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산업이 엔비디아(NVIDIA)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과 스타트업 생태계 역시 그 영향권에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SK하이닉스, 네이버, SK텔레콤 등 주요 기업들과의 협력 논의를 이어갔다. 4일간의 한국 일정을 소화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로 인해 ‘젠슨 황 효과’가 언급되며 AI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피지컬 AI, 로보틱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투자 기대감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젠슨 황의 방한이라는 단일 이벤트보다, ‘AI 풀스택 생태계 주도권 경쟁’으로 확장된 AI 경쟁의 변화된 흐름을 보아야 한다. 쉽게 말해 ‘개별 AI 모델’ 경쟁에서 ‘AI 인프라 경쟁’이라는 거시적 글로벌 흐름 속에서 젠슨 황의 방한이 한국에 가져온 경제적 효과를 점검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젠슨 황 개인이 아니라 그가 상징하는 AI 산업의 변화다. 지금 AI 시장은 개별 모델의 성능 경쟁을 넘어 AI 인프라(GPU·데이터센터·전력·네트워크)의 중요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AI 서비스와 모델 경쟁력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변화는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네이버 1784 사옥에서 방문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네이버)
HBM 다음은 인프라…AI 경쟁의 규칙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 한국 AI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메모리 반도체, 특히 HBM(고대역폭 메모리)에 집중돼 있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핵심 공급망으로 자리 잡으며 AI 붐의 직접적인 수혜를 누려왔다.
하지만 최근 시장의 시선은 한 단계 더 이동하고 있다. GPU를 중심으로 한 연산 능력뿐 아니라 이를 실제로 구동하는 데이터센터, 전력망, 네트워크, 그리고 로보틱스와 스마트팩토리로 대표되는 피지컬 AI까지 포함한 ‘AI 인프라 전체 스택’이 새로운 경쟁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다. AI 경쟁의 규칙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보면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GPU와 CUDA(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 기반 개발 환경을 활용해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이고 빠르게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과거보다 훨씬 적은 자본과 인력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반면 장벽도 높아지고 있다. 고성능 GPU 확보 비용은 여전히 높고, 클라우드 사용료 역시 스타트업에게는 부담이다. 모델 규모가 커질수록 인프라 비용도 급격히 증가한다. 결국 AI 산업에서는 알고리즘뿐 아니라 연산 자원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엔비디아 CUDA 생태계에 대한 의존성이다. 현재 생성형 AI 시장의 상당수는 엔비디아 플랫폼 위에서 작동한다. 단기적으로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 종속이라는 과제를 안게 된다.
글로벌 ‘AI 인프라 경쟁’은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영향이 크다. (출처: AI 생성 이미지)
한국이 마주한 질문…수혜자를 넘어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까
한국은 분명 강점을 가진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피지컬 AI 분야의 현대차·LG·두산, 플랫폼과 클라우드 인프라를 보유한 네이버·KT·NHN클라우드까지 AI 산업 전반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이 함께 존재한다. 이러한 산업 구조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조합이다.
문제는 플랫폼이다.
현재 AI 생태계의 중심에는 엔비디아 CUDA와 같은 소프트웨어·하드웨어 통합 플랫폼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 플랫폼 위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동시에 플랫폼 의존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만약 이 구조가 고착된다면 한국은 AI 하드웨어와 제조 공급망의 핵심 참여자로 남을 수는 있어도, 정작 플랫폼 주도권은 확보하지 못하는 위치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 AI 주권에 대한 고민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한국 스타트업과 자본시장이 마주한 질문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인프라를 빌려 쓸 것인가, 일부라도 내재화할 것인가. 글로벌 플랫폼에 최적화할 것인가, 독자적인 기술 스택을 구축할 것인가. 그리고 단기 성장과 장기 자립성 가운데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가다.
지금까지는 빠른 실행과 글로벌 진출이 사실상 정답에 가까웠다. 하지만 AI 인프라 시대에는 ‘속도’만큼 ‘통제력’이 중요한 경쟁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어떤 인프라 위에서 서비스를 만들고, 어떤 기술에 의존하며, 어느 수준까지 기술 역량을 내재화할 것인지가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한국이 마주한 질문은 단순히 엔비디아 생태계의 수혜자가 될 것인가에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AI 생태계와 함께 성장하면서도 일부 영역에서는 독자적인 경쟁력과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략적 선택의 문제다.
벤처 생태계가 함께 풀어야 할 세 가지 의제이다. (출처: AI 생성 이미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43년 전의 선택
돌이켜보면 43년 전인 1983년 2월 8일,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던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다. 조립 위주로 발전해 온 한국 산업 구조 속에서 반도체가 국가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산업이라고 판단했고, 이른바 ‘도쿄 선언’을 통해 사업보국(事業報國)의 길을 선택했다.
당시에는 무모해 보였던 결정이었지만, 그 선택은 결국 한국을 세계적인 반도체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HBM과 첨단 반도체 산업의 토대가 됐다.
젠슨 황의 방한이 던진 의미 역시 여기에 있다. 그의 방문은 단순한 기업 간 협력이나 투자 기대감을 넘어, AI 시대 한국이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졌다.
AI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제 중요한 것은 참여 여부가 아니다. 글로벌 AI 생태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영역의 주도권을 확보할 것인가. 한국의 다음 40년을 결정할 선택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반도체사업은 인구 1억 이상, GNP 1만 달러 이상, 국내 소비 50% 이상이 되어야 가능한 사업이지만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반도체사업 진출 결심 6개월 만인 1983년 12월 1일,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출처: AI 생성 이미지)
 
자료 출처_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삼성반도체뉴스룸의 ‘삼성 반도체사업 40년, 도전과 창조의 역사’, 삼정KPMG 경제연구원의 ‘산업과 시장을 바꾸는 AI 수익 기회 및 비즈니스 모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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