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지키는 기술은 거대한 설비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작업자가 착용하는 마스크 한 장에도 유해물질의 흡입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이 필요하다. 방사성 물질을 취급하는 작업환경에서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방사성 미립자 등으로부터 작업자의 호흡기를 보호하는 일도 중요한 안전관리 과제다.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오랫동안 원전 핵심설비를 관리해 온 방극진 대표가 창업을 통해 처음 선보인 제품은 방호방진 마스크였다. 발전소의 안전성과 설비 신뢰성을 높이는 연구에 참여했던 그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사내벤처 제도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원전 설비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던 기술개발 경험을 작업자가 직접 사용하는 보호장비로 연결한 것이다.
방 대표가 이끄는 드림즈는 한국수력원자력 사내벤처 1호에서 출발한 원자력 재난안전 솔루션 기업이다. 방호방진 마스크를 개발해 산업용 인증을 취득하고 제품 공급을 시작했으며, 이후 방사성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공기정화 기술과 방사선 감지·재난 대응 시스템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현재는 활성탄소섬유를 활용한 원전·소형모듈원자로(SMR)용 융복합 공기정화 필터의 성능과 제조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방사선량 측정정보와 기상·지리정보를 결합해 방사능 누출 상황에서 대피 판단을 지원하는 인공지능 기반 재난안전 플랫폼도 추진하고 있다.
원전 안전설비를 연구하던 기술자, 방호 마스크로 시작한 창업
방극진 대표의 주요 경력은 원전 핵심설비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기술개발에 집중돼 있다.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약 40년간 근무하며 발전소의 안정적인 운전에 영향을 미치는 취약설비를 개선하고, 시험·진단 기술을 개발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원전 주증기차단밸브와 가압기 관련 밸브의 구조 개선, 격납건물 누설률 시험장비 개발 등이 대표적인 연구개발 성과다. 현장의 문제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기술제안과 연구개발 활동을 이어 왔으며, 신지식전력인과 국가품질명장, 한국제안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원전 기술은 새로운 장비를 개발했다고 해서 곧바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설비의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것은 물론, 실제 운전 조건과 기존 장비의 구조, 유지관리 방법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방 대표가 오랫동안 수행해 온 업무 역시 발전소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찾아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실제 설비에 적용하는 일이었다.
그가 연구개발 중심의 경력에서 창업으로 활동 범위를 넓힌 계기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사내벤처 사업이었다. 2018년 시작된 사내벤처 1기 과제에서 방 대표가 개발에 나선 제품은 방호방진 마스크였다. 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한 산업현장의 작업자를 유해물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비로, 그동안 축적한 원전 방호기술을 개인용 보호구에 적용하는 사업이었다.
마스크는 작업자가 직접 착용하는 제품인 만큼 유해물질을 걸러내는 성능뿐 아니라 착용 환경과 호흡 저항, 안전성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드림즈는 융복합 소재를 활용한 방호방진 마스크를 개발하고 산업용 방진마스크 특급·1급 인증을 취득했다.
제품 개발은 실제 공급으로 이어졌다. 한국수력원자력 공식 자료에 따르면 드림즈는 2020년 첫 사내벤처 창업 사례로 소개됐으며, 같은 해 분사창업 협약을 체결했다. 개발한 마스크는 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해 산업현장 등에 공급됐다.
오랫동안 발전소 설비를 연구하던 방 대표에게 창업은 기술개발의 결과를 직접 제품으로 완성하고 시장에 공급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마스크 개발을 통해 제품 인증과 생산, 공급에 필요한 과정을 경험한 그는 이후 공기 중의 방사성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기술로 연구개발 범위를 넓혔다.
방호 마스크에서 원전용 공기정화 필터로, 방사성 요오드 제거기술 개발
방호방진 마스크를 개발한 드림즈가 다음으로 주목한 분야는 발전소의 공기정화 설비였다. 마스크와 원전용 공기정화 장치는 사용 환경과 규모가 다르지만, 공기 중의 유해물질을 걸러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원전 공기정화 설비는 처리해야 하는 공기의 양과 오염물질의 종류, 장시간 운전 조건 등이 달라 별도의 설계와 성능 검증이 요구된다.
