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임상 데이터 표준화 컨퍼런스서 동양권 첫 포스터 발표
지난 5월 20~21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콰크 호텔 밀라노(Quark Hotel Milano)에서 ‘2026 CDISC EU Interchange’의 메인 세션이 열렸다. 전 세계 제약·바이오 전문가와 규제기관 관계자 1,400여 명이 모인 유럽 최대 규모의 임상 데이터 표준화 컨퍼런스다. 제이앤피메디는 이 자리에서 공식 포스터 세션 발표자로 선정됐다. 동양권 기업이 포스터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DISC 포스터에 선정된다는 건 상당히 혁신적이거나, 기술적 진전이 있거나, 헬스케어 산업에 기여해야 가능하다. 올해 선정된 포스터는 20편으로 경쟁률이 매우 높았다.
CDISC는 매년 임상 데이터 표준화의 최신 동향을 공유하는 ‘인터체인지(Interchange)’ 컨퍼런스를 연다. 그중에서도 유럽에서 열리는 EU 인터체인지가 가장 규모가 크다. 제이앤피메디는 지난해부터 이 무대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번 포스터는 한림대학교 손대순 교수와의 산학 공동 연구로 완성됐으며, 제이앤피메디가 그리는 미래의 임상시험 운영 모델을 담았다.
제이앤피메디에서 임상 데이터 표준화 업무를 이끄는 이현수 상무를 인천 송도 소재 제이앤피메디 사무실에서 만나 ‘CDISC EU Interchange’ 공식 포스터 세션 선정의 의미와 제이앤피메디의 ‘제로 서브미션’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임상시험의 최종 결과물인 결과보고서를 만들기 위한 데이터 관리와 통계 분석이 이현수 상무의 전문영역이다. 제약회사와 CRO(임상시험수탁기관)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제이앤피메디에서는 데이터 매니지먼트와 통계 업무, 그리고 CDISC 대응을 맡고 있다.
제이앤피메디 이현수 상무
‘표준’을 만드는 사람들, CDISC
“CDISC는 한마디로 표준이에요. 어느 나라, 어느 제약회사, 어느 CRO가 만들어도 똑같아야 하고, 누가 봐도 검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임상시험에서 성별을 누구는 ‘성별’, 누구는 ‘젠더’, 또 누구는 ‘섹스’라고 제각각 적으면 안 되거든요. 이런 걸 전부 통일시키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CDISC(Clinical Data Interchange Standards Consortium)는 임상시험 데이터의 국제 표준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글로벌 비영리 기구다. 임상 연구 데이터가 회사와 국가마다 제각각 만들어지던 ‘무질서’를 정리하기 위해 1997년 출범했다. 데이터 구조를 정의하는 SDTM, 통계 분석용 데이터인 ADaM 등 임상시험 전 주기를 관통하는 표준을 제시한다. 미국 FDA는 2016년 12월부터 의약품 허가 신청 시 CDISC 표준에 맞춘 데이터 제출을 의무화했고, 일본 PMDA 등 주요 규제기관도 이를 요구한다. 사실상 CDISC 포맷을 따르지 않으면 해외 규제기관에 임상시험 자료를 제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CDISC 표준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일본·중국까지도 일부 임상시험은 CDISC 포맷에 맞춰 제출해야 합니다. 이 포맷을 따르지 않으면 제출 자체를 못 해요.”
제이앤피메디가 CDISC에 주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CDISC는 미국과 유럽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CDISC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규제기관은 이미 다 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나라가 의무화하는 순간이 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포스터에 담긴 미래, ‘제로 서브미션’
이번에 선정된 포스터의 제목은 ‘스냅샷을 넘어: 2041년 연속형 규제 데이터 생태계를 통한 제로 서브미션의 실현(Beyond Snapshots: Realizing “Zero-Submission” through a Continuous Regulatory Data Ecosystem in 2041)’이다.
핵심은 ‘제로 서브미션’이다. 임상시험에서 ‘서류 제출(Submission)’이라는 행위 자체를 사라지게 하겠다는 개념으로, 제이앤피메디가 만든 용어다.
