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은 거대하지만 정보는 여전히 비대칭적이다. 누군가는 가격을 알기 위해 발품을 팔고, 누군가는 전문가의 문을 두드린다. 거래 규모는 천문학적이지만 가격 체계는 여전히 느리고 불투명하다. 장영태 4차혁명 대표는 이 구조를 기술로 바꾸려 한다. 감정평가사 출신인 그는 AI·빅데이터·블록체인을 결합한 자동가격산정모델(AVM) 플랫폼 ‘밸류쇼핑’을 통해 부동산 가격 정보의 디지털 전환에 도전하고 있다.
출발점은 단순한 질문이었다.
“왜 주식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거래가 가능한데, 훨씬 큰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사람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하고 있을까.”
장 대표는 2010년 감정평가법인 세종을 설립한 뒤 현장에서 직접 부동산 가격 산정 업무를 수행해왔다. 전환점은 2012년 찾아왔다. 스마트폰 보급 이후 모바일 인터넷 트래픽이 PC를 넘어섰다는 뉴스를 접한 순간이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산업 질서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감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직접 미국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스티브 잡스 사후 1주기에 그의 생가를 방문했고, 스탠퍼드·버클리에서 활동 중인 대학 동문들과 기술 혁신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그 경험은 결국 ‘감정평가 역시 기술로 자동화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귀국 후 그는 세종감정 내부에 사내벤처 형태의 ‘4차혁명팀’을 꾸렸고, 2013년부터 AVM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2018년 별도 법인 4차혁명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프롭테크 시장에 뛰어들었다.
장영태 4차혁명 대표는 AI·빅데이터 기반 AVM 플랫폼 ‘밸류쇼핑’을 통해 부동산 가격 정보의 디지털 전환에 도전하고 있다.
“사람의 손에 의존하던 평가를 시스템으로 바꾸고 싶었다”
AVM은 위치와 거래 이력, 입지, 주변 시세 등 다양한 데이터를 AI와 통계 모델로 분석해 부동산 가격을 자동 산정하는 기술이다. 해외 금융권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기술이지만, 국내에서는 규제와 데이터 한계로 인해 확산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뎠다.
장 대표의 시도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아파트 시세 제공을 넘어 토지·상업용·공업용 부동산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 빈도가 높은 공동주택과 달리 토지와 상업용 자산은 데이터 확보 자체가 어렵고 변수도 훨씬 복잡하다.
밸류쇼핑은 현재 아파트와 빌라,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상가, 토지건물 등 6개 유형에 대한 AVM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3400만건 규모의 토지건물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서비스하는 사례는 국내에서도 드물다는 설명이다.
장 대표는 “아파트와 지식산업센터는 상당한 수준의 가격 정확도를 확보했고, 토지와 구분상가는 AI 분석 기법을 계속 고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이 감정평가사의 역할을 위협한다는 시선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보였다.
“AVM은 직능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전문가의 역량을 확장하는 도구입니다. 반복 업무는 시스템화하고, 전문가는 더 고차원의 판단과 분석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는 단순 매물 플랫폼이 아니라 가격 신뢰 체계를 만든다”
밸류쇼핑의 핵심 경쟁력은 결국 데이터다.
단순히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보여주는 수준이 아니라 경·공매 자료와 호가 데이터, 감정평가 전례, 탁상감정 데이터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여기에 KB국민은행 등에 공급하는 2500만건 규모 시계열 자료와 자체 특허 기술까지 결합해 가격 정밀도를 높이고 있다.
장 대표는 “데이터는 단순히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정제하고 재학습시키느냐가 핵심”이라며 “오랜 기간 축적한 산정 결과를 다시 AI 분석에 반영하는 구조 자체가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수익 모델 역시 금융권과 공공기관 중심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밸류쇼핑은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한국부동산원 등에 AVM 시스템을 공급하고 있으며, 세무 플랫폼 ‘양도코리아’ 등 전문가 시장에도 가격 정보를 제공 중이다.
특히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서비스 및 지정대리인으로 선정되면서 비대면 자동대출용 시가 산정 솔루션 영역에서도 사업 기반을 넓히고 있다.
프롭테크 시장에는 직방과 호갱노노, 아실 등 강력한 플랫폼 사업자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밸류쇼핑의 본질은 ‘정보 노출’이 아니라 ‘가격 산정’에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단순 매물 플랫폼이 아니라 금융권이 활용할 수 있는 가격 신뢰 체계를 구축하는 기업입니다. 감정평가 전문성과 IT 기술을 결합한 점이 가장 큰 차별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밸류쇼핑 플랫폼 화면. 밸류쇼핑은 아파트를 넘어 토지·상업용 부동산까지 자동가격산정모델(AVM) 기반 가격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부동산 거래의 신뢰 인프라가 되고 싶다”
장 대표는 최근 블록체인 기반 기술 확장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19년부터 카카오 그라운드X(클레이튼)와 협력해 AVM 산정 결과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는 단순 저장 기술을 넘어 향후 부동산 유동화와 스마트 계약 시장까지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그는 “결국 부동산 거래 역시 데이터의 신뢰성과 투명성이 핵심이 될 것”이라며 “가격 산정 결과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것은 미래 거래 질서를 대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2017~2018년 창업 초기 가장 어려웠던 부분으로는 시장의 불신과 규제 장벽을 꼽았다. 다만 2022년 금융위원회가 ‘은행업 감독업무시행세칙’을 개정하며 AVM을 담보 가치 산정 도구로 공식 인정한 이후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새로운 기술은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며 “초기에는 의심받았지만 지금은 금융권과 공공기관이 먼저 활용 방안을 고민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부동산 가격 정보는 일부 전문가만 독점하는 영역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 가능한 사회적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년 후에는 밸류쇼핑이 단순한 앱이 아니라 부동산 거래의 신뢰를 담보하는 플랫폼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감정평가의 전문성과 기술의 편리함을 결합해 한국 부동산 시장을 더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거대한 산업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 부동산처럼 오랫동안 경험과 관행에 의존해온 시장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시장의 변화는 언제나 작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왜 부동산 가격은 여전히 불투명한가.’
장영태 대표가 던진 이 질문은 결국 한국 부동산 시장의 오래된 구조 전체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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