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로봇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다른 질문이 궁금했습니다. 로봇이 멈추면 누가 고치죠?”
서빙 로봇이 식당을 누비고 물류 로봇이 창고를 오간다. 산업 현장 곳곳에서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봇이 늘어날수록 더 중요해지는 문제가 있다. 운영과 유지보수다. 아이펠스(IFLS) 조현민 대표는 바로 그 지점에 주목했다. 로봇 제조 기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운영 인프라의 가치가 커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지금 로봇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로봇이 멈추지 않도록 만드는 회사를 만들고 있다.
아이펠스(IFLS) 조현민 대표. LG전자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생성형 AI 확산 이후 로봇 운영·유지보수(RobotOps) 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해 로봇 통합 운영 플랫폼 ‘BotVector’를 개발했다.
ChatGPT가 바꿔놓은 창업 계획
조 대표는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Texas State University)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LG전자에서 9년 동안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창업은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목표였다. 그는 사업을 하기 전에 먼저 큰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배우고 싶었고, LG전자는 그에게 기술과 조직 운영을 동시에 익힐 수 있는 학교 같은 곳이었다고 회상했다.
LG전자에서 보낸 시간은 창업에 대한 확신도 키워줬다. 대기업은 충분한 자원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멀리 갈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방향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반면 작은 조직은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했다.
“대기업은 멀리 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반대로 작은 조직은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죠.”
창업 초기 아이펠스는 지금과 전혀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필리핀 개발 인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소프트웨어 인재를 공급하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ChatGPT 등장 이후 상황은 빠르게 달라졌다. 생성형 AI가 단순 개발 업무를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조 대표는 이 변화를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닌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전환점으로 받아들였다.
“단순 개발 업무가 AI로 대체되는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이 방향으로는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업 모델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한 그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에 도달했다. 소프트웨어 AI 이후에는 무엇이 올 것인가. 그가 내린 결론은 피지컬 AI(Physical AI), 즉 로봇이었다.
로봇 시장을 분석하던 과정에서 또 하나의 기회를 발견했다. 수많은 기업과 투자자들이 로봇 제조 기술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이미 현장에 설치된 로봇을 관리하고 유지보수하는 영역은 상대적으로 비어 있었다. 조 대표는 이 시장이 앞으로 로봇 산업 성장과 함께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모두가 로봇을 만들 때, 아이펠스는 운영을 봤다
이때 떠오른 것이 LG전자 시절 직접 경험했던 OTA(Over-the-Air) 기술이었다. OTA는 제품 출시 이후에도 원격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버그를 수정하고 기능을 개선하는 기술이다. 수천만 대 규모의 디바이스에 적용되며 검증된 기술이지만, 작은 오류 하나가 전체 시스템 장애로 이어질 수 있는 고난도 영역이기도 하다.
아이펠스는 여기에 AI 기반 예측 유지보수(Predictive Maintenance)와 멀티브랜드 통합 관제 기능을 결합해 로봇 운영 플랫폼 ‘BotVector’를 개발했다.
BotVector는 세 개의 핵심 엔진으로 구성된다. 현장 기술자 방문 없이 무중단 소프트웨어 배포를 지원하는 디바이스 관리 시스템(Device Management System, DMS), AI 기반 장애 예측 및 유지보수 기능을 제공하는 라이프사이클 관리 시스템(Lifecycle Management System, LMS), 제조사와 관계없이 로봇을 통합 관리하는 중앙관제 시스템(Central Monitoring System, CMS)이다.
조 대표는 경쟁사와의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했다.
“기존 플랫폼이 로봇을 ‘보는’ 플랫폼이라면 우리는 로봇을 ‘관리하는’ 플랫폼입니다.”
글로벌 로봇 운영 플랫폼 기업인 인오빗(InOrbit), 포먼트(Formant)나 국내 클로봇(Clobot) 등이 관제와 모니터링 중심이라면, BotVector는 실제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술자가 현장에 방문하지 않아도 원격으로 소프트웨어를 배포하고, AI가 장애를 사전에 예측하며, 다양한 제조사의 로봇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통합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조현민 아이펠스(IFLS) 대표는 “모두가 로봇을 만드는 데 집중할 때, 우리는 로봇이 멈추지 않도록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RobotOps 인프라 레이어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레퍼런스로 증명한 기술력, 북미 시장으로 확장
아이펠스의 강점은 단순한 기술 설명보다 실제 레퍼런스에 있다. 회사는 LG에너지솔루션의 글로벌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ESS) OTA 플랫폼과 LS일렉트릭(LS ELECTRIC)의 산업용 OTA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며 기술력을 검증받았다.
조 대표는 “수년간 축적한 운영 데이터와 엔터프라이즈 레퍼런스는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진입장벽”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경험은 LG전자와의 소프트웨어 솔루션 마스터 공급 계약으로 이어졌다. 아이펠스는 단순 공급업체가 아니라 LG전자 OTA 솔루션의 글로벌 구축과 운영을 담당하는 파트너 역할을 맡고 있다. 컨설팅부터 구축, 운영, 유지보수까지 제품 생애주기 전반을 책임지는 구조다.
북미 진출의 핵심 파트너는 실리콘밸리 기반 로봇 기업 베어로보틱스(Bear Robotics)다. 조 대표는 특히 LG전자, 베어로보틱스, 아이펠스가 함께 움직이는 협력 구조에 주목한다.
로봇 제조사는 로봇을 만들고, 글로벌 기업은 이를 현장에 공급하며, 아이펠스는 운영 인프라를 담당한다. 그는 로봇 산업이 성장할수록 이러한 운영 레이어의 가치도 함께 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결국 로봇도 운영체제가 필요합니다. 저희는 그 운영 인프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서울·마닐라·북미를 연결하는 RobotOps 전략
아이펠스는 현재 서울, 마닐라, 북미를 연결하는 3거점 전략을 구축하고 있다. 서울 본사는 전략 수립과 엔터프라이즈 세일즈를 담당하고, 필리핀 마닐라 법인은 기술 개발과 글로벌 운영 지원을 맡는다. 여기에 올해 하반기 미국 법인 설립을 추진하며 북미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조 대표가 필리핀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로봇 운영 관리 사업은 24시간 기술 지원 체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영어 활용 능력과 IT 인력 풀, 운영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이 필리핀이라고 판단했다.
“마닐라 개발센터는 단순 외주 조직이 아닙니다. BotVector의 핵심 개발과 운영을 담당하는 핵심 조직입니다.”
BotVector의 수익 모델은 구독형 SaaS(Software as a Service) 구조다. 고객사가 운영하는 로봇 대수가 늘어날수록 매출도 함께 증가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로봇 시장이 성장할수록 자연스럽게 아이펠스의 시장도 함께 확대되는 셈이다.
장기적으로 조 대표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특정 제조사에 종속되지 않는 ‘RobotOps 인프라 레이어’다. 로봇을 만드는 기업은 계속 늘어나겠지만, 결국 그 로봇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이를 관리하는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외부 투자 없이 자체 수익으로 손익분기점(BEP)을 돌파한 그는 이제 다음 단계에 집중하고 있다.
“기술은 이미 검증됐고 레퍼런스도 확보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글로벌 확장 속도입니다.”
모두가 로봇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할 때, 아이펠스는 로봇이 멈추지 않도록 만드는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글로벌 RobotOps 시장이라는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고 있다.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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