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시장이 살아났다.”
숫자만 보면 맞는 말이다. 2026년 5월 국내 스타트업·중소기업 투자 규모는 3조3,549억원을 기록했다. 두나무의 2조원대 대형 거래를 제외하더라도 약 1조원 수준의 투자금이 집행됐다. 투자 시장 침체가 본격화된 2022년 이후 처음으로 3개월 연속 월간 투자 규모 1조원을 넘어선 기록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들리는 분위기는 다르다. 투자금이 늘어난 것과 스타트업이 투자받기 쉬워진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 시장은 ‘회복’보다 ‘집중’에 가깝다. 투자금은 특정 산업과 특정 창업팀, 특정 기술 영역으로 빠르게 몰리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분야를 중심으로 한 딥테크 스타트업이 자본시장의 절대적인 선택을 받고 있다.
더브이씨(The VC)가 발표한 2026년 5월 투자 통계는 현재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숫자가 말하는 것은 단순한 투자 회복이 아니다. ‘누구에게 투자할 것인가’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준이 과거보다 훨씬 좁고 명확해졌다는 사실이다.
더브이씨(The VC), 한국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 대상 투자 건수 및 금액 발표 (자료 제공: 더브이씨)
투자금은 늘었지만, 자금은 더 선택적으로 흐른다
2026년 들어 국내 투자 시장은 분명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5월 한 달 동안 집행된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 투자금은 총 3조3,549억원이다. 특히 두나무 구주 인수 거래를 제외해도 약 9,950억원 규모가 투자되며 월간 1조원 수준을 유지했다. 올해 들어 3개월 연속 월간 투자 규모가 1조원을 넘긴 것은 투자 혹한기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투자금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다르다. 투자자들은 더 이상 시장 전체에 고르게 자금을 배분하지 않는다. 대신 일부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몰아주는 방식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초기 투자 시장이다. 올해 5월까지 시드~시리즈A 단계에서 100억원 이상 투자받은 초기 빅딜은 31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한 수치다. 투자 금액은 8,292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69% 급증했다.
더 주목할 부분은 비중이다. 올해 전체 초기 투자금의 75%가 100억원 이상 규모의 초기 빅딜에 집중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45%였던 비중이 1년 만에 크게 높아졌다.
초기 투자 시장마저 ‘선택과 집중’ 구조로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그 중심에는 AI와 로보틱스가 있다. 올해 시드 투자 건수 가운데 43%가 AI·로보틱스 분야에 집중됐다. 사실상 초기 투자 시장의 절반 가까이가 AI 스타트업에 몰린 셈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AI라는 산업 키워드만이 아니다. 최근 대형 시드 투자를 유치한 기업들을 보면 서울대학교, 카이스트 등 주요 연구기관 출신 연구자들이 창업한 딥테크 스타트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아스테로모프와 컨피그인텔리전스는 시드 단계임에도 각각 400억원대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과거 같으면 시리즈A나 시리즈B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규모다. 이는 투자자들이 불확실성이 커진 시장에서 기술력뿐 아니라 창업자의 연구 역량과 실행 가능성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시장 규모와 성장 가능성이 투자 포인트였다면 지금은 누가 이 기술을 실제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며 “좋은 아이디어보다 좋은 팀에 투자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현재 투자 시장의 핵심은 산업 자체보다도 검증된 창업자와 실행력 있는 조직에 자본이 집중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금융권까지 확산된 선점 경쟁…투자 시장의 기준도 달라졌다
5월 투자 시장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디지털 자산 분야다. 최근 디지털 자산 제도화 논의와 금산분리 규제 완화 기대감이 커지면서 금융권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대표 사례가 두나무와 코인원이다. 삼성증권, 한화투자증권, 하나금융지주 등이 참여한 두나무 구주 인수 거래는 약 2조2,160억원 규모로 진행됐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약 1,600억원 규모의 코인원 지분 인수에 참여했다. 이는 단순 재무적 투자가 아니라 가상자산 거래소를 미래 디지털 금융 인프라로 보고, 선제적으로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투자 성격이 강하다.
과거 은행과 증권사가 핀테크 스타트업을 관망했다면, 이제는 디지털 자산 생태계의 핵심 플레이어를 직접 확보하려는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현재 투자 시장이 단순히 회복 국면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더브이씨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투자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자금이 모든 기업에 고르게 공급되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현재 시장은 과거보다 훨씬 선별적이다. AI·로보틱스 같은 딥테크 분야, 검증된 연구자 창업팀, 글로벌 확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자금이 집중되고 있다. 반면 비딥테크 분야나 명확한 차별성을 증명하지 못한 초기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 환경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투자 시장의 회복은 분명 반가운 신호다. 하지만 지금 시장이 보내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좋은 아이디어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투자자들은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실제 사업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과 조직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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