“임상시험은 보통 10년 이상 길게 진행됩니다. 그동안 모든 게 문서화되고 증빙돼야 하죠. 결과가 잘 나오면 그 자료를 전부 모아서 규제기관에 제출해야 하는데, 그게 전부 새로 만들어야 하는 문서 작업이고 사람이 일일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저희는 이걸 시스템으로 처리해서, 사람 손을 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디지털로 작업하게 하겠다는 거예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따로 하지 않고, 작업한 내용을 컴퓨터에 올리면 그대로 규제기관까지 전달할 수 있는 거죠.”
이 비전은 제이앤피메디가 지향하는 비즈니스 그 자체다. 지금도 임상시험은 각 영역의 전문가가 일일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다루고, 통계 분석도 사람이 직접 처리한다. 제이앤피메디는 그 통계 분석을 자사 솔루션 안에서 AI로 처리하는 단계까지 와 있다. 내년이면 통계학자의 손을 거의 거치지 않는 수준까지 개발한다는 목표다. 이 모든 비전을 한 제품에 압축한 것이 바로 ‘메이븐 컨버터(Maven Converter)’다. 다양한 EDC(전자 데이터 수집 시스템 Electronic Data Capture, 임상시험에서 환자의 데이터를 종이 증례기록지(CRF) 대신 전자 시스템으로 수집·관리하는 소프트웨어를 말함)에서 수집한 원시 데이터를 코딩 없이 클릭만으로 국제표준(SDTM)으로 변환하고, 규제기관 제출용 파일까지 자동으로 구성하는 엔드투엔드 솔루션이다.
‘메이븐 컨버터’, 변환을 넘어 통계 분석까지…‘레고 블록으로 짓는 집’
신약 하나가 환자에게 도달하기까지는 보통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그 긴 여정의 끝에는 또 한 차례의 거대한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임상시험 기간 내내 쌓아온 데이터를 규제기관이 정한 표준 양식에 맞춰 다시 가공하고, 검증하고, 수천 페이지의 문서로 묶어 제출하는 일이다. 이 과정은 대부분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의 손을 거친다. 사람이 일일이 포맷을 바꾸고, 통계를 다시 돌리고, 문서를 새로 만든다. 그래서 느리고, 비싸고, 오류에 취약하다.
메이븐 컨버터는 임상시험에서 얻은 원천 데이터를 CDISC SDTM 표준에 맞춰 변환하고, 통계 분석까지 완료해 주는 솔루션이다. 현재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이 작업의 상당 부분을 사람이 직접 하드코딩으로 수행한다. 메이븐 컨버터는 이 과정을 AI로 자동화한다.
“메이븐 컨버터가 내년이면 임상시험 프로토콜 작성부터 결과보고서 작성까지 디지털화하는 단계로 갈 예정입니다.”
이 상무는 메이븐 컨버터가 제이앤피메디의 임상 솔루션 생태계 안에서 작동하는 핵심 고리라는 점도 설명했다. 임상시험 데이터를 수집·관리하는 메이븐 CDMS에 데이터가 쌓이면, 메이븐 컨버터가 이를 불러와 표준 변환과 통계 분석, 문서 완성 작업을 이어간다. 약물 부작용·안전성 데이터를 모아 규제기관에 자동 보고하는 메이븐 세이프티 등 임상시험 전 과정을 아우르는 솔루션 포트폴리오가 그 배경에 있다.
자동화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이 상무는 레고 블록에 빗대 설명했다.
“레고 블록이 있으면 집을 잘 지을 수 있잖아요. 그 레고 블록 하나하나가 바로 데이터입니다. 그래서 그걸 전부 통일시켜야 해요. 블록 하나가 혈압이라면 수축기 혈압(SBP), 이완기 혈압(DBP)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정의해 놓는 거죠. 간단해 보이지만, 항암제만 해도 췌장암·위암처럼 종류별로 전부 영어로 표준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CDISC가 이미 다 해놨어요. 자동화를 하려면 먼저 표준화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 표준화를 CDISC가 수십 년에 걸쳐 끝내 놓은 겁니다.”
이 상무의 표현에 따르면, 데이터라는 레고 블록은 CDISC가 규격을 정해 차곡차곡 쌓아 두었고, 제이앤피메디는 그 블록을 가져다 자사 솔루션으로 집을 짓는 셈이다. 데이터 매니지먼트와 통계 분석을 거쳐 최종 결과물까지 전체를 솔루션이 자동으로 수행한다.
