은 급여 처리에 따른 비용 부담이 있었고, 종이 식권은 관리와 정산 과정이 비효율적이었다.
안 대표는 그 순간 식대 시장이 훨씬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5년 출시된 ‘식신e식권’은 그렇게 탄생했다.
휴대전화만으로 결제가 가능하고, 통신 환경이 불안정한 구내식당에서도 결제가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직원들은 원하는 식당에서 자유롭게 식사할 수 있고, 기업은 식대 관리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안병익 식신 대표
“20조 원이 아직 디지털로 전환되지 않았다”
식신의 B2B 사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이후다. 2021년 고객사 350곳, 이용자 10만 명 수준이던 서비스는 현재 고객사 약 1,000곳, 일 이용자 26만 명 규모로 확대됐다. 거래 규모 역시 빠르게 성장했다. 안 대표는 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고 보고 있다.
“직장인 식대 시장은 약 40조 원 규모입니다. 그런데 실제 식대 지원을 받는 기업은 절반 정도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20조 원 가까운 시장이 디지털화되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경쟁력은 네트워크 효과와 락인(Lock-In) 구조다. 현재 식신은 1,000여 개 기업 고객과 5만여 개 식당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기업의 인사·회계 시스템과 식당 네트워크가 연결된 구조이기 때문에 단순히 다른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한 번 도입한 고객이 계속 사용하는 이유도 결국 운영 효율 때문입니다. 식당과 기업, 임직원이 동시에 연결되는 구조는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기업 고객이 늘어날수록 식당 네트워크의 가치도 커지고, 식당이 늘어날수록 기업 이용 만족도 역시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안 대표는 맛집 추천 서비스로 출발한 식신을 기업 식대 플랫폼과 AI 기반 푸드 데이터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이제는 맛집을 검색하는 방식도 바꾸려 한다”
식신이 다음 단계로 준비하는 것은 AI 기반 푸드 데이터 플랫폼이다. 현재 식신은 전국 75만 개 식당과 1,500만 건 이상의 메뉴 데이터를 AI가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정제한 자체 데이터 플랫폼 ‘메타덱스(MetaDex)’를 구축하고 있다.
안 대표는 생성형 AI 시대에 맛집 검색 방식 자체가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사용자가 키워드를 입력하고 결과를 찾아보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AI가 사용자의 의도와 취향, 상황을 이해하고 식당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식신은 AI 기반 검색 서비스인 ‘넥스트 서치(Next Search)’를 준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오늘 저녁 강남역 근처에서 조용하게 미팅하기 좋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고 입력하면 단순 키워드 검색이 아니라 위치와 분위기, 가격대, 방문 목적까지 고려한 결과를 제안하는 방식이다.
또한 올 하반기에는 지역 키워드 기반 로컬 광고 사업도 본격화할 계획이다. 맛집 플랫폼과 기업 식대 플랫폼, AI 데이터 플랫폼을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겠다는 전략이다.
식신은 2024년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예비심사를 자진 철회했다. 밸류에이션과 시장 환경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현재까지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은 약 220억 원이며, 회사는 2027~2028년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식신을 맛집 앱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안병익 대표가 그리고 있는 미래는 단순한 맛집 플랫폼이 아니다. 기업 식대 시장의 디지털 전환, 전국 식당 데이터의 구조화, 그리고 AI 기반 음식 탐색 경험까지. 식신은 지금 ‘어디서 먹을 것인가’를 넘어 ‘음식과 데이터를 연결하는 인프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점심 한 끼를 결제하는 짧은 순간 뒤에는 이미 수십조 원 규모 시장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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