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리더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팀원이 가져온 보고서는 제법 그럴듯하다. 문장은 매끄럽고 표도 보기 좋게 정리돼 있다. 그런데 몇 장을 넘겨도 회사가 정말 알고 싶은 답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보고서의 모양은 갖춰졌지만, 그 안에서 팀원이 무엇을 고민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 만난 한 리더도 비슷한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20대 팀원이 보고서를 가져왔는데 읽어 보니 알맹이가 없었습니다. AI가 쓴 것 같아서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썼어?’라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더 답답한 건 그다음입니다. 제가 피드백을 주면 그 내용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프롬프트에 넣고 다시 돌려옵니다.”
형식만 보면 보고서는 예전보다 좋아졌다. 필요한 항목도 빠짐없이 들어 있고 한눈에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정돈돼 있다. 하지만 단정한 문장 뒤에 있어야 할 생각의 흔적은 흐릿하다. 어떤 자료를 중요하게 봤는지, 무엇을 기준으로 결론을 내렸는지, 다른 가능성은 검토했는지 알기 어렵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리더는 자연스럽게 “요즘 팀원들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팀원의 태도만 지적해서는 상황이 달라지기 어렵다. 판단에 필요한 기준을 충분히 전달받지 못한 상태에서 결과물부터 요구받았다면, 팀원 역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편에서는 AI가 실무를 덜어줄수록 리더와 팀원이 일의 맥락을 맞추는 대화가 더 중요해진다는 이야기를 나눴다면, 이번에는 그 대화가 실제 피드백 장면에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그럴듯한 보고서에 판단이 빠지는 이유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썼어?”라는 질문에는 사실 “어떤 판단을 거쳤니?”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판단에 필요한 정보와 회사의 사정을 충분히 듣지 못했다면 팀원은 선뜻 답하기 어렵다.
리더가 “다음 주까지 경쟁사 분석을 정리해 와”라고 요청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문장은 거의 그대로 AI에 입력될 가능성이 크다. AI는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경쟁사 분석 항목을 찾아 빠르게 보고서를 만들어 준다. 주요 경쟁사를 나열하고 기능과 가격을 표로 비교한 뒤, 마지막에는 그럴듯한 시사점도 붙여준다.
크게 틀린 내용은 없다. 그래서 더 애매하다.
그 안에는 우리 회사가 왜 이 보고서를 필요로 하는지, 어떤 결정을 앞두고 있는지, 현재 어떤 제약을 안고 있는지가 빠져 있다. 신제품 가격을 정하려는 것인지, 투자자에게 시장성을 설명하려는 것인지, 영업 전략을 다시 세우려는 것인지에 따라 필요한 분석은 달라져야 한다. 목적을 모르는 AI는 가장 일반적인 답을 내놓고, 맥락을 모르는 팀원은 그 답이 우리 회사에도 쓸모가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리더가 보고서를 읽으며 알맹이가 없다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료가 부족해서라기보다 회사의 현실과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드백을 준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 표는 빼고 그래프로 바꿔”, “결론을 앞으로 옮겨”, “사례를 조금 더 추가해”와 같은 수정 지시는 AI에 다시 입력하기 좋은 문장이 된다.
과거에는 이런 지시를 실행하려면 팀원이 자료를 다시 열어보고 며칠 동안 고민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놓친 부분을 발견하고 업무를 학습하기도 했다. 지금은 같은 수정이 몇 초 만에 끝난다. 팀원의 입장에서는 리더의 말을 AI에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이런 왕복이 반복되면 리더가 사실상 프롬프트를 대신 작성하고, 팀원은 그 내용을 AI에 옮기는 역할을 맡게 된다. 보고서는 조금씩 좋아지지만 팀원의 판단력은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리더가 “매번 내가 다 해주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보고서를 고치는 일과 사람을 성장시키는 일은 같지 않다. 수정 지시는 결과물을 바꿀 수 있지만, 그 수정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된다.
수정 사항보다 먼저 건네야 할 판단의 근거
해티와 팀펄리의 피드백 모델은 효과적인 피드백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현재 어디까지 왔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물의 잘잘못만 지적하는 피드백은 눈앞의 과업을 수정하는 데 그치기 쉽다.
필자는 여러 기업의 HR 현장에서 이 흐름을 적용하면서 조직의 현실을 설명하는 ‘맥락’을 함께 전달해 왔다.
목적은 이 일을 왜 요청했는지를 알려주는 말이다. 맥락은 그 요청이 나오게 된 조직의 사정을 설명한다. 진단은 현재 결과물이 어디에서 어긋났는지를 짚어주고, 방향은 어떤 관점으로 다시 살펴봐야 하는지를 제안한다.
이 네 가지는 따로 외워서 전달하는 항목이라기보다 하나의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 리더가 먼저 이 일을 요청한 이유와 회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그 기준에 비춰 현재 결과물의 부족한 부분을 짚은 다음 다시 살펴볼 방향을 건네는 흐름이다.
실제 피드백은 대개 진단에서 시작한다. 결과물이 눈앞에 있으니 부족한 부분부터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내용이 뻔하다”, “논리가 약하다”, “이 정도로는 회의에서 쓰기 어렵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그러나 목적과 맥락을 건너뛴 진단은 팀원에게 수정 목록으로만 들리기 쉽다. 팀원은 왜 바꿔야 하는지를 이해하기보다 어디를 바꿔야 하는지만 메모한다. 그리고 그 메모는 다시 AI의 프롬프트가 된다.