원전 공기정화 과정에서 관리해야 하는 물질 중 하나는 방사성 요오드다. 방사성 요오드는 존재하는 화학적 형태에 따라 적합한 제거 방식이 달라지며, 특히 기체상 요오드 화합물은 일반적인 입자 여과재만으로 충분히 제거하기 어렵다. 공기 중 미립자를 걸러내는 기능과 기체상 오염물질을 흡착하는 기능을 함께 구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드림즈가 개발하고 있는 융복합 필터에는 활성탄소섬유(ACF)가 활용된다. 활성탄소섬유는 미세한 기공을 가진 탄소계 섬유 소재로, 기체상 오염물질을 흡착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회사는 여기에 TEDA(트리에틸렌디아민)를 첨착해 요오드 화합물의 흡착 성능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기술개발의 목표는 방사성 요오드를 흡착하는 소재와 미립자를 제거하는 여과재를 결합해 하나의 필터에서 두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다. 소재 단계에서 확보한 성능을 완성된 필터에서도 유지하려면 공기의 흐름과 압력 손실, 온도와 습도 등 실제 사용 조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특히 흡착 소재 자체의 성능이 우수하더라도 실제 공기정화 장치에 적용했을 때 동일한 결과를 얻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처리하는 공기의 양과 오염물질의 농도, 운전 환경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드림즈는 흡착 소재의 특성을 연구하는 동시에 완성 필터의 성능과 내구성을 확인하고, 제조 과정에서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은 기존 원자력발전소뿐 아니라 소형모듈원자로(SMR)에도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과 설비 구성 및 운전 조건이 다를 수 있어, 실제 적용을 위해서는 요구되는 공기정화 성능과 설치 조건에 맞춘 설계가 필요하다. 회사는 필터 제조 공정의 표준화와 성능 검증을 통해 원전 공기정화 기술의 국산화와 사업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방사선 감지에서 대피 경로 안내까지, AIoT 재난안전 기술로 확장
방 대표의 관심은 방사성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소재와 장비에만 머물지 않았다. 원전 사고나 방사능 누출 상황에서는 위험을 감지하는 일뿐 아니라, 주변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전달하는 일도 중요하다.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방사성 물질의 대기 중 확산은 바람의 방향과 속도, 기상 조건 등에 영향을 받는다. 일반적인 재난 경보와 대피 안내만으로는 개인의 위치와 주변 환경 변화에 따른 위험 정보를 세밀하게 전달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방 대표가 인공지능 기반 방사능 재난안전 플랫폼 개발에 나선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다.
“원전 사고나 방사능 누출 시 위급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위치에서 어디로 대피해야 가장 적은 선량에 노출되는가’를 실시간으로 정확히 알려주는 정보”라고 방 대표는 설명했다.
드림즈는 방사선 감지정보와 공공데이터를 연계해 방사능 확산 상황을 분석하고 대피 경로를 안내하는 AIoT 기반 재난안전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무선 방사선 감지기를 통해 확보하는 측정정보와 한국수력원자력이 공개하는 원전 주변 방사선량, 기상청의 풍향·풍속·강수 정보, 공공 대피시설의 위치정보 등을 함께 활용하는 구조다.
회사 측에 따르면 수집한 정보를 처리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방사성 물질의 대기 확산을 분석하는 가우시안 플룸 모델(Gaussian Plume Model)과 시공간 데이터의 변화를 학습하는 ConvLSTM(Convolutional Long Short-Term Memory) 모델을 결합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가우시안 플룸 모델이 기상 조건에 따른 오염물질의 확산을 계산하는 데 사용된다면, ConvLSTM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관측정보와 공간적 변화를 분석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드림즈는 이러한 기술을 통해 방사성 물질의 예상 확산 방향과 위험 구역을 분석하고, 사용자 위치를 고려한 대피 경로를 모바일 기기로 안내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다만 실제 재난 상황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확산 예측의 정확도와 측정정보의 신뢰성, 통신 안정성, 공공 방재체계와의 연계 등을 검증해야 한다. 모델이 제시하는 경로 역시 실제 사고 상황의 모든 변수를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공식적인 재난 대응 지침과 연계된 운영체계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드림즈는 이처럼 작업자가 착용하는 보호장비에서 공기정화 필터, 방사선 감지와 재난 대응 시스템으로 기술개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공기 중 오염물질의 제거와 위험정보의 전달은 서로 다른 기술이지만, 원전 종사자와 주변 지역 주민의 안전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사업 방향이 맞닿아 있다.
기술사업화를 위한 외부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드림즈는 2026년 중소벤처기업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프로젝트(DIPS) 원자력·핵융합 분야 창업기업으로 선정됐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가 지원하는 이 사업을 통해 기술개발과 사업화, 수요기업과의 협력 기회를 확보하게 됐다.
현재 주요 사업화 과제는 활성탄소섬유 기반 융복합 필터의 제조기술을 구체화하고 실제 사용 조건에 맞는 성능을 검증하는 일이다. 개발 중인 필터의 제조 공정을 표준화하고, 원전 및 SMR 분야 수요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적용 가능성을 확인할 계획이다. AIoT 재난안전 플랫폼 역시 실증과 검증을 거쳐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로 발전시키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방 대표는 원자력 기술이 지속적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발전설비 자체의 성능뿐 아니라 작업자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전기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자력 에너지가 인류의 탄소중립과 미래 번영을 위해 지속되려면, 그 무엇보다 국민과 작업자가 피부로 체감하는 압도적인 원전 안전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원전 핵심설비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연구에 참여했던 방 대표는 이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자 보호와 방사능 재난 대응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방호방진 마스크의 제품화에 이어 융복합 공기정화 필터와 AIoT 재난안전 플랫폼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 가운데, 앞으로의 과제는 개발한 기술의 성능을 검증하고 실제 원전 및 재난안전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로 완성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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