‘정적 스냅샷’에서 ‘연속형 규제 데이터 생태계’로
제이앤피메디가 풀려는 문제의 핵심은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 그 자체에 있다. 지금의 임상 데이터 제출은 ‘정적 스냅샷(Static Snapshot)’ 방식이다. 임상시험이 끝나는 특정 시점에 맞춰, 그동안의 데이터를 사진 찍듯 한 번에 묶어 표준 포맷으로 변환해 제출했다.
“임상시험이 끝나면 그 시점에 맞춰 데이터를 전부 변환해야 합니다. 수억 원의 비용을 들여 수개월에 걸쳐 표준화 작업을 하죠. 끝난 시점의 데이터라 정적인 거예요. 반면 저희는 솔루션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표준에 맞게 세팅해 둡니다. CDISC에서 표준 버전이 올라가도 자동으로 반영되고, 한 번 세팅하면 임상시험이 끝날 때까지 계속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손을 거의 타지 않아요.”
이것이 ‘연속형 규제 데이터 생태계(Continuous Regulatory Data Ecosystem)’의 개념이다. 데이터를 특정 시점에 가공해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규제기관이 검증된 데이터 생태계에 직접 접속해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구조다.
이 구조가 빛을 발하는 지점은 ‘수정’이다. 임상시험에서는 끝날 때까지 데이터가 계속 바뀌고, 그 변경 내역은 모두 증빙으로 남겨야 한다. 이 상무는 혈압 데이터를 예로 들었다.
“혈압이 160으로 기록됐는데 나중에 검토해 보니 150이었다고 하면, 지금은 병원에서 다시 확인하고, 문서를 전부 수정하고, 분석을 처음부터 다시 합니다. 그걸 사람이 하니까 몇 년이 걸려요. 식약처 검토 과정에서 데이터나 문서를 수정해야 하면 그것만으로 반년 이상 걸리기도 하고요. 신약이 늦게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제로 서브미션 방식에서는 ‘150’이라고 한 번만 고쳐 입력하면, 문서부터 분석까지 전부 자동으로 다시 반영됩니다. 앞에서 하나를 고치면 뒤가 전부 따라 수정되는 거죠. 임상시험에서 말하는 데이터 무결성(Data Integrity)을 이렇게 확보하는 겁니다. 물론 모든 변경 이력은 누가, 언제, 왜 바꿨는지 빠짐없이 추적·기록됩니다.”
정적인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며 스스로 갱신되는 데이터의 흐름. 그것이 제이앤피메디가 그리는 그림이다.
제로 서브미션은 솔루션만으로는 안 되고, AI가 함께 필요하다. 회사마다 자료의 양식과 포맷이 다르고, 임상시험 자료 중에는 아직 종이 문서도 많다. 이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디지털화하는 것부터가 과제인데, 사람이 일일이 할 수 없는 이 작업을 AI가 맡는다.
다만 이 상무가 보는 AI의 역할은 분명하게 한정돼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표준에 맞게 추리고 정리하거나, 제각기 다른 의약 용어를 통일된 코드로 바꾸는 ‘메디컬 코딩’을 돕는 정도다. 메이븐 컨버터에는 이미 이런 기능의 AI가 일부 탑재돼 있다.
지난 5월 20~21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콰크 호텔 밀라노(Quark Hotel Milano)에서 열린 ‘2026 CDISC EU Interchange’에서의 이현수 상무(좌)와 송지웅 Consultant(우)
밀라노의 학회장 한쪽 벽에 붙은 한 장의 포스터는 소박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임상시험에서 ‘제출’이라는 단어를 지우겠다는, 결코 작지 않은 선언이 담겨 있었다. 표준을 따라가던 자리에서 표준의 미래를 함께 그리는 자리로 옮겨선 제이앤피메디. 식약처가 CDISC의 문을 여는 날, 제이앤피메디가 쌓아온 걸음마의 시간이 어떤 도약으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The post 제이앤피메디 이현수 상무, 지난달 ‘CDISC EU Interchange’에서 ‘제로 서브미션’ 로드맵 발표 appeared first on 벤처스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