짧은 대화라도 목적과 맥락을 충분히 설명해 주면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진다. 팀원은 수정 지시를 수행하는 사람에서, 회사가 필요로 하는 답을 함께 찾는 사람으로 한 걸음 이동한다.
리더의 피드백은 목적과 맥락을 공유하고, 결과물의 문제를 진단한 뒤 다시 살펴볼 방향을 제시하는 흐름으로 이어져야 한다. (출처: AI 생성 이미지)
맥락이 담긴 몇 분이 질문의 수준을 바꾼다
기존의 피드백은 대개 이렇게 끝난다.
“경쟁사 분석이 너무 뻔한데? 조금 더 깊이 있게 다시 해 와.”
이 말을 받은 팀원은 ‘경쟁사 분석을 더 깊이 있게 작성해 달라’고 AI에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AI는 시장 전망을 덧붙이고 사례를 늘려 보고서를 더 길게 만들어 줄 것이다. 표도 정교해지고 문장도 전문적으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회사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답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같은 상황에서도 일의 목적과 배경, 현재 결과물의 문제, 다시 살펴볼 방향을 함께 설명하면 대화는 달라진다.
“이 보고서는 다음 달 신제품 가격을 결정하려고 요청한 겁니다. 현재 우리 원가로는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고서는 기능 비교표에서 끝나 있어 가격 회의의 근거로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경쟁사가 최근 2년간 가격을 내리지 않은 이유를 원가와 브랜드, 유통 관점에서 각각 확인해 보세요.”
말하는 데 몇 분이 더 걸릴 수 있다. 대신 팀원은 이 보고서가 어디에 사용되는지 이해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자료를 살펴봐야 하는지 알게 된다.
이제 팀원이 AI에 던지는 질문도 달라진다. 단순히 경쟁사의 기능과 가격을 정리해 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경쟁사가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과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게 된다. AI가 내놓은 답이 회사의 현실과 맞는지도 비교해 볼 수 있다.
리더가 몇 분 동안 설명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지도를 건넨 것에 가깝다. 팀원은 그 지도를 바탕으로 어디를 살펴봐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같은 보고서를 두세 번 다시 받는 일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다만 리더가 조사 방법이나 프롬프트까지 모두 만들어 줄 필요는 없다. 다시 살펴볼 방향을 설명한 뒤에는 팀원이 스스로 판단할 여지를 남겨야 한다.
“이 결론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이유를 들까요?”
이런 질문을 덧붙이면 팀원은 AI가 정리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안에 빠진 관점과 근거를 다시 찾기 시작한다. 경쟁사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고, 고객이나 영업 조직이 제기할 수 있는 반론도 검토하게 된다.
정답을 바로 알려주면 그 보고서는 빨리 완성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경험하게 하면 다음 보고서를 만드는 방식이 달라진다. 피드백이 결과물 하나를 고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팀원의 판단 기준으로 남는 것이다.
리더가 남겨야 하는 것은 판단의 기준이다
팀원이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는 그에 앞서 판단할 기준을 충분히 전달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준이 불분명하면 팀원은 AI가 제시한 답에 의존하기 쉽다. 반대로 목적과 맥락이 분명하면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회사의 상황에 맞는지 비교하며 활용할 수 있다.
AI 활용 능력의 차이는 프롬프트를 얼마나 능숙하게 작성하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조직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무엇을 좋은 결과로 볼 것인지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리더가 모든 답을 대신 작성할 필요는 없다. 팀원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일의 배경과 기준을 건네면 된다.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말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왜 고쳐야 하는지와 어떤 관점으로 다시 살펴봐야 하는지를 함께 설명하는 것이다.
리더 역시 자신이 어떤 맥락을 어디까지 설명했는지 매번 기억하기는 어렵다. 면담과 피드백을 기록으로 남기고, 어떤 설명이 팀원의 판단을 도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기록이 쌓이면 리더의 코칭 방식도 개인의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조직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될 수 있다.
AI가 빠르게 결과물을 만드는 시대에는 완성된 보고서가 업무의 끝이라기보다 대화의 시작에 가까워지고 있다. 리더는 그 결과물에서 빠진 맥락을 짚고, 팀원은 그 맥락을 바탕으로 AI의 답을 다시 판단해야 한다.
앞으로 리더에게 필요한 능력도 답을 누구보다 빨리 내놓는 데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팀원이 더 나은 질문을 만들고 자기 판단을 설명할 수 있도록 돕는 힘이 그만큼 중요해지고 있다. 그 과정을 거친 팀원에게 AI는 생각을 대신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의 범위를 넓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김경민 대표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스타트업과 자산운용사를 거치며 비즈니스 현장의 경험을 쌓았다. 현재 리버스마운틴 대표로 사내 1대1 대화 AI 솔루션 ‘오블릿’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과 함께 조직 내 소통 체계를 연구하며, 대화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성원의 성장과 조직 성과 향상을 지원하는 컨설팅과 리더십 교육, 코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직원 한 명이 퇴사했는데 업무 전체가 마비됐습니다. 인수인계 파일도 받았지만 소용이 없네요.”
다음 편에서는 AI로 여러 명의 몫을 해내던 핵심 직원이 떠난 뒤에도 그 업무 방식이 조직에 남지 않는 이유와 개인의 머릿속에 축적된 노하우를 조직의 자산으로 옮기는 방법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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